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Chinese Language)/중국고전모음

붕우유신(朋友有信)

Peter Hong 2020. 3. 14. 07:57


 

 

붕우유신(朋友有信)

 

오륜의 하나로,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는 말이다.

 

: 벗 붕(/4)

: 벗 우(/2)

: 있을 유(/2)

: 믿을 신(/7)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말 뜻 그대로 유교(儒敎)에서 지켜야 할 세가지 강령(綱領)과 다섯가지 인륜(人倫)을 말한다.

 

여기에서 삼강(三綱)이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의미한다. ,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하고(君爲臣綱), 아버지는 자식의 벼리가 되어야 하고(父爲子綱), 지아비는 지어미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夫爲婦綱)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벼리는 그물에 있어서 근본이 되는 굵은 줄을 말하는 것인데,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법도(法度)라고 풀이하거나, 책임자 등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오륜(五倫)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의미한다. ,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하고(父子有親),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하고(君臣有義),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하고(夫婦有別),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고(長幼有序),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朋友有信)는 가르침이다.

 

()이나 우() 모두 벗을 말한다. 중국에서 노붕우(老朋友)는 오랜 친구를 뜻한다. 우리나라를 이렇게 불러 놓고는 중국이 사드 등으로 온갖 졸렬한 짓거리를 하고 겉으로는 태연한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말이다.

 

모두 벗을 뜻해도 붕우(朋友)는 차이가 있다. 논어(論語) 첫 머리에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는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은 한 스승 아래서 공부한 동문(同文)을 뜻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는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붕정(朋情)이란 말은 없고 우정(友情)이 있듯이 아무래도 동문보다는 고우(故友)가 더 가까운 벗이다. 어떤 벗이든 벗 사이에(朋友)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有信)는 이 성어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인륜(人倫)의 기준으로 삼아 온 이것은 공맹(孔孟)의 학설에 기초하여 전한(前漢)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가 논한 삼강오상설(三綱五常說)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라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오계(五戒) 중 교우이신(交友以信)과 통하는 말이다. 조선 세종대왕(世宗大王) 때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편찬한 뒤 이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이 발간되었다.

 

중종(中宗)때 학자 박세무(朴世茂)가 펴낸 동몽선습(童蒙先習)은 학동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오륜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붕우편에서 논어를 인용하여 정직하고(友直; 우직), 성실하며(友諒; 우량), 견문이 많은(友多聞; 우다문) 친구를 사귀면 유익할 것이라 했다.

 

朋友同類之人이라

붕우는 동류지인이라

벗과 벗은 같은 무리의 사람이라

 

益者三友損者三友

익자가 삼우요 손자가 삼우니

유익한 벗이 세 종류 있고, 해로운 벗이 세 종류가 있으니,

 

友直하며 友諒하며 友多聞이면 益矣

우직하며 우량하며 우다문이면 익의요

벗이 곧고 벗이 미더우며 벗이 견문이 넓으면 이롭고,

 

友便辟하며 友善柔하며 友便侫하면 損矣

우편벽하며 우선유하며 우편녕하면 손의라

벗이 편벽되고 벗이 유약하며 벗이 아첨하면 해롭다.

 

友也者友其德也

우야자는 우기덕야라

벗이란 그 덕을 벗하는 것이라

 

自天子至於庶人未有不須友以成者하니 其分若疎而其所關爲至親하니라.

자천자로 지어서인에 미유불수우이성자하니 기분이 약조이기소관이 위지친하니라.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벗으로써 이루지 못하는 자가 없으니, 그 정분이 성긴 듯하면서도 그 관계하는 바가 매우 친하게 된다.

 

是故取友必端人하며 擇友必勝己

시고로 취우를 필단인하며 택우를 필승기라

그러므로 벗을 취하되 반드시 단정한 사람이어야 하며 친구를 선택하되 반드시 자기보다 나아야 한다.

 

要當責善以信하며 切切偲偲하여 忠告而善道之하다가 不可則止니라.

요당책선이신하며 절절시시하여 충고이선도지하다가 불가즉지니라.

그래서 마땅히 꾸짖고 믿음으로써 착하게 하고 간절히 진실하게 충고하며 선으로 인도하다가 안 되면 그만둘 것이로다.

 

苟或交遊之際不以切磋琢磨爲相與하고 但以歡狎戱謔으로 爲相親則安能久而不疎乎리요

구혹교유지제에 불이절차탁마로 위상여하고 단이환압희학으로 위상친칙안능구이불소호리요

진실로 사귀어 놀 때에 절차탁마(切嗟琢磨)로 서로 관여하지 않고 다만 장난이나 하고 익살이나 하며 서로 친해진다면 어찌 능히 오래도록 틈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昔者晏子與人交하되 久而敬之하니 朋友之道當如是也

석자에 안자는 여인교하되 구이경지하니 붕우지도는 당여시야라

옛날에 안자는 남과 교제할 때 오래도록 공경하였으니, 벗끼리의 도리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孔子曰 不信乎朋友이면 不獲乎上矣信乎朋友有道하니 不順乎親이면 不信乎朋友矣하시니라.

