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Chinese Language)/문학의 이해

버밍햄의 현대문화연구소의 연구경향

Peter Hong 2016. 12. 5. 00:49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1.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필요성


   문화는 “영어 단어 중에서 가장 난해한 몇 단어들 중 가장 난해한 몇 단어들 중 하나이다”라고 레이먼드 윌리암즈는 말하면서 문화의 의미를 세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문화는 지적, 정신적, 심미적 능력을 계발하는 일반과정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서유럽의 문화발전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중 지적이고 정신적이며 미학적인 요소들-위대한 철학자나 화가, 시인-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경우이다. 둘째, 문화는 한 인간이나 한 시대, 혹은 한 집단의 특정한 생활방식을 가리킨다. 이 정의를 가지고 서유럽의 문화발전을 논한다면, 지적이고 미학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교육 정도나 여가, 스포츠와 종교적 축제까지 포함하게 된다. 셋째, 문화는 지적 산문이나 지적 행위, 특히 예술활동을 일컫는다. 바꾸어 말하면, 이는 의미를 나타내거나 생산하는 혹은 의미 생산의 근거가 되는 것을 그 주된 기능으로 하는 텍스트나 문화적 행위를 말한다. 이 경우 문화는 구조주의자들과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실천행위와 동일하다. 이 정의를 사용한 예로 시나 소설, 발레, 오페라 그리고 순수미술을 생각할 수 있다.

   1990년대를 특징짓는 설명 중에 두드러진 한 가지는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가고 문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과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시대는 끝나고 민족적, 인종적 이유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갈등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인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이런 새로운 경향을 설명한다. 물론 여기에서 문명은 문화와 동의어적으로 쓰이고 있다. “문화”라는 단어가 가진 포괄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주거문화,” “복식문화,” “식생활문화” 등 삶의 기본적인 부분까지도 세분화하여 “문화”라는 단어를 빌어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 전통적인 엘리트 위주의 고급문화에 대한 반발로 소외된 계층이나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설명하려는 대중문화에 대한 고조된 관심을 반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문화의 상업화 경향에 대한 반발로서 저항문화의 발생을 경험하게 된다.  즉, 제국주의적 외래문화에 대한 민족문화, 상업적 지배문화에 대한 민중문화, 억압적 남성문화에 대한 여성문화, 보수적 기성문화에 대한 젊은이 문화, 전통적 문자문화에 대한 미디어문화 혹은 영상문화 등이 등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연구는 문화현상의 객관적인 분석을 넘어서 여러 형태의 문화들이 갈등하는 “문화전쟁”의 상태에 대한 실천적 연구를 지칭한다. 


2. 연구 대상으로서의 문화


   궁극적으로 “문화연구”는 문화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연구의 대상인 문화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매우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라는 데 있다.

   『문화』(Culture)라는 저서에서 크리스 젠크스(Chris Jenks)도 문화를 “역사가 있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문화”라는 개념이 18세기 후반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 그것은 산업화와 기술의 발달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이론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문명과 문화의 동의어적 관계는 산업혁명 이후에 분리되어 산업화와 상업화로 획일화된 “대중”의 물질적 저속성과 연관 있는 독일어 “(물질)문명”(Zivilisation)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예술과 인간 내면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엘리트적 “(정신)문화”(Kultur)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밖에 젠크스는 문화를 설명하는 네 가지 범주를 제시한다. 첫째, 그는 “인지적 범주”로서 문화를 “정신의 보편적인 상태”로 설명한다.  둘째, “집단적 범주”로서 문화는 “사회에서 지적 그리고/혹은 도덕적 발달의 상태”로서 문명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다. 셋째, “기술적 범주”로서 문화는 어느 한 사회 내에서 “예술과 지적 작업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 넷째, “사회적 범주”로서 문화는 “한 민족의 총체적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이렇게 복잡한 문화라는 용어는 그것이 세분화되어 사용될 때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문화연구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대중문화”라는 용어는 영어에서 두 가지 용어를 지칭한다. 첫 번째 의미의 대중문화는 대중으로부터 생겨난(of the people) 혹은 대중에게 인기 있는 문화(popular culture)를 의미한다. 두 번째 의미의 대중문화는 대중(the masses)을 위해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문화(mass culture)를 지칭한다. 이런 구분을 위해 후자를 “대량의 문화”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대 문화연구의 효시라고 하는 버밍햄의 문화연구에서 연구의 대상이 되었던 문화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화연구는 버밍햄의 현대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 연구소의 이름이 보여주듯이, 전통적인 인류학과는 달리 문화연구는 현대 산업사회의 문화에 대한 분석에 중점을 둔다. 또한 전통적인 인문학과는 달리 문화연구는 고급문화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형태의 문화를 연구한다. 폴 윌리스(Paul Willis)는 『일하기 위해 배우기』(Learning to Labour)에서 문화를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재료, 즉 우리의 가장 일반적인 이해의 벽돌과 모르타르”라고 정의한다(185). 여기에서 문화는 우월성과 반대되는 ‘일상성’과 정신적인 면과 관련 있는 ‘물질성’을 의미한다. 버밍햄의 문화연구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던 윌리암스에 의하면, “문화라는 개념은 우리의 일반적인 삶의 조건에서 보편적이고 중요한 변화에 대한 보편적인 반응이다. 그는 문화를 “물질적이고 지적이며 정신적인 총체적 삶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이런 의미의 문화는 정신적인 우월성만을 주장하는 고급문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포괄적인 ‘총체성’을 의미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홀은 「인종과 민족에 대한 연구에서 그람시의 적절성」(“Gramsci's Relevance for the Study of Race and Ethnicity”)에서 문화를 “어느 특정한 역사적 사회의 실천, 재현, 언어 그리고 관습의 실질적이고 근거가 있는 영역”과 “대중적인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것을 형성하도록 도와주는 ‘상식’의 상충하는 형태들”로 정의한다 여기에서 홀은 문화의 ‘역사성,’ ‘실천성’ 그리고 ‘갈등’을 강조한다. 버밍햄의 현대문화연구소의 연구 경향은 그들이 문화의 ‘일상성,’ ‘물질성,’ ‘역사성,’ ‘실천성,’ ‘갈등,’ ‘총체성’을 강조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그들은 이런 의미들을 가진 문화를 갈등적인 사회관계와 개인의 “산” 경험이나 주체성과 연결하여 연구한다.

