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山頂)에서/임헌부
몇 억겁을 짓누르는
악어 등 같은 산등성이
무념무상 존재의 꼭짓점에
최고의 권좌를 찍고
가을 단풍에 물들지 않고
가벼운 생명 하나 품지 않는
뚜렷한 신분으로
자신의 이름도 잊은 채
메아리 맞받아칠 수도 없는
세월 찌든 몰골로 수담을 나눈다
어쩌다 예까지 왔수
더 이상 오를 일은 없소
하산할 일만 남았소
깊이 잠든 천년 바위
쌓여가는 돌무더기
다시 잔돌로 살아가는 돌탑
세간을 지나는 바람이
살갑게 부서지는 물소리에
연을 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