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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홍씨 (중앙일보 : 姓氏의 고향)

Peter Hong 2023. 10. 3. 19:35

 

풍산홍씨와 그 계파

 

  豊山洪씨는 高麗 高宗때 國學直學을 지낸 洪之慶이 시조다. 慶北 安東 豊山에 터 잡아 豊山을 본관으로 가문을 창립했다. 2세 侃(號 洪崖)은 고려문장 12大家의 한사람. 3세 侑와 4세 演, 浚은 모두 대제학에 올라 학문하는 전통의 집안을 다졌다.  高麗末, 왕조는 기울고 이성계가 무력으로 새 왕조창건의 야망을 드러낼 때 演의 아들 5세 龜는 낭장의 벼슬을 버리고 京畿 高陽 高峰山기슭으로 낙향, 은둔했다.

   그의 큰 아들 伊는 멀리 호남 남평의 현령으로 갔다가 눌러 앉아 생애를 마쳐 후손들이 광주, 나주, 함평, 화순등지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남평공계). 둘째아들 儀와 셋째아들 俶(숙)은 고양에 머물러 후손들이 서울, 경기, 충주, 원주, 천안, 당진등지로 퍼졌다(모당공계, 습지공계, 생원공계).

한편 4세 浚의 손자 載는 高麗末 영남으로 옮겨가 그 후손들이 진해, 양산, 합천등지에서 자리 잡게 되었다(만은공계).  

   高麗의 忠臣집안으로 朝鮮朝의 창업에 등을 돌렸던 豊山洪씨네는 6,7,8세까지 3대를 벼슬하지 않고 草野에 묻혀 지냈다. 그러나 조선조 중엽 明宗무렵부터 다시 벼슬길을 열어 옛 名門家의 저력을 발휘해 중앙 政, 官界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그 융성의 문을 연 분이 慕堂 洪履祥이다(모당공계). 履祥은 당대의 巨儒名臣으로 벼슬이 大司憲에 이르렀고 壬亂 수습에도 그 공이 컸다. 슬하의 여섯 아들이 모두 榮達하여 그 후손에서만 문과급제자가 118명에 이르는 융성을 구가했다. 洪履祥의 아우 난상(鸞祥)은 형조화랑을 지냈고, 그의 아들 洪보는 원주 목사로 있을 때 횡성의 李仁居의 난을 토벌 평정한 공으로 1등 공신에 책봉되고 豊寜府院君으로 봉함을 받았다(습지공계).

 

   그중에는 洪良浩, 洪奭周 등의 大學者․저술가도 있었고 저서와 문집을 남긴 사람만도 130여명이나 된다.

   그러나 豐山洪氏의 榮華의 극치는 正宗朝에 1세대를 주름잡던 10년 勢道의 洪國榮과 宣祖의 사위인 永安尉 洪柱元, 正祖의 사위인 永明尉 洪顯周등 駙馬와 正祖의 外祖父인 府院君 洪鳳漢등 세 번의 國婚까지 겹쳐 豊洪의 榮華는 하늘을 찌르는 기세였다. 洪鳳漢의 딸이자 正祖의 어머니인 惠慶宮 洪氏(獻敬王后로 推尊, 사도세자의 嬪)는 閑中錄을 남겨 궁중비사를 전하며 국문학사의 백미를 장식했다(모당공계 추만공파).

   朝鮮朝 豐山洪氏 과거급제자는 136명, 무과에 오른 이가 92명이다. 그중 宰相이 다섯, 大將이 셋, 湖堂에 든 이가 둘, 奉朝賀가 여섯이나 된다.

 

   그러나 홍씨 가문이 가장 크게 긍지로 삼는 것은 文名을 떨친 代代의 著述이다. 麗朝의 2세조 홍간(洪侃이) 남긴 홍애집(洪崖集)을 비롯하여 朝鮮朝 洪萬宗은 해동이적(海東異蹟), 소화시평(小華詩評), 순오지(旬五志), 시평보유(詩評補遺),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 시화총림(詩話叢林), 동국악보(東國樂譜), 명엽지해(蓂葉志諧), 동국지지략(東國地志略)을 남겼다. 景宗․純祖때의 문호이자 학자 洪良浩의 이계집(耳溪集) 37권 외 역상익(易象翼), 만물원시(萬物原始), 육서경위(六書經緯), 격물해(格物解), 칠정변(七情辨), 향약절중(鄕約折中),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 고려대사기(高麗大事記), 삭방습유(朔方拾遺), 북새기략(北塞記略), 흥왕조승(興王肇乘), 군서발배(群書發排)등의 저술들이다.

   英祖·憲宗 때의 좌의정으로 그의 아우 吉周·顯周와 더불어 [3文章家]로 드날렸던 淵泉 洪奭周도 문집인 淵泉集 외 동사세가(東史世家), 학강산집(鶴岡散集)등 20여종의 저술을 남겨 홍씨 집안의 저술만으로도 문고를 이룰 정도이다.

 

   근세에 들어서도 豊洪의 저력은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韓日合邦의 치욕에 분을 못이겨 자결한 洪範植(모당공계 추만공파), 重慶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무령과 의정원의장으로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던 洪震(본명 洪冕憙, 모당공계 지계공파) 그리고 [朝鮮三天才]의 하나로 꼽히던 <임꺽정전>의 저자 洪命憙(모당공계 추만공파)등이 모두 豐山洪氏이다.

 

(중앙일보: 姓氏의고향<160> 金局厚기자 글에서 발췌 引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