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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대륙 밖의 중국: 타이완과 홍콩

Peter Hong 2015. 5. 25. 23:51

12. 대륙 밖의 중국: 타이완과 홍콩

 

<강의내용 정리>

1. 타이완은 약 36,000㎢의 타이완 섬과 주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총인구는 약 2,336만 명이고 주민의 대부분은 한족이고 나머지는 타이완 원주민이다. 한족의 84%는 명청시기부터 이주해온 내성인과 객가(客家)인이고, 14%는 1949년 전후 국민당 정부와 함께 이주해 온 외성인(外省人)이다.

 

2. 타이완의 역사는 식민 통치와 군부 통치로 점철된 역사였다. 타이완은 일찍이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았고 청말에는 청일전쟁 패배의 결과 일본에게 할양되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타이완은 국민당에 의해 수복되었지만, 장졔스에 의해 1945년 5월부터 계엄령 하의 군부독재가 실시되었다. 1949년 국민당 군대와 정부가 타이완으로 퇴각한 이후 1970년대 말까지 본토와 타이완 간에 극도의 긴장상태가 유지되었다.

 

3. 타이완의 문화는 고유의 역사적 과정을 반영하여 상당히 복합적이고 개방적이면서도, 중국 본토, 특히 복건성의 문화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타이완의 문화적 정체성은 국민당 정권 하에 발전된 중화 문명/문화의 계승자라는 인식과 중국 본토에 의해 재현된 중국과 다른 타이완 거주자라는 인식이 상존한다. 이로 인해 타이완 사람들은 ‘중국인’과 ‘타이완인’이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형성해왔는데, 젊은 세대일수록 스스로를 타이완인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4. 중국 본토가 줄곧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해옴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타이완의 입지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미국, 일본, 한국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와 동시에 타이완과 국교를 단절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는 타이완이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명칭 또한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 대신 중화대만(Chinese Taipei) 등으로 불리고 있다.

 

5. 중국 본토와 타이완과의 관계를 양안관계라 일컫는다. 본토에서는 줄곤 ‘하나의 중국’ 정책에 입각하여 타이완과의 통일을 추구해오고 있다. 반면, 타이완에서는 본토를 수복하여 중국을 통일해야 한다는 입장과 타이완이 별도의 국가로 독립해야 한다는 입장,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유지한 채 경제적인 실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 등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고 있다. ‘92년 컨센서스’에 의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되 이와 관련된 표현은 각자의 방식에 따른다”는 ‘일중각표(一中各表)’ 가 양안관계의 원칙으로 확립되었다. 그러나 중국 본토는 ‘하나의 중국’에, 타이완은 ‘각자의 표현’을 강조하는 등, 이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6. 양안관계에 대해 역대 타이완 총통은 상이한 관점을 보였다. 장졔스는 1946년 이후 ‘중화민국’의 정통성과 재통일을 주장하며 1971년 국제연합을 탈퇴했다. 장징궈는 본토 수복 원칙 하에서 중국과 접촉도, 협상도, 대화도 거부한다는 ‘3불정책’을 실시했다. 후임 리덩후이는 일국양부 또는 일중일대의 원칙하에 민주와 자유를 바탕으로 통일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천수이볜은 일변일국을 주장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 대신 독립 노선을 추구했다. 재선에 성공한 국민당의 마잉주는 92컨센서스를 존중하여 일중각표 원칙을 강조하면서, 통일을 논하지 않고 독립을 거론하지 않으며 무력을 쓰지 않는다고 하는 신3불정책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7. 홍콩은 홍콩 섬, 구룡반도, 신계와 주변의 235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콩 전체 인구의 95%가 중국계이며 광동성 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와 베이징어이지만 실생활에서는 광동어를 사용하고 있다. 산업은 1950년대 이전에는 중개무역 위주였지만 1950년대 이후에는 조립가공업이, 1960년대에는 전자산업이, 1970년대에는 기술집약적, 수출 위주의 산업이 발전했으며 이후 금융, 관광, 서비스산업이 발전했다.

 

8. 홍콩은 아편전쟁을 통해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가 1997년 중국에 반환되었다. 중국으로의 반환과 동시에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편입되었다. 또한 중국의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50년 간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고, 입법, 사법, 행정 등의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를 실시하며, 홍콩인들이 직접 대표를 선출하는 등 홍콩인들 스스로 통치하는 정책을 실시해 오고 있다.

