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지시는 한 귀로 흘리며,
등교를 소풍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아이들, 맘에 들지 않는다며 급우를 폭행하고 집단 따돌림하거나 심지어 교사를 폭행하는 아이들...... 이런
것이 학교붕괴의 한 단면이다. 학교는 이미 自淨능력을 상실하고 가정과 사회에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다. 학교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초등학교에서는 학급붕괴의 현상이고 중·고등학교에서는 교내 폭력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붕괴란 이 두 가지를 총칭하는 말로서 학급붕괴는
소수의 학생들이 교실에서 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거나 반항하는 것을 계기로 혼란이 학교교실 전체로 퍼져가고 있으며 교내 폭력은 해마다 숫적으로
급증하고 있고, 보다 暴惡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 전 부터 열린교육, 새 학교 문화창조 등 교육개혁이 진행되고 교원이 교육개혁의
대상이 되면서 교원의 사기가 저하되어 학교(교실)붕괴 현상이 일어났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아직은 “이상하다” 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겠지만, 곧 “큰일났다” 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 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문고 보다는 실업고가, 지방보다는 대도시의 경우가 더
심하며, 특히 문화적 혜택을 더 누리는 지역에서 학교붕괴현상이 심하다. 이것은 과외와 같은 사회교육에 치중한 나머지 학교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약해진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즈음은 문제아가 따로 없다. 보통의 아이들이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교 거부, 집단 따돌림, 자살, 폭력 등 교실붕괴의 주역이 바로 평범한 보통의 아이들이다. 일정한 틀에 매어있지 않은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이들을 일컬어 새로운 아이들, 新 인류, 新 인간이라고 까지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문제아가 따로 있어 아이들을 지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모두가 불안한 상황이다. 이들은 나약하면서도 대단히 공격적인 아이들이다. 또한 생활의 틀이 무너져 節度가 없으며, 보이지 않는 방어망을 치고 자기 것만을 지키려 한다. 약자에게 특히 강하고, 강자에게는 움츠리는 속성이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하여 지도하기가 어렵다.
국제화 추세로 미국에서 수입된 근대유럽의 이념인 자유, 평등, 개성존중, 인권제일주의의 이념이 학교붕괴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 이념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러한 것을 指向하기에 앞서서 아이들에게 사회적 자립심부터 키워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 교육에서 强制는 필연적 요소이다. 학교는 교육의 場이다. 아이들의 사회적 자립을 위한 기초학력과 기본적 생활습관 방법, 사회성을 몸에 익히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싫다고 해도 참아 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이 강제요, 억압이라고 하는 것은 곧 수요자 중심의 교육에 反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은 본질적으로 强制하는 것이다. 만일 억압을 제거해 버리면 아이들이 저절로 자란다고 하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학교는 학생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안 해도 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수요자 중심 교육에 대한 잘못된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최근 교육개혁의 방향은 2002학년도부터 대학입시제도의 대 변혁으로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여유를 강조하고 있다. 즉, 열린교육을 지향하면서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힘을 기르자’고 主唱하고 있다. 많은 것을 가르치기보다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자는 기초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향은 좋지만 아이들에게 자립심도 길러주지 못하고 개성만을 강조하다 보니 오늘과 같은 현상이 심각하게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여유와 개성의 강조는 학교의 敎育力을 크게 떨어뜨려 학력저하현상을 심화시키고 있고, 학교붕괴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학교 두들겨 패기’로 교사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고 학교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학교운영에 대한 비판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학교교육을 하기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고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언론의 ‘학교 두들겨 패기’가 학교교육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학교는 봉건적인 요소를 강하게 지닌 場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학교 두들겨 패기’는 봉건적인 학교를 ‘근대화’ 하여 ‘시민 사회화’ 하는 것이 그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근대화’ ‘市民 社會化’를 위해서 그것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교육 그 자체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언론에서 ‘학교 두들겨 패기’를 해온 사람들은 학교붕괴 앞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학교붕괴를 학교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가정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가정에서 자기 자식이 귀여워 벌하지 않으면서 학교에서 엄하게 키워달라고 회초리를 선생님에게 드리는 식의 일은 本末이 顚倒된 모순이다. 예부터 우리는 가정에서 예의 범절과 같은 기본생활습관 지도를 아주 엄하게 교육하는 유교적인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옛날 이야기이다. 학교에서도 이러한 기본생활습관 지도를 계속하고는 있지만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이유로 초래된 학교붕괴현상에 대하여 단시일 내에 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교사들이 현재 혼란에 빠져있는 학교와 학생들의 실태를 솔직하게 세상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이것이 교사나 학교에 대한 비난을 확대하는 것이 되겠지만 이 문제는 벌써 학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할 수 없는 일은 쉬쉬하지 말고 솔직하게 머리를 숙여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란 어느 정도의 강제와 억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한다.
