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avel/중국西安~洛陽~靑島

시안(西安)과 뤼양(洛陽) 소개

Peter Hong 2016. 7. 3. 07:07


시안(西安)

 

  서안의 옛 이름은 長安으로 세계 4대 문명 古都중의 하나이며 중국의 4대 古都중에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도읍이 되었으며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을 세웠던 곳이 바로 이 시안이다. 그래서 “천연역사박물관”의 美稱을 갖고 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명칭 중에서 長安이 가장 오래되었고 유명하다. 장안은 ‘영원히 평안하다(長治久安)’의 뜻이다. 기원전 12세기 주(周)나라 문왕이 이곳이 풍경(豊京)과 호경(鎬京) 두 경사를 세웠으며 이로부터 서안은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1200년에 이르는 동안 21개 왕조의 정권의 도읍이 되어 역사의 격랑에 부침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극성했던 주(周), 진(秦), 한(漢), 수(隨), 당(唐)이 모두 이 서안에 도읍을 정했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에는 서안은 중국의 대외 교류의 중심지였으나 세계 역사상 가장먼저 인구가 백만이 넘은 대도시였다. 당나라 때 장안성은 중국고대 및 세계사에서 가장 큰 도성이었으며 세계 중심의 위치에서 엄청난 규모의 외국사절과 상인들의 내왕이 이어졌다. 가장 유명한 명승지 네 곳을 추천한다.


1. 진시황 병마용(秦始皇 兵馬俑)

서안시에서 30km 떨어진 여산 자락에 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은 13세에 즉위한 후부터 능묘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승상 이사(李斯)가 설계하고 대장군 장한(章邯)이 공사를 감독하여 전 공사기간이 38년에 달했다고 한다. 불멸의 생을 꿈꾸었던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병사와 말의 모형을 흙으로 빚어 실물크기로 제작한 병마용. 이는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1974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한 조각의 파편을 발견하여 많은 병마용의 존재가 밝혀졌으며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지 않으면 중국을 가보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2. 화청지(華淸池)

화청지는 화청궁(華淸宮)으로도 이름하며 서안시 동쪽으로 30km떨어진 여산(驪山)북쪽 기슭에 있다. 남으로는 여산을 의지하고 북으로는 위수(煟水)에 임해 있으며 온천으로 유명한 중국 고대의 행궁이다. 주(周), 진(秦), 한(漢), 수(隨), 당(唐)의 역대 제왕들이 풍수가 빼어난 이곳을 행궁별원으로 활용하여 행락을 즐겼다. 약 6천년의 온천 역사와 3천년의 황실 원림의 건축사를 갖고 있다.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와 이곳에서 향락을 즐기던 시절 가장 번성으로 누렸으나, 이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고 당 왕조의 성세가 기울면서 이곳 화청지도 쇠락하기 시작했다. 화청지 온천수의 수온은 43℃ 가량되는데 풍부한 광물질과 미량원소가 포함되어 있어 온천욕을 하기에 적합하다. 현종과 양귀비가 사용했다는 연화탕(蓮花湯), 구룡탕(九龍湯), 귀비지(貴妃池)등이 보존되어 있다.


3. 화산(華山)

화산은 오악(五岳) 중에 서악에 해당한 산으로 해발 약 2,154m이다. 섬서성 서안 동쪽 120km 지점에 있다. 북으로 위하평원과 황하를 마주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진령산맥에 의지하고 있다. 진령산맥의 북쪽에 위치한 화강암 산이다. 자고로 華山天下險, 奇險天下第一山의 호칭이 있을 정도로 산세가 험하여 수려한 봉우리들과 천길 절벽들이 한 폭의 기험하고 웅장한 산수도를 그려낸다.


4. 대안탑(大雁塔)

대안탑은 대자은사탑(大慈恩寺塔)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652년 당나라 현장법사가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대자은사 서쪽 뜰에 세운 탑이다. 탑신은 7층으로 높이가 64.5m에 달한다. 탑은 안에 나무계단이 있어 빙빙 돌아 오를 수가 있다. 당나라때 시인 잠삼은 이곳에 올라 다음과 같이 읊었다. “탑의 형세는 솟구쳐 오른 듯, 홀로 높이 하늘 궁궐처럼 솟았구나. 이곳에 오르면 세상을 벗어나리니, 구불구불 계단은 허공을 휘감아 오른다. 우뚝 솟아 신주를 누르니 까마득히 신령의 솜씨로다. 네 귀퉁이는 밝은 해를 가리고, 칠층 높이로 푸른 하늘에 닿았도다.”

