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s/Poems

시를 처음 쓰는 친구에게/임헌부

Peter Hong 2018. 3. 29. 16:27

1. 시는 칭찬받기 위해 쓰지 마라.

 

어떤 시가 되었든 간에 대중매체에 발표되고 타인에게 공유되는 순간, 도마 위에 놓인 고기라고 생각하라. 발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두렵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붓을 꺾어라. 세상은 항상 어머니 같은 인자한 칭찬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말에 ‘양약고어구이어병(良藥苦於口而於病)’라 하듯이 쓴말을 하거든 화를 내며 반발할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하여 자기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

부단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는 한 칭찬은 채찍이 되어 승승장구할 수 있으나 쓰는 작품마다 칭찬이 돌아올 거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칭찬은 또한 안일한 생각을 유발하기도 한다. 독자에게도 기호와 취향이 있고 느낌의 진폭이 다르기 때문이다. 취중진담이랄까? 계란유골이랄까? 그러나 터무니없는 악담은 반박의 가치가 있기도 하다.

괜찮은 시를 여러 편 발표한 능숙한 시인도 청탁원고에 쫓기는 시를 쓰다보면 형편없는 졸작을 내놓는 수가 더러 있다. 날짜에 쫒기는 목적시, 정치적 명성과 명예에 독촉 당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후회하는 수가 많다. 글은 욕구와 충동에 의해 쓰는 게 자연스럽지 청탁과 독촉에 마지못해 쓰면 억지만 난무한다.

본인이 아무리 훌륭한 시라 자처해도 독자의 가슴을 울릴 수 없다면 절반은 실패작이다. 독자의 수준에 맞는 수준과 언어가 구사되어야 공감을 얻는다. 쉬운 언어와 줄글이 부담을 덜 주기 때문이다. 시는 진정 가슴으로 절절히 느끼는 언어이어야 한다.

 

2. 창작은 주관적이지만 평가는 객관적이다.

 

문학에서 시는 주관적이고 소설은 객관적이라고 한다. 시인은 주관적으로 사물을 체득하고 육화(肉化)시켜 나의 언어로 표현을 한다. 그 속성이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평가는 수많은 독자들의 몫이다. 독자들은 주관적일망정 다수의 다중성을 가지는 객관성이다. ‘개인 : 다수 독자’와의 비평 논리이다. 그래서 이사람 저사람 각양각색으로 비평하지만 그 무게중심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독자들의 흐름을 감지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의 소리를 소홀히 하지 말자는 말이다. 충정어린 충고마저 저버리는 불상사는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렇게 간과하고 지나칠수록 자기 시심을 무디게 하고 시작활동에 저해가 됨은 피해갈 수가 없다.

 

3. 언어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하라.

 

예술은 ‘아름다움’이 필수조건이다. 미적형상화가 전제되어야 함이다.

창작의 희열을 예술로 공감하고자 하는 건 누구나 가진 공통분모다. 시는 사실을 전달하는 6하 원칙의 기사문도 아니고, 느낌으로 순열된 감상문도 아니고, 이야기로 점철된 소설도 더욱 아니다. 소설 속에 시적 표현은 얼마든지 사용된다. 그러나 시 속에 소설의 산문성을 끼워놓는 것은 시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즉, 산문시로 흐를수록 이해하기는 쉬우나 시로서의 특성을 잃어 묘미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정제된 언어 선택과 적재적소에 적절한 표현, 어절, 구, 행, 연을 적절히 안배함으로서 호흡과 긴밀도를 얻는 것이야말로 감동과 감탄을 이끌어내는 시가 아니겠는가? 독자의 가슴에 두고두고 메아리칠 수 있는 감동이면 좋겠다.

 

4. 산문시의 애매성

 

먼저 예술의 갈래는 문학, 음악, 무용, 미술, 영화 등등 다양하다. 미적 감흥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에 문학은 언어를 사용하고 음악은 선율을 이용하여 악보에 표현하고 미술은 선과 색채를 선택하는 등 다양하지만 궁극의 목적은 동일하다.