해방 이후 미국에서 들어온 각종 교육제도와 이념이 일관성 없이 적용되어 지금까지 우리교육의 혼란을 초래하여 왔고 지금도 미국에서 한물 간 것이 우리나라 교육에 도입되어 활개를 치고 있고 새로 도입, 적용하려는 것도 한둘 아니다. 이제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열린교육’이 그렇고, 학생들의 대입준비를 위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의 서슬 퍼렇던 금지조치와 ‘무시험 대학입학’이라는 거창하고 그럴싸하게 假飾하여 포장된 2002년 대학입시제도가 그렇다. 작년부터 고등학교에 새로 도입되어 편성, 運營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에서도 학생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으로 형편대로, 능력대로 실천할 수 있는 탄력적 성격을 가진 교육과정이라고 하고 있고, 또한 선택중심교육과정의 보완을 위해 국민공통기본교과 외에 충청북도교육청 지정 선택과목이 있어 다소 혼란을 완화시키고는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어왔고 그 성공여부를 아직도 장담할 수조차 없다. 오히려 그게 그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또한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아직도 내년에 치를 2005학년도 수능고사의 각 영역별 배점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대처하라는 말인가.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정치적, 경제적 논리에 의한 모순된 課業 指向型의 교육정책 立案태도를 과감히 청산하여, 학교붕괴를 오히려 가속시키고 학교교육을 混沌속으로 몰아 넣는 그런 憂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원은 교육개혁의 對象이 아니라 主體가 되어야 하며 학교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정책이 수립,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정부, 언론, 학부모, 지역사회가 오늘의 학교현실을 정확히 알고 공동으로 대처해야할 때다.
그래도 많은 학생들이 각자의 화려한 미래의 꿈을 가꾸고 있고, 대다수의 교사들은 소리 없이 흔들리지 않고 각자의 갈 길을 가고 있어 우리교육의 희망은 있다.
요즈음은 문제아가 따로 없다. 보통의 아이들이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교 거부, 집단 따돌림, 자살, 폭력 등 교실붕괴의 주역이 바로 평범한 보통의 아이들이다. 일정한 틀에 매어있지 않은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이들을 일컬어 새로운 아이들, 新 인류, 新 인간이라고 까지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문제아가 따로 있어 아이들을 지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모두가 불안한 상황이다. 이들은 나약하면서도 대단히 공격적인 아이들이다. 또한 생활의 틀이 무너져 節度가 없으며, 보이지 않는 방어망을 치고 자기 것만을 지키려 한다. 약자에게 특히 강하고, 강자에게는 움츠리는 속성이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하여 지도하기가 어렵다.
