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avel/중국西安~洛陽~靑島

시안(西安)

Peter Hong 2016. 8. 1. 08:00

◎여행일: 2016년 7월 23일~26일

시안(西安)의 옛 이름은 長安으로 세계 4대 문명 古都중의 하나이며 중국의 4대 古都중에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도읍이 되었으며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을 세웠던 곳이 바로 이 시안이다. 그래서 “천연역사박물관”의 美稱을 갖고 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명칭 중에서 長安이 가장 오래되었고 유명하다. 장안은 ‘영원히 평안하다(長治久安)’의 뜻이다. 기원전 12세기 주(周)나라 문왕이 이곳이 풍경(豊京)과 호경(鎬京) 두 경사를 세웠으며 이로부터 서안은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1200년에 이르는 동안 21개 왕조의 정권의 도읍이 되어 역사의 격랑에 부침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극성했던 주(周), 진(秦), 한(漢), 수(隨), 당(唐)이 모두 이 서안에 도읍을 정했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에는 서안은 중국의 대외 교류의 중심지였으나 세계 역사상 가장먼저 인구가 백만이 넘은 대도시였다. 당나라 때 장안성은 중국고대 및 세계사에서 가장 큰 도성이었으며 세계 중심의 위치에서 엄청난 규모의 외국사절과 상인들의 내왕이 이어졌다.


△아침 산책을 나섰다. 숙소에서 가까운 고루(鼓樓)의 모습이다.

△새벽 한가한 상가 거리

△서안의 상징 종루(鐘樓)

△종루 옆 식당가 건물

△백화점

△종루



관광안내소




고루(鼓樓) : 성문이 닫히는 시간부터 한밤중까지 시간을 알리는 역할 을 했으며 높이는 33m이다.  

※고루와 종루 2곳 입장료 50위안



예전에 사용하던 북은 소실되고 최근에 복원한 북들이다.

고루의 화려한 야경 모습


△고루의 상징 "북"



△고루 3층에 있는 각종 북 전시관


고루에서 바라본 종루의 모습



△고루에서는 1시간 간격으로 "북"공연이 있다.

△고루 뒤편 회족거리 입구이다.

△회족거리 입구

△고루 뒤편에 회족거리가 있다. 아직은 아침이라서 한가한 편이다.

△회교사원인 서안 청진사. 멀리 보이는 곳이 정문이다. 

△淸眞大寺 : 시안에 있는 Mosque(회교사원)의 총본산으로 長安이 국제도시로 명성을 날리던 742년 건설되었다.  

△청진사의 정문






△예배대전이다. 약1000여명의 이슬람교 신자들이 서쪽의 알라신을 향해 기도드리는 곳이다. 둥근 Dome과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전통적인 Mosque의 건축양식이 아닌 일반 불교사원의 모습이란 것이 놀랍다.








△정문이다. 이 문을 나서면 이슬람 거리(회족거리)가 있다.

△회족거리의 야경이다.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회족거리로 쏟아져 들어온 엄청난 인파들....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교리 때문인 듯 온통 양고기 구이집 일색이다.



▽ 한낮의 회족거리 모습이다.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문화대혁명(1968~1976년) 당시 홍위병 복장을 한 소녀들을 만났다. 섬뜩했다.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鐘樓


종루에서 바라본 시안 시가지 모습

△멀리 고루가 보인다.


△성문이 열리는 새벽시간부터 낮시간 동안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점심식사는 덕발장에서 했다.



▣碑林



△원래 이곳은 공자사당(文廟)이었으나 2000여개의 비문들이 수집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정문 입구에 서있는 공묘의 흔적이다.



△입장료 75위안














  

▣明代城壁


△성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입장료 15위안)

△14세기 명나라때 조성된 성벽으로 높이 12m, 두께 12~18m, 길이 약 14km이다.



△자전거를 타고 장안성을 한바퀴 돌수 있다. (2시간 자전거 대여료 15위안)


▲다양한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성벽 위를 한바퀴 도는데 1시간 25분이 걸렸다.


