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 머리에
"내 자식은 내가 잘 압니다. 그 애가 그런 일을 저지를 애가 아닙니다. 엄마 말도 고분고분 잘 듣고, 학교 공부도 잘하는 착한 애이거든요. 아마 나쁜 친구들의 꾀임에 빠져서 어쩔 수 없이 그랬을 거예요"
이 말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이다 파출소에 붙들려 있는 아이에 대하여 선처를 호소하며 하는 어느 부모님의 말이다. 이 부모님의 말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자식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는데 무엇을 얼마큼 알고 있을까? '공부해라.' '차 조심해라.' 하면 '예. 알았어요.' '염려하지 마세요, 내가 어린앤가요?' 하고 대답하는 말만 듣고 착한 아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혹 부정 행위를 하여 성적이 좋거나 부모님이 걱정을 할까봐 성적표를 고쳤는데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청소년 문제나 청소년 정책에 관하여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발표자가 다음과 같은 청소년의 생활 실태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고 하자.
"오늘날 청소년들은 TV, 라디오, 비디오, PC 통신과 같은 영상 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포르노를 본 경험이 있는 학생의 수가 2/3를 넘어서고 있다." "깊이 생각하고 따져보는 것을 싫어하며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경향이다." "입시 준비 때문에 친구를 만나거나 책을 읽을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놓고 놀 공간도 없다."
이러한 실태는 어느 정도 사실이며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영상 매체의 영향이란 어디까지의 영향을 의미하는 것인가? 청소년들의 의상이나 외모 또는 말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아니면 가치관이나 생활 태도 전체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그러한 영향이 청소년기에만 한정하는 것인가, 성인이 된 뒤에까지 지속된다는 것인가? 포르노를 본 학생이 그렇게 많은 것을 보니 우리 청소년들이 그만큼 퇴폐화 되어간다고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 성인들의 무책임이 그만큼 커졌다고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따져 보면 청소년 생활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당 부분들이 실제로는 오해와 편견에 의한 것일 수도 있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 또한, 지극히 작은 것을 너무 크게 받아들이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함으로써 본질을 왜곡시킬 가능성도 있다는데 동의하게 된다. 청소년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바로 이 같은 청소년의 생활에 대한 오해와 편견 또는 왜곡을 최소화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고려하여야 할 것인지를 논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총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새벽 등교>
이른 새벽에 한 고등학생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아침 과외 공부를 하고 나서 학교에 가려고 일찍 나선 것이다. 한쪽 손에는 영어 단어장인 듯한 작은 수첩을 들고 열심히 외우고 있다. 버스가 오는가만 흘끔 흘끔 처다 볼 뿐, 주변에 누가 있는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외우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의 책가방에는 도시락이 세 개. 점심과 저녁 그리고 야간용이다.
<학교 교실에서>
내일이면 중간 고사가 시작되어서인지 많은 학생들이 시험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몇몇 학생들은 벌써 중간 고사가 끝난 다음의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대학로에 가자고도 하고, 이번에는 로데오 거리로 진출하자는 학생도 있다. 기가 막힌 비디오를 보자는 학생도 있고, 여학생들과 미팅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학생도 있다. 지난번 미팅때 카페에 가서 즐겁게 놀았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학생도 있다.
<독서실 가는 길>
밤 10시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다. 그중의 몇몇 학생들은 밤 2시까지 공부를 하려고 독서실로 발을 옮긴다. 거리에는 반짝 반짝 빛나는 네온싸인 불빛이 찬란하다. 술취한 사람도 있고, 근사한 술집이 있다며 유혹하는 사람도 있다. 연인끼리 팔짱을 끼고 즐겁게 소근대는 사람도 눈에 띄이고, 고등학생쯤되어 보이는 학생 남녀 한패거리가 "다음 차례는 소주방이다."고 외치며 그쪽으로 향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소년의 생활은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이다. 그 속에는 공부니 취업이니 하는 무거운 짐도 있지만 자기를 구가한다는 희망과 기쁨도 있다. 부모님의 기대와 압력이 거세어 힘들기도 하다. 시험이라든가, 입시라는 힘든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에서는 분출되는 욕구를 감당하지 못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며, 민족 통일이니 역사 청산이니 하는 사회적인 문제들과 만나기도 한다. 거리에서는 열정을 자극하는 유혹들도 만나고, 미성년자는 출입을 삼가라는 골목을 지나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청소년은 보라빛 꿈도 극심한 좌절도 경험하게 된다. 이성과 사랑하는 방법도 배우고 민족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자란다. 고독한 군중속에 서있는 자기도 발견하고 그들과 어울려 사는 방법도 익히게 된다. 무엇이 옳은 일이고, 보람된 삶이 무엇인지도 깨닫고 자기를 바치려는 의지도 자란다.