  

 2. 리처드 호가트의 <교양의 효용>


 호가트는 1964년에 버밍햄 현대문화연구소(the Birmingham Centre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의 초대 연구소장으로 부임한다. 본래 버밍햄대학의 영어영문학과에 속해 있던 현대문화연구소에서는 역사학과 철학, 사회학 그리고 문학 세 분야 모두에 걸쳐 문화를 연구한다. 그 당시 호가트는 문학 이외에 다른 문화현상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문학비평을 문화연구의 중심적 연구 방법으로 채택한다.

 호가트의 저서 <교양의 효용> 은 2부로 되어 있다. 1부는 호가트의 어린 시절(1930년대)의 노동계급 문화를 묘사한 과거의 질서이고, 2부는 1950년대 새로운 형태로 대량생산된 오락 때문에 위기에 처한 전통적 노동계급 문화를 묘사한 새 것에 대한 양보이다. 호가트가 공격하는 것은 노동 계급의 도덕적 쇠락이 아니라, 노동계급에 제공되는 문화가 도덕적 성실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노동계급이 대중문화의 조작적 성격을 물리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주 말한다.

 호가트는 노동계급의 미학을 일상의 갖가지 일들에 대한 세세한 관심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깊은 관심, 탐구하기 보다는 ‘보여주기’를 원하는 문화에 대한 취향 등으로 묘사한다. 그러므로 호가트의 설명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소비자는 평범한 생활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이 본질적으로 재미있다는 믿음을 구현하고 이를 더욱 강화시켜 나간다. 그런데 1950년대의 새로운 대중오락은 이러한 미적 요소를 약화시키고 훼손한다는 것이다. 대량생산된 오락의 즐거움은 무책임하고 대리만족일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오래되고 건강한 문화구조마저도 파괴한다.

 호가트가 풍요롭고 충만한 삶이라고 불렀던 1930년대의 노동계급 문화의 특징은 강한 공동체 의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이다. <교양의 효용>의 전반부는 대부분 공동체적이며 자생적인 오락의 예들을 다루고 있다. 그 분석은 종종 리비스주의를 앞지르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대중가요에 대한 노동계층의 인식과 이해를 옹호한다. 관중들은 문화산업이 제공한 상품들을 그들의 목적을 위해 그들 나름대로 조절하여 사용한다는 생각은 충분한 연구결과가 아니지만 호가트는 분명히 궤변인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후반부에서 호가트는 당시 생활의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면서 노동계급 문화의 자생적인 면들을 거의 감추다시피 하였다. 1930년대 노동계급의 즐거움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중요했던 대중미학은 1950년대의 대중문화를 비난하기 위해 서두르는 바람에 사라져 버렸다. “라디오 연속극들이 노동계급의 여성들에게 크게 인기를 얻는 것은...지극히 보편적이고 별 볼일 없는 우상에 대한 탁월한 재현에 그들이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대중미학에 대해 논하는 대신에 우리는 대량문화의 조작적인 힘을 증명하는 예만을 보게 된다. 1950년대의 대중문화는 호가트에 의하면 더 이상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하며, 모든 것이 너무나 얄팍하고 무미건조하다. 상업문화의 힘은 이미 성장해서 새 것(대량문화의 빛나는 야만성)이라는 명목으로 오래된 것, 즉 과거(전통적 노동계급 문화)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그 세계에서는 “구식인 것은 비난받기 마련이다.”

 1950년대의 현대물로서의 대중문화로 당시 15세에서 20세 사이의 소년들이 주로 갔던 쥬크 박스(the juke box boys)를 예로 들고 있다. 그들이 그 곳에 가는 주된 이유는 끊임없이 자동 레코드 플레이어에다가 동전을 집어넣기 위한 것이다. 호가트가 보기에 그들은 우울한 집단이기 때문에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현대 대량문화의 흐름에 한층 쉽게 노출될 것이다. 쥬크 박스 소년은 “인구의 대부분이 텔레비전 수상기나 포스터, 영화 스크린에 눈을 고정시킨 채 순종하고 수용하는 수동적인 상태의 사회가 올 것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이다. 그러나 호가트는 대량문화의 행진에 대해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노동계급은 문학에 대한 그들의 단순한 이해 수준만큼 상상력이 빈곤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의 공동체적이고 자생적인 대중문화는 아직도 노동계급의 표현방식, 이를테면 ”노동자클럽이나 노래 부르는 스타일, 관악대, 구식 잡지들, 다트게임이나 도미노와 같은 그룹게임“에 남아 있다.  호가트는 그들의 ”대단한 도덕적 능력“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궁극적인 두려움은 경쟁적인 상업이 전체주의적인 구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문학비평론 <문화연구> /박태상(한국방송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