※진시황 병마용(秦始皇 兵馬俑)

  시안시에서 30km 떨어진 여산 자락에 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은 13세에 즉위한 후부터 능묘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승상 이사(李斯)가 설계하고 대장군 장한(章邯)이 공사를 감독하여 전 공사기간이 38년에 달했다고 한다. 불멸의 생을 꿈꾸었던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병사와 말의 모형을 흙으로 빚어 실물크기로 제작한 병마용. 이는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1974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한 조각의 파편을 발견하여 많은 병마용의 존재가 밝혀졌으며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지 않으면 중국을 가보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진시황릉









△멀리 보이는 야산 전체가 진시황제릉이다. 10여년전 방문했을 때 정상까지 올라 갔으나 오르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화청지

화청지(華淸池)

화청지는 화청궁(華淸宮)으로도 이름하며 서안시 동쪽으로 30km떨어진 여산(驪山)북쪽 기슭에 있다. 남으로는 여산을 의지하고 북으로는 위수(煟水)에 임해 있으며 온천으로 유명한 중국 고대의 행궁이다. 주(周), 진(秦), 한(漢), 수(隨), 당(唐)의 역대 제왕들이 풍수가 빼어난 이곳을 행궁별원으로 활용하여 행락을 즐겼다. 약 6천년의 온천 역사와 3천년의 황실 원림의 건축사를 갖고 있다.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와 이곳에서 향락을 즐기던 시절 가장 번성으로 누렸으나, 이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고 당 왕조의 성세가 기울면서 이곳 화청지도 쇠락하기 시작했다. 화청지 온천수의 수온은 43℃ 가량되는데 풍부한 광물질과 미량원소가 포함되어 있어 온천욕을 하기에 적합하다. 현종과 양귀비가 사용했다는 연화탕(蓮花湯), 구룡탕(九龍湯), 귀비지(貴妃池)등이 보존되어 있다.













△양귀비의 동상이다.



















△여산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다녀왔다.

△산시 역사박물관이다. 

△西安 財經 전문대학

△도로변에 수많은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대안탑 입구

△대안탑은 대당서역기의 주인공인 현장 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교경전의 보관과 번역을 위해 세운 전탑이다.

△대안탑이다. 공사중이라서 입장은 포기했다. 공사중이 아니라면 대안탑 안에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장법사 기념관이다.

△ 대안탑(大雁塔)은 대자은사탑(大慈恩寺塔)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652년 당나라 현장법사가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대자은사 서쪽 뜰에 세운 탑이다. 탑신은 7층으로 높이가 64.5m에 달한다. 탑은 안에 나무계단이 있어 빙빙 돌아 오를 수가 있다. 당나라때 시인 잠삼은 이곳에 올라 다음과 같이 읊었다. “탑의 형세는 솟구쳐 오른 듯, 홀로 높이 하늘 궁궐처럼 솟았구나. 이곳에 오르면 세상을 벗어나리니, 구불구불 계단은 허공을 휘감아 오른다. 우뚝 솟아 신주를 누르니 까마득히 신령의 솜씨로다. 네 귀퉁이는 밝은 해를 가리고, 칠층 높이로 푸른 하늘에 닿았도다.”


△시민들이 춤을 추고 있다. 그들에게는 춤이 아니라 운동이다.




△자은사는 23만평 대지위에 세원진 엄청난 규모의 사원이었으나 당 말기 전란으로 모두 소실되고 대안탑만이 남아있다.



△대안탑 정문

△현장법사 동상과 대안탑



△대흥선사 산문

△대흥선사 천왕전

△대흥선사 대웅전 : 서진시대(256~289년) 武帝에 의해 지어진 절이며, 8세기 대흥선사에서 인도출신 밀교 승려 금강지와 불공화상이 머물면서 중국최초로 밀교를 전파했던 곳이다.

△고루

△대흥선사 대웅전 : 중국 밀교의 총 본산이다. 불공 화상의 6대 제자중 한사람이었던 혜초스님이 오랜기간 머물면서 경전을 번역했던 곳이며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여행 후 왕오천축국전이라는 불멸의 기행문을 남겼다.

△종루에 있는 鐘의 내부모습



△鐘의 외부 모습

△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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