공자왈 불신호붕우이면 불획호상의라 신호붕우에 유도하니 불순호친이면 불신호붕우의하시니라.

그러므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친구에게 신용이 없으면 웃 사람에게도 신망을 얻지 못한다. 친구들에게 신용을 얻는 방도가 있으니 어버이에게 공손하지 못하면 친구들에게 신용이 없다.”하셨느니라.

 

주자(朱子)가 교열했다는 소학(小學)이 너무 어려워 우리나라에서 쉽게 풀어 쓴 사자소학(四字小學)에도 사람이 귀한 이유는 오륜과 삼강 때문이라고 했다.

人所以貴 以其倫綱(인소이귀 이기윤강)

 

오늘날 군신관계는 없어졌고 오륜을 따지면 케케묵었다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성이 곧은 사람은 알게 모르게 지키게 된다. 너무나 살벌한 범죄가 잦은 사회에서는 이런 바른 사람이 잘 살 수 있게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

 

 

인정이 아니면 사귀지 말라

 

친구의 옛말이 붕우(朋友)입니다. 여기서 붕()은 붕당(朋黨)처럼 뜻[]으로 함께하는 벗을 말하고, ()는 우정(友情)처럼 마음[]으로 사귄 벗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붕우가 들어가는 유명한 말이 붕우유신(朋友有信)입니다. 한뜻으로 모였건 마음으로 사귀었건, 벗이란 모름지기 신의(信義)로 맺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그래야 마땅하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믿었던 사람에게 씁쓸한 일을 안 당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한마음인 줄 알았는데 딴마음이었다거나, 정을 나눈다 생각했는데 정만 챙겨 갔다거나, 그쪽 필요할 때는 알은척이고 이쪽 필요할 때는 본척만척이라든가.

 

물이 아니면 건너지 말고 인정이 아니면 사귀지 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믿음과 의리가 바탕이 되어야지 잇속을 따져 사귀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필요에 따라 물은 건너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 간다는 건너다를 사람 사이에 쓰면 곤란합니다. 그건 사람을 오로지 인맥의 징검다리로만 이용한다는 말이니까요.

 

어제 저버린 사람, 그 관계망의 징검돌을 또다시 디뎌야 할 날이 언제고 분명옵니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끊긴 징검다리 한가운데서 오도카니 볼멘소리를 하겠지요. 하지만 그는 끝내 모를 겁니다. 디디라 내어준 마음을 짓밟고 지나갔단 사실을. 그리고 필경 알게 될 겁니다. 마음의 징검돌이 한 번은 짓밟힐 수 있어도 두 번을 디디게는 안 해줄 거란 사실을.

 

믿을 신()에서 사람 인()을 빼고 나면 말[]뿐입니다. 깊은 정 없이 이해득실 따라 딴말로 사람 사이 건너다니는 그는 붕()도 우()도 아닙니다. 언제든 휴대폰에서 지워버리고 또 지워질 수 있는 오다가다 아는 친구일 뿐입니다. 그가 어쩌면 나일지도 모릅니다.

 

 

새도 옳은 것을 안다

 

언젠가 중국 SNS를 뜨겁게 달군 영상 가운데에 짝을 잃은 어린 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기르던 어린 새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갑자기 죽자 주인이 휴지에 말아서 버리려 하는데 나머지 한 마리가 가로막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새는 짝을 떠나 보내기가 아쉬운 듯 말린 휴지 속으로 들어가 죽은 새를 끌어내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주인이 잠시 이별의 시간을 주기 위해 휴지를 풀어주자 죽은 새의 뺨을 문질러 보기고 하고, 등을 밀어보기도 하면서 깨우려 하였습니다. 한참 뒤 주인이 다시 휴지를 말려고 하자 이번에는 주인의 손을 쪼면서 짝을 보내기 싫어 하였습니다.

 

함께 살던 강아지도 한 마리가 먼저 죽으면 이처럼 짝을 보내기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강아지는 자기 짝이 없으면 음식도 먹지 않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자기 혼자서는 먹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짝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폴폴 날아다니는 새도 그렇게 한다니 참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우리나라에도 새가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야기가 있었던 같습니다. 한 사진작가의 렌즈에 죽은 짝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새가 포착된 것입니다.