 

9. 1990년대 초중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 홍콩인들은 대규모 해외 이민으로 홍콩을 떠났다. 홍콩인들은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대륙인들의 홍콩 유입을 무척 경계했지만 최근에 이러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홍콩은 중국 경제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중국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함에 따라 최근에는 홍콩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보충연습문제>

 

1. 타이완의 역사, 문화, 인구구성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주민의 대부분은 원주민인 고산족이고 나머지는 한족이다.

② 타이완 내의 한족은 내성인, 객가인, 외성인으로 구분된다.

③ 문화적인 면에서 복건성의 영향을 받았지만, 훨씬 더 개방적이다.

④ 타이완은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은 적이 있다.

 

2. 1979년 이래 올림픽과 같은 국제무대에서 통용되고 있는 타이완의 명칭은?

① 중화민국 (Republic of China) ② 중화대북 (Chinese Taipei)

③ 포르모사 (Formosa) ④ 자유중국 (Free China)

 

3. 타이완의 역대 지도자 중, 양안 관계와 관련하여 “통일을 논하지 않고, 독립을 추구하지 않으며,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신삼불’ 정책을 추진한 사람은?

① 장징궈 ② 천수이볜 ③ 마잉주 ④ 리덩후이

 

4. 홍콩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어 1997년 중국에 반환되었다.

② ‘일국양제’의 원칙에 따라 50년 간 반환 이전의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③ 직접 대표를 선출하는 등 홍콩인들 스스로 통치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④ 홍콩 경계 안팎으로의 입출경은 중국 본토에서 직접 관리한다.

 

5. 중국과 타이완의 관계인 양안관계의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타이완은 1949년 대륙에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반공통일’ 원칙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점차 고립되었다.

② 1971년 UN(국제연합)의 대표 자격 박탈 후 외교적 고립이 가속화되었다.

③ 중국은 1954년 이래 ‘하나의 중국’ 정책을, 1978년 이후 ‘일국양제’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WTO 가입 이후 국제적 위상이 변화함에 따라 ‘타이완의 독립’을 허용하고 있다.

④ 타이완은 초기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대륙의 재통일을 주장했으나 1990년대 이후 독립 추구의 움직임이 커지기도 했다.

 

6. 1980년대 초반 덩샤오핑이 제안한 중국의 통일정책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단일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공존하도록 하는 정책은 무엇인가?

① 양안삼지(兩岸三地) ② 일국양제(一國兩制)

③ 화평굴기(和平屈起) ④ 도광양회(韜光養晦)

 

(정답) 1① 2② 3③ 4④ 5③ 6②

해설 5 : ③ 최근 중국과 타이안 간의 양안관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다 긴밀해지고 있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독립’을 둘러싸고 긴장이 지속되곤 한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타이완의 독립 및 독립추진 논의를 전혀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해설 6 : ② 일국양제 정책은 홍콩, 마카오, 타이완에 대하여 추진해왔다. 양안삼지는 중국 대륙과 홍콩, 타이완을 이르는 말이며, 화평굴기와 도광양회는 중국 대외정책의 전반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다.

 

<요약정리>

1. 타이완의 역사는 식민지배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1949년 국민당 군대와 정부가 타이완으로 퇴각한 이후 1970년대 말까지는 본토와 타이완 간에 극도의 긴장상태가 유지되었다. 타이완의 문화는 고유의 역사적 과정을 반영하여 상당히 복합적이고 개방적이면서도, 중국 본토, 특히 복건성의 문화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이로 인해 타이완 사람들은 ‘중국인’과 '타이완인'이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형성해왔는데, 젊은 세대일수록 스스로를 타이완인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2. 중국 본토와 타이완과의 관계를 양안관계라 일컫는다. 본토에서는 줄곤 ‘하나의 중국’ 정책에 입각하여 타이완과의 통일을 추구해 오고 있다. 반면, 타이완에서는 본토를 수복하여 중국을 통일해야 한다는 입장과 타이완이 별도의 국가로 독립해야 한다는 입장,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유지한 채 경제적인 실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 등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고 있다. ‘92년 컨센서스’에 의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되 이와 관련된 표현은 각자의 방식에 따른다”는‘일중각표(一中各表)’가 양안관계의 원칙으로 확립되었으나, 이에 대한 해석은 서로 상이하다.