청소년들의 생활을 바로 이해한다는 말은 이렇게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생활을 총체적으로 간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들이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어떻게 맞이하며 시간과 시간을 보내는가 하는 구체적인 삶 전체를 입체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몇 시에 일어나 어디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냈느냐를 넘어서서 그러한 일을 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무엇이고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였느냐도 이해하여야 한다. 누구와 만나서 무엇을 하였느냐도 알아야 하지만, 그때 얼마나 즐거웠고 어떠한 삶의 지혜를 얻었느냐를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지금 당장의 문제에만 매달리는지 10년 후나 100년 후도 고려하는지도 살펴보아야 하고, 나와 가족 또는 친구만을 생각하는지 이웃이나 세계 인류까지도 생각하는지도 파악하여야 한다. 특히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한지, 아니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능력과 의지를 갈고 닦으려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청소년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왜곡이 나타나는 것이며, 세대간의 단절과 갈등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청소년을 이해하는 것은 금물이다. 특이한 머리 모양, 이상한 복장, 락 카페에 출입하는 것만 가지고 그를 평가 절하하여서는 안 된다. 그러한 청소년이라고 모두 찰나적 만족에만 빠져 있다든가, 자식의 도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부모님이나 친지들의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는데 대한 자책감도 있으며, 어떻게 국면을 새롭게 전환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설령 지금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한 상태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가족도 생각하고 국가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어엿한 성인으로 자
라게 되는 것이다.
3.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된다.
<시험기간인데 잠을 자고 있는 아이>
한창 시험을 보고 있는 때이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을 자식이 출출하기도 하고 힘들어 할 것 같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자식의 방을 찾았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보니 잠을 쿨쿨 자고 있다.
<새벽에 귀가한 딸>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밤 11시경에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친구랑 함께 있는데 금방 들어갈 테니 염려 마시고 주무시라고 한다. 부모는 할 일이 있으면 다음에 하고 당장 집에 오라고 호통을 친다. 그런데, 2시가 되어도 집에 오지 않는다. 결국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철이든 아이>
우리 아이는 요즈음 철이 들었나봐요.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오는가 하면, 집에서는 저 좋아하던 텔레비젼도 안보고 제 방에 들어 앉아서 책만 읽고 있답니다. 친구들이 전화를 하면 없다고 하며 밖에 나가질 않아요.
이 사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나는가? 앞의 두 사례는 게으르고 문제가 있는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사례에서는 이제 부모님이 한시름 놓게 되었다고 보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 이야기를 보면 그 생각이 바뀔 것이다.
사실은 첫 번째 아이는 1시간 정도만 더 자다가 일어나서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할 요량으로 자명종을 맞추어 놓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여학생의 경우는 성적이 자꾸 떨어져 부모님 뵈올 낮도 없고 차라리 죽고 싶다고 한숨만 쉬고 있는 친구를 위로하고 설득하기 위하여, 이곳 저곳을 거닐다가 그만 귀가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냥 친구를 두고 들어가면 자살이라도 할 것 같아 나중에 집에 들어가서 혼날 각오를 하고 밤을 세우고 말았다. 반면에 세 번째의 학생은 좋아하던 여학생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충격을 받아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게 된 결과이다.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청소년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만 보아서는 안된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순간부터 청소년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왜곡이 자리를 차지한다. 가출을 하는 것 자체 때문에 흥분을 하고 비난을 하기보다 가출을 하게 하는 숨겨진 요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부모님께 반항을 하는 밑바탕에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별히 판단력이 부족하고 자기 관리 능력이 부족한 청소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열망과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이 청소년을 바로 이해하는 요체이다. 좀 야해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청소년들의 경우는 대체로 자기 과시의 욕구가 강하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과시 욕구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것을 어떻게 충족시키는 것이 가장 세련된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불안정하고 설령 안정되었다 하더라도 몸에 익지 않는다는데 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는 경우에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열망과 판단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것을 표출시키는 자기 조절 능력이 어느 정도 발달되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것이 기성세대와 다르거나 아직 발달 과정에 있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눈에는 문제 언행으로 비친다는 점도 아울러 인식하여야 청소년의 생활을 바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4.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도 중요하다.