 

당시 이 새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서도 죽어버린 동료를 떠나지 않고 잠시 날아올랐다가는 다시 돌아와 깨우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 사진 밑에 하물며 새도 이러할진대 사람들은 함부로 다른 사람을 해치는 악행을 저지르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취지의 설명과 함께, 사랑의 위대함을 배워야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중국 현대 미술가 중에 류쿠이링(劉奎齡)은 여러 동물 중에서도 새를 많이 그리고 또한 잘 그린 화가로 이름이 높습니다. 이 류쿠이링의 그림 가운데에 오륜도(五倫圖)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오륜(五倫)이라 함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다섯 가지 윤리를 말하는데, 그림을 들여다보면 학(), 금계(錦鷄), 원앙(鴛鴦), 공작(孔雀), 제비() 등 다섯 종류의 새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이 새들이 오륜을 상징하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학()은 주역(周易) 중부괘(中孚卦)우는 학은 그늘에 있고 그 새끼가 화답한다(鶴鳴在陰, 其子和之)’고 한 구절에서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즉 어미가 산기슭에서 울면 새끼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화답해서 울기 때문에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금계(錦鷄)는 다른 이름으로 준의라고도 하는데, ()자가 들어 있어서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상징으로 연결 짓는다고 합니다. 또한 금계는 봉황과 비슷하여 임금을 상징하기도 하였으니 군신(君臣)의 군()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원앙(鴛鴦)은 금슬 좋은 부부(夫婦)를 상징하므로 부부유별(夫婦有別)이 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공작(孔雀)은 좀 복잡합니다. 공작은 높은 곳을 오를 적에 반드시 왼발을 먼저 든다고 합니다. 이 때 발 하나를 드는 데도 그 차례()를 지키므로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제비()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상징합니다. 주인이 아무리 가난해도 강남 갔던 제비는 용케 제 살던 옛 둥지를 잊지 않고 찾아오므로 신의(信義)를 지킨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소한 그림 하나 하나에도 이처럼 특별한 의미를 담고자 한 옛 사람들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사람들은 이 오륜도를 보고, 새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의미를 스토리텔링으로 꾸며 교훈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에게 둘레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에서도 교훈을 찾는 지혜를 가꾸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관계, 으로 시작해 으로 끝난다

 

인간사회에서 인간관계를 잘 맺고 사는 것이야 말로 인생성공의 지름길이요, 처세의 관건이라 하겠다. 인간관계를 잘 맺으며 사는 방법과 지혜, 이것이 인간관리라 할 수 있다. 인간관리의 지혜와 방법을 살펴보기로 한다.

 

인간관계의 지극한 도리는 인()이다. 사람 인()자를 보면 사람은 혼자는 살 수 없는 동물로서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사는 사회적 동물임을 뜻하고 있다.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어질 인()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 사람(?)과의 관계에서 즉 남과의 관계에서 지극한 도리는 어짊이라고 풀이해 볼 수 있다. 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로는 사랑, 자비를 들 수 있겠다. , 사랑, 자비 이 글자가 지니고 있는 공통된 뜻은 나보다는 상대를 위하고, 배려하고, 이기(利己)가 아닌 이타(利他)의 뜻이 담겨 있다 하겠다. 그러므로 나 자신외의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녀야 할 지극한 도리, 처세의 키워드는 이라 할 수 있다.

 

가족관계에서의 필수덕목은 사랑(), (), 공경(), 우애(), 공손()이다. 나 자신 외의 모든 사람을 남이라 할 때 1차적인 인간관계는 혈연관계 즉 가족관계이다.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인 부모와 자식관계에서의 지녀야 할 도리는 부모는 자식을 자애(慈愛)로써 키워야 하고, 자식은 부모를 효로써 섬기는 부자자효(父慈子孝)이다.

 

부부관계에 있어서의 지극한 도리는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 대한 예의와 공경의 마음을 잃지 않는 상경여빈(相敬如賓)이다. 형제관계 있어서 지극한 도리는 형과 아우가 서로 우애로써 사랑하고 공손으로써 받드는 형우제공(兄友弟恭)이다. 이처럼 가족관계에서 사랑(), (), 공경(), 우애(), 공손()은 가화(家和)를 이루는 필수덕목이라 하겠다.

 

지인(知人)관계에서의 필수 덕목은, (), (), ()이다. 붕우유신(朋友有信) 즉 친구와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했다. 부모와 자식 같은 혈연관계에서는 믿음이 없어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지만 친구와 같은 지인(知人)과의 관계에서 믿음은 기본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언제나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호감 받는 사람은 잘 나고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여 상대에게 편안함을 주도록 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 사람, 그리움의 사람,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성공인생을 산 사람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믿음과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되어 언제나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지인(知人)과의 관계에 있어서 믿음(), 편안함(), 그리움()은 필수 덕목이라 하겠다.

