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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소수민족 문제와 조선족

Peter Hong 2015. 5. 26. 00:16

13. 소수민족 문제와 조선족

 

<강의내용 정리>

1. 오늘날 중국인은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이라는 현재 중국인의 민족 구성은 역사적으로 최근에 발명된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변형되고 있다. 오늘날의 중화민족은 한족과 소수민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2. 소수민족은 역사적으로 한족 중심의 화이사상에 근거하여 비중화권 세계에 존재하는 이민족을 지칭하던 ‘4夷’ 개념이 오늘날 중국의 소수민족 인식의 문화적 뿌리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 전개되었던 소수민족 식별정책은 민족 성원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국정의 안정과 영토 보존을 목적으로 한 일종의 정치적 발명이었다.

 

3.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정치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굴곡이 심했지만 그 기본 원칙은 다음 네 가지다.

첫째, 모든 민족은 평등하며 우호합작의 대가정을 이룬다.

둘째, 소수민족 집중 거주 지역에 대해 자치행정기관을 설치하고 자치권을 부여한다.

셋째, 소수민족의 분리 및 독립 요구는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넷째, 통일전선의 원칙이다.

이는 전 국토의 64%를 차지하는 소수민족 거주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진 것을 반영한 것으로 현지 유력자를 통한 간접통치의 형태를 띠고 있다.

 

4.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 정부는 시기에 따라 상이한 소수민족 정책을 적용해왔다. 1949년부터 1957년까지는 온건한 민족융화정책 시기로 분리독립을 하지 않는 한 민족 문화와 정체성을 최대한 보장했다. 1958년부터 1976년까지는 한족 중심의 급진적인 동화정책을 폈던 시기로, 소수민족의 저항은 지방민족주의로 규정되어 중앙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1978년부터 1980년대에는 민족융화정책으로 회귀하여 소수민족에게 각종 특혜와 우대를 제공했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다시 정치적 강경함과 사회경제적 통합을 시도하는 양면적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5.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은 한국에서 이주해간 사람들로, 1949년 신중국 수립 이후 중국 정부의 민족 식별작업을 통해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분류되고 중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만주 지역에 대한 봉금령(출입통제)이 약화되자 조선인의 산발적인 만주 이주가 시작되었다. 191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여 1940년대까지 약 145만 명이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주했다.

 

6. 중화인민공화국 초기 조선족들은 중일전쟁 및 국공내전 시기 공산당을 도운 공훈을 인정받아 길림성 동부 연변에 조선족 자치구를 설립했다. 그러나 1955년 연변 조선족 자치구는 자치주로 격하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족들은 신중국 초기 높은 경제력 및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경제적 문화적 공동체를 영위했지만, 문화대혁명시기 조선족 학교가 통폐합되고 되고 한글 교육이 축소되는 등 부침을 겪었고 개혁개방 시기에도 직접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1992년 한중 수교이후 한국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조선족 사회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7. 조선족 인구는 1990년대 초반 이래 심각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일본, 미국 등지로의 취업 이주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동북3성 조선족들의 중국 내 대도시 진출도 궤를 같이 하고 있어 조선족 공동체의 급속한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농촌지역의 조선족 사회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각하다.

 

<보충연습문제>

 

1. 중국 소수민족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신장(新疆)은 20세기에도 독립된 국가가 수립한 적이 있다.

② 소수민족 집중 거주 지역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편이다.

③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직후 55개의 소수민족이 확정되었다.

④ 개혁개방 이후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정책들이 실시되었다.

 

2.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은?

① 민족간 평등의 원칙 ② 분리독립 불가의 원칙

③ 통일전선의 원칙 ④ 민족자치의 원칙

 

3.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중국 정부의 시기별 소수민족 정책을 맞게 설명한 것은?

① 1949-1957년: 한족 중심의 급진적 동화정책 실시

② 1958-1976년: 분리 독립 하지 않는 한 민족문화와 정체성 최대 보장

③ 1978-1990년: 소수민족의 전통문화 탄압 정책

④ 1990년대 이후: 정치적 강경함과 사회경제적 통합 시도하는 양면 정책

 

4. 조선족 사회에 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일제의 강점기에 간도 지역의 한인이 급증하였다.

② 교육수준이 다른 민족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③ 간도는 오늘날 연변조선족 자치주와 거의 일치한다.

④ 전체 인구는 감소하지만 연변 내 인구는 증가추세이다.

 

5.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기본원칙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모든 민족은 평등하며 한족(漢族)의 주도 하에 우호합작의 대가정을 이룬다.

② 소수민족에게 민족별 자치기관 설치 및 자치권을 부여한다.

③ ‘하나의 중국’ 원칙 하에 소수민족의 분리와 독립은 불가하다.

④ 소수민족의 고유한 풍속, 신앙 등은 인정한다.

