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1.
1996년 1월, 나는 결혼을 했다. 아내와.
1996년 5월, 피천득 선생님은 『인연(因緣)』이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내시면서 아래와 같이 서문을 쓰셨다.
《산호와 진주》 속에 들어 있던 시와 수필을 따로 떼어 《금아시선琴兒詩選》《금아문선琴兒文選》으로 엮은 것은 1980년 3월이다. 그 후 써 온 시를 더해서 1993년 시집 《생명》을, 그리고 올해에는 잃어버릴 뻔한 수필 몇 편을 찾아내어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이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 그 동안 나는 아름다움에서 오는 기쁨을 위하여 글을 써 왔다. 이 기쁨을 나누는 복이 계속되고 있음에 감사한다. – 신판을 내면서 –
2.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인연들을 가볍게 생각해온 것은 아니지만 정신 없이 앞만 보고 사느라고 깊게 생각해 볼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언제나 내 주변에는 나를 좋아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좋은 분들로 넘쳐났고, 그렇기에 그 인연들의 깊이를 망각한 채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면서 지금 내 주변의 참 좋은 ‘인연’들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 사람 모습이 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새삼 그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며 행동이 다 다름에 놀라고 있다. 천만이 산다는 서울인데 가족을 제외하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삼십 명쯤은 될까? (자세히 세어보지는 않았다. 페친이 222명이니까 222명은 된다고 해야겠다. 1분이 중복이다. ㅋㅋ) 조금 더 나가서 내가 내 밑바닥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바닥의 심연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을 보여주는 게 가능하다고 가정하면 말이다. 한두 사람 정도는 있지 않을까? ^^;
3.
슈바이처 박사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살고자 하는 존재들에 둘러싸여 살고자 하는 존재이다.”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그의 고유한 철학이 인류의 형제애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그가 한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람’에 대한 그의 정의는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람은 살면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인간관계’일지도 모르겠다.
4.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법정 스님은 다음과 같은 글로 ‘인연’의 중요함을 말씀하셨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려야 한다. (중략)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5.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면 문득 지금 나를 정의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만남들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를 깨닿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심지어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p.s.
나는 진실된 만남에서 누리는 기쁨을 알리려고 이곳에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대해 가끔 글을 쓴다. 이 기쁨을 나누는 복이 계속되고 있음에 감사한다.
고성은 / 건국대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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