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s/나누고 싶은 이야기

이것도 글이라고

Peter Hong 2024. 2. 29. 04:20

[매경춘추] 이것도 글이라고
김학철 연세대 교수

강의 시간에 학생 하나를 지목해서 하는 놀이가 있다. 그 학생에게 세 가지를 연이어 묻는다. "부모님을 사랑하는가, 친구를 위해 희생한 적이 있는가, 존경하는 스승이 있는가?" 거의 대다수 학생이 모두 "예"라고 답한다. 그러면 나는 전체 학생에게 이렇게 선언한다. "여러분, 이 학생은 참 모범적입니다. 이 학생과 친구가 되면 좋겠군요." 그러나 같은 학생에게 바로 다른 세 질문을 던진다.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있는가, 친했다고 여긴 친구와 다투고 만나지 않은 경험이 있는가, 뒤에서 선생을 인격적으로 모독한 적이 있는가?" 이 세 질문에도 대부분은 역시 "예'라고 대답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면 이번에는 수강생 모두에게 이렇게 알린다. "여러분, 이 학생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 학생과는 되도록이면 멀리하세요." 학생들은 미소를 짓거나 소리 내어 웃는다. 그때 이렇게 학생들에게 묻는다. "이 학생은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쁜 사람입니까?" 독자도 같이 답해 보시면 어떨까.

나는 어떤 사실이나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질문만 했을 뿐이나 이 질문으로 동일한 사람을 한 번은 '좋은 사람'으로, 다른 한 번은 '몹쓸 사람'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거짓말은커녕 이 학생에 관해 단 한마디도 개인 의견을 말한 적이 없다. 내가 구성한 질문만으로, 그리고 그에 대한 학생의 솔직한 대답만으로 이 학생에 관한 의견을 극단적으로 나눌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대표적인 선동의 논리이며, 기만적 논법이다. 고안된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하는 것으로 질문자의 '허수아비'는 만들어지며, 그 허수아비에 대한 칭찬이나 공격이 모두 가능해진다. 그 학생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 학생에 대한 평가는 이런저런 사안을 전체적으로 고려할 뿐만 아니라 그가 놓인 문화, 경제, 사회, 정치적 맥락을 감안해야 가능하다.

이런 선동의 논법과 허수아비 만들기는 논리학 시간에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논리적 오류들을 적극 활용하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본다. 각 정당이 상대 정당들에, 한 국가가 다른 '적대' 국가들에 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면서 참는다. 그러면 안 되지만 그렇게 해온 '역사'를 참작한다. 심지어 개인 간에 헐뜯기나 이간질 용도로 그 논법을 악용하는 사람도 '못난 사람'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넘어간다. 그러나 사회의 진실을 담는 공기(公器)라는 언론인이나 진실 추구를 사명으로 하는 지식인이 이런 논법을 구사하면 나도 모르게 미간 사이 꽉 잡힌 주름이 쉽게 펴지지 않는다. 언필칭 언론인이나 지식인이 그런 논법을 사용해 쓴 글이 인터넷에 게재될 때, 바라기로는 반응란에 "이것도 글이라고"를 나타내는 전용 이모티콘이 추가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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