여기서는 문학만을 이야기 하고 싶다. 문학을 세분하면 시, 소설, 수필, 희곡, 시나리오 등이 있다. 다시 시에 관한 범주로 국한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본래 시나 소설은 서사시에서 분화된 장르다. 운문적 요소는 시가 되고 산문적 요소는 소설이 된 것이다. 서사시 자체는 차츰 사라져 요즘은 드물다. 그런데 요즘 산문시가 많아졌다. 설명적 요소도 많고 수필적 요소도 많아 의미를 전달하는데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경향이다. 누구든 써 놓고 시라고 하면 시가 되고 수기라고 하면 수기가 된다. 이러다가는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등등의 칭호가 무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문인’도 아니고 ‘글쟁이’ 정도로 비하될까봐 우려되기도 한다.

수필의 시점은 언제나 1인칭이다. 나머지 문학 종류들은 3인칭 또는 전지적 시점으로의 변환이 가능하다. 수필은 사실에 바탕을 두지만 나머지 장르는 가상 창작 내지는 허구라는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진정 일반인도 수필은 항상 써낼 수 있는 문학이다. 내가 격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기술하는 데 격식이나 이유가 있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영시에도 라임(rhyme)이 있고 한시에도 압운(운율, 평측법 등)이 있었다. 이런 가락을 잊은 지 오래되었고 한글의 방점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굳이 되살리자는 논리는 아니다. 그러나 시가 너무 산문화 되어가는 기현상은 급기야 이게 시인지 수필인지 수기인지 분간이 어렵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5.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라.

-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외연성(外延)성 개연성 인정

 

시 한편을 음미하다 보면 사용된 시어가 1차적이고 사전적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고, 아니면 2차적이고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생겨난 오차가 해석의 다양성이다. 은유 (隱喩:metaphor)가 사용되었다면 적어도 2가지 이상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뜻이다. 해석이 애매하거나 모호하다는 것이다. 시인의 의도적 표현인지 독자의 세심한 확대 해석인지에 시시비비가 생겨난다. 우선 시인은 의도적 표현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독자들의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더 나가서는 건설적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서로의 해석 차이가 나거나 전달의 모호성 때문에 악성댓글에 시달리기도 한다. 서로 괴로운 일이다.

건전하고 합당한 비평은 시인에 대한 최대한의 관심이며 시인을 시인답게 성장시키는 채찍이 된다. 긍정적으로 잘 활용하고 받아들이면 약이 되고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욕심을 부리면 독이 되기도 한다.

 

6. 시에도 숙성과정이 필요하다

 

시를 쓸 때 개인의 기분 상황에 따라 감상에 젖은 나머지 즉흥적일 수도 있고 감동의 언어로 나열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작품을 쓰고 난 뒤에는 늘 숙성과정이 필요하다. 퇴고의 고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이다.

간장 된장 묵은지 등등 모두가 묵을수록 가치를 발휘하는 것처럼 재고해 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를 섣불리 대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는다. ‘나 좋으면 그만이지’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작품 하나 발표하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평범한 다작이 아니라 진정한 명품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고 모두에게 오래도록 애송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이다.

 

가수 김태원이 이해인 수녀와의 대화에서도 시나 노래의 숙성과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분들은 시가 팝콘처럼 튀어나오는 줄 알지만, 오래 진통하고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시가 탄생해요. 포도주가 익어야 향기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죠.”(이해인 수녀)

 

“아, 그 심정 진짜 잘 알아요. 제가 한 곡을 쓰는 데 2년이 걸렸어요. 멤버들이 ‘진짜냐’고 물어서 702번까지 녹음한 음성 파일을 보여주니 놀라더라고요. 얼마나 많이 만들고 또 부숴야 하는데요….”(김태원)

 

시인이 시를 써서 작곡가에게 작곡을 부탁하는 게 아니라 시의 아름다운 향기에 이끌려 노래로 만들고 싶어 부활의 김태원은 이해인 수녀의 시를 작곡하겠다고 만난 것이다.

그래서 시에도 숙성과정이 필요하고 농익은 언어구사 능력과 아름다움이 배어 시향을 맞고 모여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세상이 이렇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젊은이들의 패기와 용기가 무색할 정도로 주눅이 들어서도 안 된다. 젊음이 언제나 용기이고 도전이며 발전이다. 더불어 조금만 더 신중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임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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