 

 

붕우유신(朋友有信)

 

(朋友)이란 말을 하기는 쉬워도 참된 벗을 얻기는 참으로 어렵다. 오랜 시간을 두고 자주 마난 사람들이라도 모두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말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인륜(人倫)의 실천덕목(實踐德目)인 오륜(五倫)의 도리를 다하여 믿음()을 생명처럼 지키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사람은 인간 사이에 있어야 인간이다. 눈만 뜨면 서로가 함께 어울리며 살아간다. 어릴 시절 함께 놀던 사이를 죽마고우(竹馬故友)라 하고, 학우(學友), 전우(戰友), 직장에서 사귄 사우(社友), 등 친한 사람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을 친하다고 말하지 벗(朋友)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참으로 믿음이 있어야 벗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사대 성인(四大聖人)이며 대철학자인 공자(孔子)도 정치의 원칙을 묻는 제자 자공(子貢)에게, 첫째로 경제적 안정(족식; 足食), 둘째 자주국방(족병; 足兵), 셋째 신의의 사회(민신; 民信)의 구현이지만, 이 중에서 위정자(爲政者)와 백성들 사이에 신의(信義)가 없다면 정치나 백성도 존립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증자(曾子)도 매일 같이 내가 벗과 사귀면서 서로 믿음이 있는가? 라고 스스로 묻고 반성하였다고 했다.

 

이러한 인륜사상은 전한(前漢) 때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가 공자, 맹자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삼강오상설(三綱五常說), 또는 삼강오륜설(三綱五倫說)을 논하면서부터 중국을 위시하여 우리나라와 동양 전체에 오랜 동안 인륜의 행동기준으로 존중되어 왔다.

 

회남자(淮南子)에 이르기를 사람은 본시 마음이 청정(淸淨)하고, 평안하게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本性)이 그러 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을 단정히 하고 규율(規律)을 지킴은 인간행위의 규칙을 지키려 함이다. 사람이 본성을 자각하고 나면, 스스로 본성을 길러서 실수하는 일이 없고, 행위 규칙을 알면 일거일동(一擧一動)이 나쁜 것에 미혹(迷惑)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에 연유하여 볼 때 남이 자기에게 고상(高尙)하고 현명(賢明)한 사람이라 칭찬하는 것은 자기의 심력(心力)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비열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심죄(心罪)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진실과 믿음만이 벗을 만드는 근본이다. 불신(不信) 사회에서도 벗은 있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가도 벗은 언제나 믿음이 있다. 벗은 진실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믿음은 신념이다. 이러한 믿음이 사회에 확산된다면, 서로 의심하고 마음속에 빗장을 닫아걸었던 불신의 풍조는 사라진다. 오직 진실만이 통하는, 신뢰하고 살 수 있는 인간사회가 실현될 것이다. 불신풍조가 만연되고 있는 현대사회일수록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윤리야말로 더욱 필요하고 중요시해야 될 덕목(德目)이다.

 

사람은 조그마한 손해를 우습게 알고(輕視) 말을 가벼이 하거나, 작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는 것처럼 소홀히(미사; 微事)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된다. 이는 마치 환자가 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두었다가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때에 양의(良醫)를 찾아 헤매도 이미 도리 킬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저 참된 벗을 얻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가벼운 말과 작은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튼튼한 재방이 땅강아지나,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지고, 국보 1호 남대문도 한 가닥 불에 의하여 타 버렸다. 사람은 작은 돌을 차고 엎어지는 경우는 있어도, 큰 산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는 것처럼 벗을 사귈 때도 이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붕우유신(朋友有信)

 

세상에서는 많은 찬구들이 있지만 끝까지 자신을 믿어 주고 도와주는 친구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드물게 그런 친구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나 그런 친구를 원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죠.

 

친구란 정말 중요한 존재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것이 친구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요한 친구들과의 우정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만나면 마음이 편한 친구의 존재란 그렇게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만나는 친구들 같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 귀중한 존재들이지요. 마치 공기와도 같이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귀한 사람이 바로 친구입니다.

 

이런 친구들과의 우정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예절이 있어야만 됩니다. 우리의 조상들도 그 점을 중요하게 여겨 이런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말을 남기게 되었지요.

 

옛날 한 고을에 친구를 많이 사귀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서 하루에도 수없이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소년의 아버지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자식이 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것 좋은 일이지만 우정의 의미도 모르는 체 무작정 친구를 사귄다는 것도 문제이다. 이렇게 생각한 아버지는 어느 날 아들을 불러 앉혔습니다. “아들아, 너에겐 너무도 많은 친구들이 있는 것 같구나?”

 

아버지의 말을 들은 아들은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님, 옛 성현들도 많은 사람들과 인생의 도를 논하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본받아 그런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 사람들이 바로 너의 친구들이냐?”

, 저는 많은 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정은 그렇게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아니옵니다. 제 친구들은 모두들 저를 믿고 또 만나면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이 아비는 진실한 친구가 많지 않단다.”

하지만 정말 믿을 만한 좋은 친구가 있지. 그 친구는 단 한 명이란다. 네가 그렇게 말을 하니 네가 부럽구나.”

, 아버님. 저에겐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진실한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인생은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친구들이 많다는 것은 인생의 복이란다. 그러나 문제가 있단다.”

그것이 무엇인지요?”

내가 걱정하는 것은 네 친구들도 너를 그렇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란다.”