 

3. 중국 본토가 줄곧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해옴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타이완의 입지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미국, 일본, 한국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와 동시에 타이완과의 국교를 단절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는 타이완이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명칭 또한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 대신에 중화대만(Chinese Taipei) 등으로 불리고 있다.

 

4. 아편전쟁을 통해 영국의 식민지고 편입된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되었다. 중국으로의 반환과 동시에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편입되었으며, 중국의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50년 간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고, 입법, 사법, 행정 등의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를 실시하며, 홍콩인들이 직접 대표를 선출하는 등 홍콩인들 스스로 통치하는 정책을 실시해 오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홍콩은 중국 경제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으나, 중국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함에 따라 최근에는 홍콩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주요용어>

1. 중화(中華)타이페이

중화타이베이 또는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 약칭 TPE)는 현재 중화민국(타이완)이 국제기구에 가입하거나 국제행사에 참여할 때 주로 사용하는 이름이다. 국제 사회에 영향력이 큰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 무대에서 타이완이 하나의 독립된 주권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국호 ‘중화민국’(中華民國, Republic of China)이나 타이완 공화국 독립운동의 연장선에서 국호로서의 ‘타이완’(臺灣, Taiwan)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중민국의 국기, 중화민국의 국가 등 중화민국의 상징물을 사용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 명칭은 197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대부분의 국제 조직이나 행사에서 채택해오고 있다.

 

2. 양안관계(兩岸關係)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이후 분단국가가 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간에 일어나고 있는 정치, 경제, 문화, 외교 등 각 방면의 관계를 가리킨다. 양안(兩岸)이란 자연스럽게 군사분계선의 역할을 하게 된 타이완 해협(臺灣海峽)을 사이에 두고 서안(대륙)과 동안(타이완)으로 마주보는 관계라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 용어는 분단국가인 양자의 관계는 ‘두 국가의 외교’가 아닌 ‘특수한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타이완을 34개 성·시(省·市) 중의 하나로 간주하면서 통일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반면, 중화민국은 대륙 본토를 공산당의 반란에 의해 잃어버렸기 때문에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 92컨센서스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반민·반관(半民·半官) 단체들이 양안관계의 성격과 원칙에 대해 서로 합의한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흔히 일중각표(一中各表)의 원칙으로 요약되는데, 이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을 공유하되 그에 대한 표현이나 해석은 각자의 방식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후 타이완 독립의 기치를 내건 민진당(民進黨)의 천수이볜((陳水扁)이 총통으로 선출된 이후 ‘일중각표’의 원칙이 다소 흔들렸으나, 현재까지도 이는 양안관계의 핵심적인 대원칙으로 간주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는 ‘하나의 중국’을, 타이완에서는 ‘각자의 표현/해석’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일국양제1980년대 초반 덩샤오핑이 제안한 중국의 통일정책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단일한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공존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타이완과의 통일을 염두에 두고 제안했으나, 타이완의 거부로 타이완과의 관계에서는 아직까지 채택되고 있지 않으며, 각각 1997년과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된 홍콩과 마카오를 대상으로 실행되고 있다. 홍콩에서 실시되고 있는 일국양제 정책은 현재의 체제를 50년 동안 유지하며, 입법, 사법, 행정 등의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를 향유하고, 홍콩 사람들이 직접 홍콩을 통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3. 92컨센서스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반민·반관(半民·半官) 단체들이 양안관계의 성격과 원칙에 대해 서로 합의한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흔히 일중각표(一中各表)의 원칙으로 요약되는데, 이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을 공유하되 그에 대한 표현이나 해석은 각자의 방식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후 타이완 독립의 기치를 내건 민진당(民進黨)의 천수이볜((陳水扁)이 총통으로 선출된 이후 ‘일중각표’의 원칙이 다소 흔들렸으나, 현재까지도 이는 양안관계의 핵심적인 대원칙으로 간주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는 ‘하나의 중국’을, 타이완에서는 ‘각자의 표현/해석’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4. 일국양제

1980년대 초반 덩샤오핑이 제안한 중국의 통일정책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단일한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공존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타이완과의 통일을 염두에 두고 제안했으나, 타이완의 거부로 타이완과의 관계에서는 아직까지 채택되고 있지 않으며, 각각 1997년과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된 홍콩과 마카오를 대상으로 실행되고 있다. 홍콩에서 실시되고 있는 일국양제 정책은 현재의 체제를 50년 동안 유지하며, 입법, 사법, 행정 등의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를 향유하고, 홍콩 사람들이 직접 홍콩을 통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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