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Class/Teaching Materials

학교붕괴의 원인과 대책

Peter Hong 2013. 8. 2. 22:58

교사의 지시를 한 귀로 흘리며, 등교를 소풍 정도로 생각하는 아이들, 맘에 들지 않는다며 급우를 심지어 교사를 폭행하는 아이들..... 이런 것이 학교 붕괴의 한 단면이다. 학교는 이미 自淨능력을 상실하고 가정과 사회에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다. 학교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초등학교에서는 학급붕괴의 현상이고 중·고등학교에서는 교내 폭력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붕괴란 이 두 가지를 총칭하는 말로서 학급붕괴는 소수의 학생들이 교실에서 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거나 반항하는 것을 계기로 혼란이 학교교실 전체로 퍼져가고 있으며 교내 폭력은 97년에 비하여 작년에 약 2.2배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3, 4년 전부터 열린교육, 새 교육운동 등 교육개혁이 진행되면서 교원의 사기가 저하되어 학교(교실)붕괴 현상이 일어났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아직은 “이상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겠지만, 곧 “큰일 났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 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문고 보다는 실업고가, 지방보다는 대도시의 경우가 더 심하며 특히 문화적 혜택을 더 누리는 지역에서 학교붕괴현상이 심하다. 이것은 과외와 같은 사교육에 치중한 나머지 학교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약해진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즈음은 문제아가 따로 없다. 보통의 아이들이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교 거부, 집단 따돌림, 자살, 폭력, 교실붕괴의 주역이 바로 보통의 아이들이고 이들을 일컬어 ‘새로운 아이들’, ‘신 인류’. ‘신 인간’ ‘신 지식인’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문제아가 따로 있어 아이들을 지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모두가 불안한 상황이다. 이들은 나약하면서도 대단히 공격적인 아이들이다. 또한 생활의 틀이 무너져 節度가 없으며, 보이지 않는 방어망을 치고 자기 것만을 지키려 한다. 약자에게 특히 강하고, 강자에게는 움츠리는 속성이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하여 지도하기가 어렵다.
국제화 추세로 미국에서 수입된 근대유럽의 이념인 자유, 평등, 개성존중, 인권제일주의의 이념이 학교붕괴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자유, 평등, 개성존중, 인권제일주의의 이념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러한 것을 지향하기에 앞서서 아이들에게 사회적 자립심부터 키워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 교육에서 强制는 필연적 요소이다. 학교는 교육의 場이다. 아이들의 사회적 자립을 위한 기초학력과 생활방법, 사회성을 몸에 익히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싫다고 해도 참아 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이 강제요, 억압이라고 하는 것은 곧 수요자 중심의 교육에 反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은 본질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만일 억압을 제거해 버리면 아이들이 저절로 자란다고 하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학교는 학생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안 해도 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수요자 중심 교육에 대한 잘못된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최근 교육개혁의 방향은 2002학년도부터 대학입시제도의 대 변혁으로 입시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여유를 강조하고 있다. 즉, 열린교육을 지향하면서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힘을 기르자’ 고 主唱하고 있다. 많은 것을 가르치기 보다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기초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향은 좋지만 아이들에게 자립심도 길러주지 못하고 개성만 강조하다 보니 오늘과 같은 현상이 심각하게 초래될 수도 있다. 여유와 개성의 강조는 학교의 교육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고 학교붕괴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학교 두들겨 패기’로 교사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고 학교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학교운영에 대한 비판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학교교육을 하기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고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언론의 ‘학교 두들겨 패기’ 가 학교교육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학교는 봉건적인 요소를 강하게 지닌 場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학교 두들겨 패기’는 봉건적인 학교를 근대화하여 ‘시민사회화’ 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하지만 ‘근대화’ ‘시민사회화‘를 위해서 그것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교육 그 자체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언론에서 ‘학교 두들겨 패기’를 해온 사람들은 학교붕괴 앞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학교붕괴를 학교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가정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가정에서 자기 자식이 귀여워 벌하지 않으면서 학교에서 엄하게 키워달라고 회초리를 선생님에게 드리는 식의 일은 本末이 顚倒된 모순이다. 가정에서 자식을 엄히 다룰 때, 학교에서도 엄한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옛부터 우리는 가정에서 예의 범절과 같은 기본생활습관 지도를 아주 엄하게 교육하는 유교적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옛날 이야기이다. 학교에서도 이러한 기본생활습관 지도를 계속하고는 있지만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이유로 초래된 학교붕괴현상에 대하여 단시일 내에 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교사들이 현재 혼란에 빠져있는 학교와 학생들의 실태를 솔직하게 세상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이것이 교사나 학교에 대한 비난을 확대하는 것이 되겠지만 이 문제는 벌써 학교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할 수 없는 일은 쉬쉬하지 말고 솔직하게 머리를 숙여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란 어느 정도의 강제와 억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해방 이후 미국에서 들어온 각종 교육제도와 이념이 일관성이 없어 지금까지 교육의 혼란을 초래하여 왔고, 지금도 미국에서 한물 간 것이 우리나라 교육에서 활개를 치는 것이 한둘 아니다. 이제는 그런 政策立案 태도를 과감히 청산하여 학교붕괴를 오히려 가속시키는 憂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 언론, 학부모, 지역사회가 오늘의 학교현실을 정확히 알고 공동으로 대처해야할 때이다. 끝.
(작성일자) 2000년 4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