제가 그 친구들을 맞고 있듯 그 친구들 역시 저를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아, 우리 시합을 한 번 해 볼까?”

어떤 시합이요?”

난 너에게 새로운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시합을 해야겠구나.”

아버님이 원하신다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그럼 나를 따라오너라.”

 

아버지는 빈 가마니를 둘둘 말아 아들의 어깨에 메도록 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그것을 지고 제일 가까운 친구들을 찾아가거라.”

아버지, 이게 뭐지요?”

그것은 바로 시체란다.”

넌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하거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실수를 해서 사람을 죽였으니 제발 숨겨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웃었습니다. “아버지, 제 친구들은 모두 저를 믿기 때문에 모든 친구들이 반드시 서로 먼저 저를 숨겨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도 웃었습니다. “그러면 어서 친구들을 찾아가거라.”

 

아버지를 뒤로하고 아들은 친구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제일 먼저 찾은 친구는 재 너머에 살고 있었습니다. “얘가 제일 친한 친구입니다. 아버님, 저를 잘 보십시오. 그 친구가 숨겨 주게 되면 전 더 많은 친구를 사귈 것입니다.” “그래, 너를 숨겨 주는 친구가 한 명이라고 있으면 난 네가 친구들을 데리고 올 때마다 떡을 주겠다.”

 

아들은 그 친구의 집으로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윽고 그의 친구가 문을 열고 나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밤에 어쩐 일이니?” 아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다급하게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친구야, 나 큰일났다!”

 

아들이 그렇게 말을 하자 친구는 재빨리 몸을 사렸습니다. “동수야, 어깨에 메고 있는 건 뭐니? 혹시 시체 아니냐?” “그래, 싸움을 하다가 그만 사람을 죽였어. 난 정말 억울해. 나를 숨겨줘. 무서워 죽겠어.”

 

아들이 말을 마친 후 친구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 친구는 재빨리 문을 닫았습니다. “친구야, 너랑 친하지만 넌 사람을 죽였어.” “너를 숨겨 주게 되면 나도 벌을 받아. 하지만 우리들의 우정을 생각해서 너를 신고하고지는 않을 테니까 빨리 다른 곳으로 가거라.”

 

그 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대문을 닫았습니다. 아들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명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이상하다? 저 친구가 그럴 리가 없는데?”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알겠니, 아들아. 너 혼자만 저 친구를 믿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아버지, 저에겐 또 다른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찾아가겠습니다.” “얼마든지 네 친구들을 만나 보렴.” 아버지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또 한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그의 친구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친구야, 넌 나를 믿지? 난 정말 억울해. 이 사람이 잘못해서 나에게 대들다가 그만 내가 사람을 죽였어. 제발 나를 따돌리지 마라!”

 

그러자 그 친구는 친구야, 미안한 말이지만 부모님은 살인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지 말라고 했어. 넌 엄청난 일을 저지른 거야.” 이렇게 말한 친구는 다시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습니다.

 

친구들을 찾아갈수록 아들의 목소리는 다급해졌습니다. 마침내 지친 아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제 친구들이 이럴 줄은 몰랐어요!” “아들아, 세상엔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너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믿어 주는 친구는 없었다. 그러면 내 친구를 만나 볼까?”

 

아버지는 아들이 어깨에 메고 있던 물건을 받아메었습니다. “이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친구를 보렴. 이 아버지는 많은 친구는 없지만 그래도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귀한 친구가 한 명 있단다.” 아버지는 그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가 물건을 멘 채 문을 두드리자 친구가 나왔습니다. “아니, 자네 이 밤중에 웬일인가?”

 

아버지의 친구는 어깨에 멘 물건을 바라보고 얼른 아버지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건 시체가 아닌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내가 실수를 했다네. 이 사람은 내 아들의 친구라네. 아들 놈이 싸우고 있어 그만 편을 들다가 이렇게 되었다네. 하룻밤만 숨겨 줄 수 없겠나?” “잠깐만 기다리게. 내가 시체를 두고 올 테니까?”

 

그는 부엌에 가서 국을 끊여 아버지와 아들 앞에 놓았습니다. “얼른 많이 들게나. 기력이 있어야 의논을 할 게 아닌가.” “고맙네. 내가 살인을 저질렀는데도 이렇게 숨겨주니.”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닌가. 자네의 실수가 내 실수고, 자네 눈물이 내 눈물일 텐데. 그래, 자수를 할 건가 아니면 매장을 할 건가?” “그러면 자네는 내 뜻을 따르겠나?” “내 생각은 자수를 하는게 좋을 것 같네. 그렇지 않다면 나랑 같이 저 시체를 산에다 같이 묻게나.” “그러면 자네도 공범이 되는 것인데.” “할 수 없지. 자네는 나의 귀한 친구이니.”

 

아버지는 친구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고맙네! 역시 자네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좋은 친구야.” “친구야, 사실은 모두 연극이었어.” “연극이라니?” “아들 녀석이 하도 친구들을 함부로 사귀어서 가르치려고 일을 꾸몄지.” “저 가마니에 든 것은 쌀과 나무라네.”