<봉사 활동에 여념이 없는 아이>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토요일에는 얼굴을 통 볼 수가 없어요. 교회의 고아원 봉사 활동을 위해 하루 종일을 보내고 오기 때문입니다. 시험볼 때만이라도 빠져 공부를 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아요. 맡은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요즈음에는 특별 행사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매일 고아원에 가서 저녁 늦게 돌아 오곤 한답니다.
<문학반 때문에 학교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
우리 아이는 1학년 때 초까지만 해도 상위권에 속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선배의 권유로 문학반에 들어간 후부터는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있답니다. 요즈음에는 자기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면서 학교성적 같은 것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답니다. 대학에나 가서 문학 공부를 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해도 말이 먹혀들어 가지도 않네요.
이 두 사례의 학생들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세상 물정도 모르고 우선 순위도 모르는 걱정스러운 청소년이라 해야 하는가, 아니면 의지가 굳고 꿈이 분명하여 희망적인 청소년이라 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어느 관점에 따라 보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 즉, 학교 공부가 청소년의 장래를 결정하며 학생은 모름지기 학교 공부에 충실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걱정스러운 모습이고, 청소년기는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을 통하여 계발하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희망적인 모습인 것이다.
청소년의 생활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공부관과 인재관이다. 공부란 학교의 교과서를 익히는 것이라는 상아탑적 공부관과 의미있는 삶을 준비하고 단련하는 활동이라는 실천 능력 함양적 공부관의 차이 때문에 우리 청소년들의 생활이 힘들고 어렵다. 그리고 어떻게든 남보다 위에 있고 앞서있는 사람이 인재라는 적자생존적 인재관과 어느 위치에 있건 주어진 일을 공동체 사회에 유익하는 방향에서 충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 인재라는 공동체적 인재관의 차이로 인하여 청소년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가족에 대한 책임 때문에 번민하는 아들을 보고 "사나이가 사사로운 정에 매달리면 되느냐?"고 꾸짖었다는 안중근 어머니의 공부관과 인재관이 오늘날의 부모님이나 기성세대에게 얼마나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는가? 그저 친구니 사회니 인류니 하는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 성적만 좋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하고, 집안 제사니 동포니 부정 부패니 하는 문제에 대한 감각은 없어도 인류대학만 들어가면 우수한 인재라고 하는게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남보다 앞서 있으려 하기 보다 어느 위치에 있든 충실을 다하는 삶을 영위하라고 충고하는 기성세대는 얼마나 되는가?
5. 어린애같은 어른이 더 문제이다.
어른들이 청소년을 꾸중을 할 때 쓰는 말 가운데 철이 덜 들었다든가, 어린애 같다는 말을 한다. 자기만을 알고, 조그마한 일에 금방 흥분하고, 전후 좌우를 가리지 않고 즉흥적으로 반응을 한다는 말이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존중하지도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조건을 찬찬히 따져보려 하지도 않으며, 하여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리지 못하는 것이 어린이의 모습이다.
청소년을 이해하고 대하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어린애와 다를 바 없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도대체 자기 자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를 알아보기도 전에 흥분부터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내키는 대로 혼부터 내는 모습이 그 예이다. 그들도 감정이 있으며 나름대로의 자존심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함부로 말을 하여 기분을 상하게 하고 자존심에 먹칠을 하면 어린애와 다를 바가 없다. 말썽을 피는 학생이 자기 학교에만 다니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학생을 제적하려 드는 교육자도 어린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아니다. 어린애 같은 판단과 행동을 하지 않아야 어른이다. 어른 같은 어른이 있어야 청소년들이 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 청소년의 문제의 대부분은 어린애 같이 어른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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