국제화 추세로 미국에서 수입된 근대유럽의 이념인 자유, 평등, 개성존중, 인권제일주의의 이념이 학교붕괴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 이념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러한 것을 指向하기에 앞서서 아이들에게 사회적 자립심부터 키워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 교육에서 强制는 필연적 요소이다. 학교는 교육의 場이다. 아이들의 사회적 자립을 위한 기초학력과 기본적 생활습관 방법, 사회성을 몸에 익히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싫다고 해도 참아 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이 강제요, 억압이라고 하는 것은 곧 수요자 중심의 교육에 反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은 본질적으로 强制하는 것이다. 만일 억압을 제거해 버리면 아이들이 저절로 자란다고 하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학교는 학생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안 해도 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수요자 중심 교육에 대한 잘못된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최근 교육개혁의 방향은 2002학년도부터 대학입시제도의 대 변혁으로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여유를 강조하고 있다. 즉, 열린교육을 지향하면서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힘을 기르자’고 主唱하고 있다. 많은 것을 가르치기보다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자는 기초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향은 좋지만 아이들에게 자립심도 길러주지 못하고 개성만을 강조하다 보니 오늘과 같은 현상이 심각하게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여유와 개성의 강조는 학교의 敎育力을 크게 떨어뜨려 학력저하현상을 심화시키고 있고, 학교붕괴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학교 두들겨 패기’로 교사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고 학교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학교운영에 대한 비판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학교교육을 하기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고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언론의 ‘학교 두들겨 패기’가 학교교육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학교는 봉건적인 요소를 강하게 지닌 場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학교 두들겨 패기’는 봉건적인 학교를 ‘근대화’ 하여 ‘시민 사회화’ 하는 것이 그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근대화’ ‘市民 社會化’를 위해서 그것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교육 그 자체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언론에서 ‘학교 두들겨 패기’를 해온 사람들은 학교붕괴 앞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학교붕괴를 학교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가정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가정에서 자기 자식이 귀여워 벌하지 않으면서 학교에서 엄하게 키워달라고 회초리를 선생님에게 드리는 식의 일은 本末이 顚倒된 모순이다. 예부터 우리는 가정에서 예의 범절과 같은 기본생활습관 지도를 아주 엄하게 교육하는 유교적인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옛날 이야기이다. 학교에서도 이러한 기본생활습관 지도를 계속하고는 있지만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이유로 초래된 학교붕괴현상에 대하여 단시일 내에 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교사들이 현재 혼란에 빠져있는 학교와 학생들의 실태를 솔직하게 세상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이것이 교사나 학교에 대한 비난을 확대하는 것이 되겠지만 이 문제는 벌써 학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할 수 없는 일은 쉬쉬하지 말고 솔직하게 머리를 숙여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란 어느 정도의 강제와 억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한다.
해방 이후 미국에서 들어온 각종 교육제도와 이념이 일관성 없이 적용되어 지금까지 우리교육의 혼란을 초래하여 왔고 지금도 미국에서 한물 간 것이 우리나라 교육에 도입되어 활개를 치고 있고 새로 도입, 적용하려는 것도 한둘 아니다. 이제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열린교육’이 그렇고, 학생들의 대입준비를 위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의 서슬 퍼렇던 금지조치와 ‘무시험 대학입학’이라는 거창하고 그럴싸하게 假飾하여 포장된 2002년 대학입시제도가 그렇다. 작년부터 고등학교에 새로 도입되어 편성, 運營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에서도 학생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으로 형편대로, 능력대로 실천할 수 있는 탄력적 성격을 가진 교육과정이라고 하고 있고, 또한 선택중심교육과정의 보완을 위해 국민공통기본교과 외에 충청북도교육청 지정 선택과목이 있어 다소 혼란을 완화시키고는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어왔고 그 성공여부를 아직도 장담할 수조차 없다. 오히려 그게 그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또한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아직도 내년에 치를 2005학년도 수능고사의 각 영역별 배점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대처하라는 말인가.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정치적, 경제적 논리에 의한 모순된 課業 指向型의 교육정책 立案태도를 과감히 청산하여, 학교붕괴를 오히려 가속시키고 학교교육을 混沌속으로 몰아 넣는 그런 憂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원은 교육개혁의 對象이 아니라 主體가 되어야 하며 학교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정책이 수립,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정부, 언론, 학부모, 지역사회가 오늘의 학교현실을 정확히 알고 공동으로 대처해야할 때다.
그래도 많은 학생들이 각자의 화려한 미래의 꿈을 가꾸고 있고, 대다수의 교사들은 소리 없이 흔들리지 않고 각자의 갈 길을 가고 있어 우리교육의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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