 

그제서야 아버지의 친구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살인을 할 자네가 아님을 내 짐작했었지. 분명 자네에게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좌우간 연극이라니 다행이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잘 보았지? 네가 많이 사귀는 친구들보다 이 아버지는 많은 친구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진실한 친구를 사귀고 있지. 네게 아무리 많은 친구들이 있다 해도 진실한 친구가 없었던 거다. 이제 너도 커 가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겠지. 많은 친구들 보다는 붕우유신이란 말대로 믿음 있는 친구를 사귀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저도 몇 명의 좋은 친구들만을 깊게 사귀겠습니다.” “그래. 친구간의 도리를 다하게 된다면 너도 나 같은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아버지의 친구와 같은 사람은 정말 드물 것입니다.

 

 

(참다운 우정)

 

가와 가는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 살면서 공부도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라면서 차츰 정이 두터워지더니 마침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정을 버리지 말자. 누가 훗날 잘 되면 반드시 복과 불행을 함께 나누자.” 하고 굳게 맹세하고 형제의 의를 맺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두 사람의 처지는 하늘과 땅처럼 달라졌습니다. 은 과거에 합격하더니 벼슬을 얻어 날로 부유해졌으나 은 과거에 실패을 거듭하다가 집안의 형편마저 어려워서 끼니를 굶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되면 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역시 을 돕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을 도왔지만, 그는 친구를 마치 거지를 동정하듯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양식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은 창피함과 서운함을 참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 “내가 장차 벼슬에 오르면 그 때 충분히 돌봐 주겠네.” 하고 그는 을 만날 때마다 위로했습니다.

 

이런 날이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평양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평양으로 부임하러 떠날 때 에게, “앞으로도 계속 식량을 보내 줄 것이니 굳이 평안도까지 나를 찾아올 것 없네.” 하고 말했습니다. 은 친구의 이 말을 믿고 더욱 고마워했습니다.

 

그러나 평양으로 떠난 은 그 후 소식도 없었고 양식도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친구인 을 의지하며 살아오던 은 살길이 막막하였습니다. 은 자신의 배고픔보다 식구들의 굶주림이 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참다못한 은 어느 날 평안도를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노자 한 푼 없이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는 동안 걸식을 하며 부르튼 발을 끌고 평양에 간신히 닿긴 했지만, 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비참한 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평양 감사라면 그 당시 권세 있고 호강스러운 벼슬자리였습니다. 그러데 이때 은 불쌍한 친구를 마지못해 맞아 주었고, 조금도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식은 밥 한 그릇을 마룻바닥에 차려 주며, “이거나 먹고 아무 말 말고 어서 돌아가게.”하고 냉정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은 화가 한꺼번에 복 바쳐 당장 상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지만 애써 꾹 참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자네가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네.” 은 울먹이면서 뜰로 내려섰습니다. 그러나 은 친구를 말리기는 커녕 자리에 앉은 채 경멸스런 눈길로 바라보면서 이 문 밖으로 나갈 때까지 꼼짝도 안했습니다.

 

은 곧장 성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친구의 배신을 생각하면 대동강 깊은 물에 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있는 집의 식구들을 버릴 수 없어 휘청거리며 걸었습니다. 얼마를 걸었을까. 날이 어두울 무렵 겨우 길가 방앗간으로 찾아들어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 때 어느 늙은 여인이 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시장하실 터이니 우선 식사나 드시고 편히 쉬었다가 가시지요.”하고 조촐한 밥상을 차려다 놓았습니다. 반찬은 몇 가지 안 되었으나 따뜻한 찌개에다가 쌀밥, 그리고 술도 몇 잔 곁들여 있었습니다. “이 음식은 감사께서 보내신 음식입니다.” 여인은 간단히 말하고 방에서 물러갔습니다.

 

그놈이 나를 죽지 않을 만큼 고생시키려는가 보다. 그는 괘씸한 생각이 불쑥 났습니다. 하지만 여러날 굶었기 때문에 어느 새 손이 먼저 숟가락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튼날 깨어보니 방앗간은 원래 텅 빈집이었습니다. 밥을 가져다 준 여인은 커녕 아무 것도 눈에 뛰지 않았습니다.

