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거지악(七去之惡)과 삼불거(三不去) 오불취(五不取(娶)
칠거지악(七去之惡)
일곱 가지 내쫓을 수 있는 허물. 당(唐)나라 때의 율령법(律令法)에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조건을 이르는 말이다. 칠거지악(七去之惡)은 중국, 한국 등 유교문화권에서 남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유, 다시 말해 이혼사유이다. 글자 그대로는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가지 잘못'이라는 뜻이다. 《공자가어》에 처음으로 이런 내용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일곱가지 잘못은 다음과 같다.
1.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不順父母)
2. 아들이 없음(無子)
3. 음탕함(不貞)
4. 질투함(嫉妬)
5. 나쁜 병이 있음(惡疾)
6. 말이 많음(口說)
7. 도둑질을 함(竊盜)
그러나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잘못을 지었더라도 다음과 같은 세가지 경우에는 내쫓지 못하도록 하였다.
내쫓아도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 (有所取無所歸不去)
함께 부모의 삼년상을 치른 경우 (與共更三年喪不去)
전에 가난하였으나 혼인한 후 부자가 된 경우 (前貧賤後富貴不去)
이런 세가지 경우를 삼불거(三不去) 또는 삼불출(三不出)이라고 한다.
사례
세종실록에 칠거지악과 삼불거의 사례가 언급되어 있다. 좌찬성(左贊成) 이맹균(李孟畇)의 처 이씨(李氏)가 나이가 거의 일흔이 되었지만 남편이 계집종을 총애하자 이를 질투하여 계집종을 움 속에 가두고 학대하여 굶겨 죽였다. 세종은 사간원에서 이맹균을 탄핵하는 상소를 받고 그를 귀양보냈으나 그의 부인은 벌하지 않았다. 사헌부에서는 부인 이씨가 자식도 없고 질투가 심하니 칠거(七去)의 도리에서 이거(二去)를 범했다며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세종은 삼불거를 인용하여 '전에는 빈천하다가 나중에 부귀해지면 버리지 못하는 것이고, 함께 삼년상(三年喪)을 입었으면 버리지 못한다'면서 부인을 이혼시킬 수 없다고 반대했다.
삼불거 (三不去)
가계존속(家系存續)을 보장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혼인관계가 쉽게 깨어지는 것을 예방하는 제도적인 규범이다. 전통적인 부계친족제도 아래서는 혼인이란 당사자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한 가문과 다른 가문간의 문제였기 때문에, 일단 맺어진 혼인관계는 쉽사리 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경우 조강지처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도덕관념이 있었으며, 정당한 이유 없이 처나 첩을 버리거나, 처나 첩으로서 함부로 개가하는 것을 금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유교적 예교(禮敎)가 크게 보급됨에 따라 혼인제도도 전면적으로 정비되었는데, 이때 이혼제도의 근본원리를 이룬 것이 칠거지악(七去之惡, 七出)·삼불거의 규범이었다.
조선시대는 일반적으로 이혼을 제한하면서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이유가 있는 아내에 대해서만 이혼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러나 칠거지악의 죄가 있더라도 삼불거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쉽사리 이혼이 성립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칠거지악의 규범이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였다.
삼불거란
① 시부모를 위해 삼년상을 치른 경우,
② 혼인 당시 가난하고 천한 지위에 있었으나 후에 부귀를 얻은 경우,
③ 이혼한 뒤에 돌아갈 만한 친정이 없는 경우는 도의상 그런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에 법제로서 통용한 『대명률(大明律)』에 칠거지악의 죄를 범하였더라도 삼불거에 해당하는 처와 이혼한 자에 대해서는 처벌을 가하고, 본래의 처와 다시 결합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다. 이와 같이, 삼불거의 규율은 이론상 이혼제한의 시책에 대하여 유효한 원리로서 이용되었으나, 실제적인 적용에 있어서는 많은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있었다. 즉, 일부 유학자들은 불량한 처에까지도 이혼금지를 지나치게 적용하면 도리어 사회풍교(社會風敎)에 있어서 불미한 결과를 남기게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의절(義絶)의 경우와 같이 이혼을 시인할 수밖에 없을 때는 삼불거에 해당하는 자라도 그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오불취(五不取(娶)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며느리로 들이지 않는 것이 있다. 패역한 집안의 자식은 들이지 않는다. 음란한 집안의 자식은 들이지 않는다. 대대로 형벌을 받은 사람이 있으면 들이지 않는다. 대대로 나쁜 병이 있으면 들이지 않는다. 어머니를 여읜 장녀는 들이지 않는다.(女有五不取. 逆家子不取. 亂家子不取. 世有刑人不取. 世有惡疾不取. 喪婦長子不取.)」《대대례기(大戴禮記) 〈본명(本命)〉》
이에 대해 왕빙진(王聘珍)은 《공양해고(公羊解詁)》에서 다음과 같이 주해를 달고 있다.
「취(取)는 취(聚)로 읽는다. 역(逆)은 패역을 말한다. 난(亂)은 음란이다. 형인(刑人)은 죄로 인해 묵(墨)형(얼굴에 먹을 넣는 형벌), 의(劓)형(코를 베는 형벌), 궁(宮)형(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 월(刖)형(발꿈치를 베는 형벌), 곤(髡)형(머리를 깎는 형벌) 등의 형벌을 받은 자를 말한다. 악질은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 창질, 대머리, 절름발이, 곱사 등 인륜으로 미칠 수 없는 것들을 말한다. 어머니를 여읜 장녀란 아버지가 부인을 잃어 그 딸이 나이가 많이 들어 혼기가 어그러진 것을 말한다.
(取, 讀曰聚. 逆, 謂悖逆. 亂, 淫亂也. 刑人, 謂以罪受墨, 劓, 宮, 刖, 髡刑者. 惡疾, 謂瘖, 聾, 盲, 癘, 禿, 跛, 傴, 不逮人倫之屬也. 喪婦長子, 謂父喪其婦, 其女子年長愆期者也.)」 고대에는 딸도 ‘자(子)’라고 했다.
《공양전(公羊傳) 〈장공(莊公) 27년〉》의 하휴(何休) 주(注)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여자에게는 칠거와 오불취와 삼불거가 있다. 삼년상을 지냈으면 내치지 않는다. 은혜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집올 때는 가난했는데 나중에 부귀하게 되면 내치지 않는다. 덕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로 받아들인 바 있지만 (내침을 당해)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으면 내치지 않는다. 사람을 막다른 궁지에 몰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여읜 장녀를 들이지 않는 것은 가르침과 훈계가 없기 때문이다. 대대로 악질이 있는 집안의 딸을 들이지 않는 것은 하늘의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대로 형벌을 받은 집안의 딸을 들이지 않는 것은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음란한 집안의 여자를 들이지 않는 것은 대체로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패역한 집안의 딸을 들이지 않는 것은 인륜을 폐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못 낳으면 내치는 것은 대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음란하면 내치는 것은 족속들을 문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내치는 것은 패덕하기 때문이다. 말이 많으면 내치는 것은 친척들을 이간하기 때문이다. 도둑질하면 내치는 것은 의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질투하면 내치는 것은 집안을 어지럽게 하기 때문이다. 나쁜 질병이 있으면 내치는 것은 종묘를 받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셔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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