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s/나누고 싶은 이야기

봉숭아와 물봉선

Peter Hong 2020. 4. 12. 22:30

  봉숭아는 뜰에 살면서 곱고 소담하게 꽃을 피워낸다. 물봉선은 개골창 풀숲에 섞여 피어났어도 붉은빛만은 봉숭아만 못하지 않다. 그래도 봉숭아는 물에서 사는 물봉선이 부럽고 물봉선은 뜰에서 사는 봉숭아가 부럽다. 물봉선이나 봉숭아는 서로 다르지 않다. 물봉선이 초래해 보이는 것은 다만 외양이다. 봉숭아가 소담해 보이는 것도 현상일 뿐이다. 자세히 보면 그냥 형제이다. 봉숭아가 옛 이름 그대로 봉선화라면 둘은 같은 '봉선'이다. 봉숭아랑 물봉선이 형제이듯이 우리는 형제이다. 우리는 서로 부채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서로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우리도 그냥 '봉선'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자연은 모두 형제이다. 봉선이 형제이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형제이고 고라니는 고라니끼리 형제이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고라니랑 멧돼지도 형제이고 소나무랑 참나무도 형제이다. 고라니랑 소나무도 형제이고 나랑 고라니도 형제이다. 나는 나무의 날숨으로 숨을 쉬고 나의 날숨은 나무의 들숨이 된다. 우리는 마시는 바람까지 공유하는 형제이다. 내가 풀과 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았듯이 미래에는 내 살이 썩어 그들의 영양이 될 것이다.  


~이방주/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중에서~

'Says > 나누고 싶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 기출 문제집   (0) 2020.04.14
말의 내공  (0) 2020.04.13
민들레꽃  (0) 2020.04.12
쇠비름  (0) 2020.04.11
달맞이 꽃  (0) 2020.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