 

그는 몹시 이상했지만 집으로 돌아갈 길이 더 급했습니다. 옷이 넝마처럼 되었고 몰골은 귀신같았습니다. 이제 그는 원망도 지치고 집 걱정마저 잊었고 정처 없이 간신히 발을 옮겼습니다. 그가 송도 가까이 왔을 때 갑자기 관청의 하인 차림을 한 사나이가 뒤쫓아 오더니, “평양 감사께서 주신 편지입니다.”하고 편지 한 장을 준 후 바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는 어리둥절해 하면서 겉봉을 뜯었습니다. “자네 집에 초상이 났으니 곧장 돌아가게나.” 편지의 사연은 간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찔했습니다. 초상이라고 했기 때문에 누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식구 중 누가 죽은게 분명하다고 그는 얼핏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죽을 고비에서 헤매는 처지이면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마치 도깨비에 홀린 사람처럼 곧장 걸어서 집에 간신히 돌아온 그는 다시한번 기절할 듯이 깜짝 놀랐습니다. 전에 살던 오막살이에는 식구들 아닌 남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기어코 집마저 팔아 버렸구나! 틀림없이 온 식구가 거리를 헤매다가 죽었나 보구나.” 그는 이러한 말을 되뇌면서 흐르는 눈물을 씻지 않고 한밤중의 거리를 정처없이 더듬었습니다.

 

이윽고 자정을 알리는 인경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어느 집 대문에 기대서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그 집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었는데 때아닌 인기척에 놀랐는지 안에서 어린 종이 대문을 열었습니다. 바깥을 내다본 어린 종은 을 보더니, “어 어른이 혹시...”하고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그리고 어린 종은 무슨 귀신에라도 쫓기듯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다시 일어나 대문 안 쪽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상복을 입은 젊은이가 쫓아 나오고, 또 같은 차림의 여인이 두서너 명이 뒤따라 나왔습니다.

 

그 순간 그는 , 우리 식구들이구나!”하고 외치며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그러나 깜짝 놀란 사람은 안에서 나오다가 우뚝서 버린 그 집의 식구들이었습니다. “아버님, 웬일이십니까?” 아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 여보!”하는 그의 아내는 땅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 모습들이 마치 귀신, 다시 말해서 죽은 사람의 혼을 대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가 들여다 본 안채 큰 마루에는 장례식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그는 식구들의 얘기를 듣고서야 궁금증이 사라졌습니다.

 

그가 평안도로 떠난 지 얼마 후 식구들은 평양 감사의 심부름꾼이 내려와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시켜 주었습니다. 물론 좋은 집에다가 곡간에는 또 식량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후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엊그제 별안간 관을 떠메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양 감사가 시켰다면서, “댁의 주인어른께서 평양에 계시다가 병환으로 그만 돌아가셨소.”하고 그대로 가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내일 장례를 치르려고 했었는데 이 때 공교롭게도 그가 돌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모두 놀랄 수밖에 없지요.”하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남편이 꼭 귀신인 줄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루 한복판에 관이 놓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집은 삽시간에 웃음바다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감격해야 될 일은 이 관 뚜껑을 열었을때 일어났습니다. 관에는 송장 대신 동전, 은전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재물을 거저 얻으면 쉽게 없애기 쉽고, 또 게을러지는 까닭에 내가 자네에게 마음에 없는 고생을 시켰네. 이 돈은 내가 절약하여 모은 돈이니 부디 뜻있게 쓰고 또 후에 출세할 밑천으로 삼게.” 그는 친구가 보낸 글에 얼굴을 대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벗 붕)은 고대(古代)에 보배로운 재물로 삼은 조개를 한 쌍으로 나란히 늘어뜨린 모양을 본떴다. 나란히 계속되는 데서 벗이나 한패의 뜻으로 되었다. 자패(紫貝) 다섯 개를 끈에 꿴 것의 한 쌍으로 즉, 열 개의 조개를 일붕(一朋)이라고 한다. 그래서 (), 친구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 같은 부류(部類), 마을 두 동이(분량을 세는 단위) 화폐(貨幣) 단위 떼를 짓다, 무리를 이루다 같다, 같게 하다 무너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벗 우()이다. 용례로는 동아리 끼리 어울려 모임을 붕결(朋結), 이해나 주의 따위를 함께 하는 사람끼리 뭉친 동아리를 붕당(朋黨), 같이 한 패를 이룬 무리를 붕도(朋徒), 나이나 신분이 비슷한 동아리를 붕배(朋輩), 붕당을 지어 자기편을 두둔함을 붕비(朋比), 벗으로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우(朋友), 벗으로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벗을 붕집(朋執), 많은 사람이 작당하여 일어남을 붕흥(朋興), 같이 어울리는 벗을 붕반(朋伴), 좋은 벗을 가붕(佳朋), 얼굴이나 알고 지내는 정도의 벗을 면붕(面朋), 한데 어울려시를 짓는 벗을 시붕(詩朋), 품격이 높은 벗을 고붕(高朋), 서로 믿는 벗을 신붕(信朋), 좋은 친구를 양붕(良朋), 손님으로 대접하는 좋은 벗을 빈붕(賓朋),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을 심붕(心朋), 옛 친구를 구붕(舊朋), 술 친구나 술로 사귄 벗을 주붕(酒朋), 친한 벗을 친붕(親朋), 많은 보배로 붕은 쌍조개의 뜻으로 옛날에 돈으로 쓰인데서 나온 말을 백붕(百朋), 오륜의 하나로 친구 사이의 도리는 믿음에 있다는 붕우유신(朋友有信), 친구는 서로 착한 일을 권한다는 뜻으로 참다운 친구라면 서로 나쁜 짓을 못 하도록 권하고 좋은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붕우책선(朋友責善) 등에 쓰인다.