 

6. 중국의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서, 1902년 량치차오가 처음 사용하고 1912년 쑨원 역시 중화민국을 5개의 민족이 연합한 이것의 국가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① 중화민족(中華民族) ② 오족공화(五族共和) ③ 대한족(大漢族) ④ 국족(國族)

 

(정답) 1.③ 2.② 3.④ 4.④ 5.① 6.①

 

해설 5 : ①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민족간 평등의 원칙 하에서 한족중심주의를 반대하고 있다.

해설 6 : ① 중화민족은 20세기 초반 새롭게 만들어진 말로, 한족과 소수민족간의 화합을 표현하면서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대한족과 국족은 한족중심주의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오족공화는 한족, 만주족, 몽골족, 회족, 장족의 5개 민족이 협력하여 수립해야 할 공화국을 가리킨다.

 

<요약>

1. 오늘날 중국에서 ‘중화민족’은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을 모두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이 ‘중화민족’이란 용어는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일종의 신조어로, 통일된 근대 중국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한족과 만주족, 몽고족, 회족, 장(티베트)족이 연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2. 중국은 1953년부터 시작된 민족식별조사 사업을 통해 1979년까지 55개 소수민족을 인위적으로 확정하였다. 많은 집단들이 스스로를 한 민족으로 주장했으나, 중국 정부는 공통의 지역, 언어, 경제생활, 풍속습관이라는 4개의 기준을 바탕으로 집단 간 경계를 구분하여 55개의 소수민족으로 분류하였다. 이 소수민족식별사업은 국정의 안정과 영토의 보존이라는 목적 하에 진행된 것으로, 민족 성원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한족도 아니면서 소수민족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3. 19세기 중엽부터 본격화된 한인들의 동북3성으로의 이주는 1910년대 후반 토지조사업의 영향으로, 그리고 930년대 후반 일본의 만주개발 계획에 따라 급속히 증가했다. 이들 대부분은 신중국이 건설된 이후 중국에 남았는데, 이들이 바로 조선족이다. 신중국 수립 이후 조선족은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력과 월등한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민족적 자긍심이 강했다. 개혁개방과 한중수교 이후 조선족 사회는 이촌향도 및 한국으로의 이민이라는 두 계기를 통해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족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조선족 생활 공동체와 옌볜조선족자치주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용어>

1. 중화민족(中華民族)

중국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중화’는 ‘중국(中國)’과 ‘화하(華夏)’의 첫 글자를 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중화민족’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최근인 20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1902년에 량치차오(梁启超)가 처음 사용하였으며, 1912년 쑨원(孙文) 역시 중화민국을 5족(5族)이 연합한 중화민족의 국가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시기에 ‘중화민족’이란 용어가 만들어지고 널리 확산된 것은 다른 민족들의 협력 없이 한족들만의 힘으로는 근대적인 통일국가 수립이라는 당시의 최대 과제를 이루어낼 수 없다는 인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2. 소수민족식별사업

1953년부터 1979년까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을 분류하고 확정했던 사업을 가리킨다. 신중국 수립 후 국가는 초대 헌법 제정을 위한 전국인민대표대회를 1954년에 개최하고자 했다. 전국인민대표를 각 지역, 직종, 계급 및 민족의 대표들로 선출하고자 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 내에 몇 개의 민족이 있는지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국무원은 1953년에 제1차 전국인구조사를 겸해 민족을 분류해내는 사업을 실시했는데, 이 사업은 1964년의 제2차 인구조사에서도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공통의 지역, 언어, 경제생활, 풍속습관이라는 4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각각의 집단들을 ‘민족’으로 확정하였다. 1979년 지눠족을 마지막으로 55개의 소수민족이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3. 소수민족정책

중국 소수민족 정책은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네 가지 기본 원칙은 줄곧 견지되었다. 첫째는 ‘민족간 평등의 원칙’으로 한족을 포함한 모든 민족이 평등하다는 원칙이다. 둘째는 ‘민족구역 자치의 원칙’으로 자치행정기관을 설치하여 일정한 범위 내의 자치를 허용하는 원칙이다. 셋째는 ‘분리독립 불가의 원칙’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하여 소수민족의 분리와 독립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넷째는 ‘통일전선의 원칙’으로 소수민족의 고유한 풍속과 신앙은 인정하면서 현지 지도자들을 제도권의 권력구조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서는 이 네 원칙은 문서상의 원칙일 뿐, 평등의 원칙과 자치의 원칙은 실제 현실 과정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4. 옌볜(延邊)

일반적으로 말하는 옌볜은 중국 지린(吉林)성에 있는 ‘옌볜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를 가리킨다. 옌볜자치주의 면적은 약 43,500km2로 지린성 내 동쪽 지역 1/4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도(州都)는 옌지(延吉)시이다. 옌볜자치주 내의 조선족 인구수와 구성 비율은 1990년대 이후 줄곧 감소되고 있다. 1953년 조선족의 숫자는 55만 명으로 자치주 인구 92만 명의 60%에 달했으나, 1990년에는 208만 명 중 82만 명으로 40%, 2013년 말에는 228만 명 중 80만 명으로 35%밖에 되지 않는다.

 

13. 소수민족 문제와 조선족.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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