 

(벗 우)는 회의문자로 또 우(; 오른손, , 다시)가 겹쳐 쓰여 이루어졌다. ()가 음()을 나타내기도 하며 친한 친구끼리 왼손(부수를 제외한 글자)과 오른손()을 서로 맞잡고 웃으며 친하게 지낸다 하여 벗을 뜻한다. 동족의 친구를 ()이라는데 대하여 관리(官吏) 친구를 ()라 하였으나 나중에 ()()도 친구를 의미하며 사이좋게 하는 일의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는 벗, 친구, 동무의 뜻으로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 동아리(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 무리) 뜻을 같이 하는 사람 벗하다, 사귀다 우애가 있다, 사랑하다 가까이하다 돕다 순종하다, 따르다 짝짓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벗 붕()이다. 용례로는 친구와의 정을 우정(友情), 형제 사이의 정애 또는 벗 사이의 정분을 우애(友愛), 벗으로 사귐을 우호(友好), 가까이 사귀는 나라를 우방(友邦), 친구 사이의 정분을 우의(友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우생(友生), 자기편의 군대를 우군(友軍),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우(朋友), 친한 벗이나 가까운 친구를 친우(親友), 오래도록 사귄 벗을 고우(故友), 한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벗을 학우(學友), 벗을 사귐이나 친구와 교제함을 교우(交友), 같은 학급에서 배우는 벗을 급우(級友), 마음으로 사귄 벗을 심우(心友), 서로 마음을 아는 친한 벗을 지우(知友), 동기끼리 서로 사랑하는 정을 우애지정(友愛之情), 바람은 구름과 함께 움직이므로 구름의 벗이고 비는 구름으로 말미암아 생기므로 구름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구름을 일컬음을 우풍자우(友風子雨), 나라와 나라 사이의 우의를 위하여 맺는 조약을 우호조약(友好條約) 등에 쓰인다.

 

(있을 유)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 초승달)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 ��(; 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의 하나 등의 뜻으로 있다 존재하다 가지다, 소지하다 독차지하다 많다, 넉넉하다 친하게 지내다 알다 소유(所有) 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어조사 , 어떤 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 있을 존()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 폐할 폐(), 꺼질 멸(), 패할 패(), 죽을 사(), 죽일 살(), 없을 무(), 빌 공(), 빌 허()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을 미증유(未曾有),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계란유골(鷄卵有骨), 웃음 속에 칼이 들어 있다는 소중유검(笑中有劍),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유구무언(有口無言) 등에 쓰인다.

 

(믿을 신)은 회의문자로 ()은 고자(古字), (), (),은 동자(同字)이다. ()(; )의 합자(合字)이다. 사람이 말하는 말에 거짓이 없는 일, 성실을 말한다. 옛날엔 사람인변()()라 썼으며(), 또 말씀 언()()이라 쓴 글() 자체도 있다. 그래서 ()믿다 신임하다 맡기다 신봉하다 성실하다 ~에 맡기다 확실하다 마음대로 하다 알다 신의(信義), 신용(信用), 신표(信標) 편지(便紙片紙), 서신(書信) 정보(情報) 증거(證據), 기호(記號) 서류(書類) 소식(消息), 소식을 전하는 사람 확실히 정말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믿을 시(),믿을 양/(),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의심할 의()이다. 용례로는 믿고 받드는 일을 신앙(信仰), 믿고 의지함을 신의(信倚), 믿음성이 있는 사람을 신인(信人), 믿고 일을 맡기는 일을 신임(信任), 믿고 받아 들임을 신수(信受), 믿음직하고 착실함을 신실(信實), 변하지 않은 굳은 생각을 신념(信念),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신도(信徒), 옳다고 믿는 마음을 신심(信心), 믿고 따라 좇음을 신종(信從), 믿어 의심하지 아니함을 신용(信用), 남을 믿고 의지함을 신뢰(信賴), 성서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의 신앙을 공적으로 나타내는 일을 신앙고백(信仰告白), 신앙을 가지고 종교에 귀의하는 영적 생활을 신앙생활(信仰生活), 신사가복믿음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고 또한 남과의 약속은 지켜야 함을 신사가복(信使可覆), 옳다고 믿는 바대로 거리낌 없이 곧장 행함을 신심직행(信心直行), 꼭 믿어 의심하지 아니함을 신지무의(信之無疑), 돼지나 물고기 등 무심한 생물조차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는 신급돈어(信及豚魚), 상을 줄 만한 훈공이 있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고 벌할 죄과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신상필벌(信賞必罰) 등에 쓰인다.

 

 
~장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