뤼양(洛陽)

 

  낙양은 황하의 지류인 낙하(洛河)북쪽 강안(江岸)에 있어서 얻어진 이름으로, 全 중국의 중앙에 위치하여 ‘天下之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중국의 7대 古都로 꼽히며, 5천년 문면사 중에서 4천년이라는 장구한 도시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낙양이 중심이 된 하낙(河洛)지구는 중화문명의 발원지이며, 낙양은 세계최초의 계획적으로 세워진 도시이다. 하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13왕조가 이곳에 도읍을 세워 서안과 더불어 중국역사상 자주 國都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비단길과 수당의 대운하가 모두 이곳으로 통해서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였다. 기원전 11세기에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이곳을 동방경영의 기지로 축성하고 낙읍(洛邑)이라고 불렀다. 그 뒤 기원전 770년에 주(周) 왕조가 현재의 섬서성(陝西省)의 호경(鎬京)으로부터 낙읍으로부터 천도한 뒤 동주(東周)의 국도로 번영하였고, 후에 후한(後漢), 삼국(三國)의 위(魏), 서진(西晉)도 이곳에 도읍하였다.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장안의 부도(副都)로 삼아 동도(東都)라고 불렀으며 당나라도 그대로 계승하여 동도라고 불렀다. 수·당 시대에는 서쪽의 장안이 정치도시인데 비하여 낙양은 경제도시로소 대운하를 따라 소송되는 물자의 집산지로 번영하연T다. 문화유적으로는 중국 최초의 불교사원인 白馬寺, 중국미술사상 중요한 문화재로 꼽히는 龍門石窟,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묻힌 香山등이 있다.


1. 용문석굴(龍門石窟)

용문석굴은 중국 4대 석굴 중의 하나로 낙양시 남쪽 교외 이하(伊河)의 양쪽 기슭 용문산과 향산(香山)의 암벽면에 조성된 석굴이다.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가 낙양으로 천도한 후로부터 북제(北齊), 수(隨), 당(唐), 오대(五代)에 걸쳐 약 400여 년간 조성되었다. 북위 때 조성된 것이 30%, 당(唐)이 60%, 기타 조대(朝代)가 10%를 점하고 있다. 남북으로 1km의 구간에 2,300여 곳이 넘는 감실이 있고, 10만이 넘는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비각도 2,800여점이 있어 서예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가치가 높다. 석굴이 오랜 시간에 걸쳐, 조대(朝代)를 이어가면서 조성되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발견되는 대량의 실물 형상과 문자자료를 통해 중국의 고대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다방면에서의 발전과 변화를 고찰할 수 있다.


2. 백마사(白馬寺)

백마사는 동한 68년에 중국 최초로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후 처음 세워진 사찰이다. 그래서 ‘中國第一古刹’, ‘祖庭’, ‘釋源’이라는 칭호가 있다. 사찰 안에는 원대에 만들어진 불상이 대량으로 보존되어 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한나라 명제가 어느 날 금색을 한 신상에서 큰빛이 발하여 온 궁전을 가득 비추는 꿈을 꾸었는데, 이를 부처님의 계시로 생각한 황제는 사신을 서역으로 보내어 佛法을 구하게 했다고 한다. 기원 후 67년 한나라 사신과 인도의 두 승려가 백마에 불경과 불상을 싣고 낙양에 도착했으므로 명제가 몸소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듬해 68년 절을 짓고는 백마의 노고를 기려서 절의 이름을 백마사로 하였다. 백마사는 창건이래로 累代에 걸쳐 증축되고 수리되어 지금까지 아름다운 古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3. 관림(關林)

삼국지의 영웅 관우가 죽어 묻힌 곳이라고 전하는 장소로 낙양시 남쪽에 있는 관람진에 있다. 명대에 사당을 세웠고, 송백을 심었으며 청댕 크게 확장하여 지금의 유모로 만들었다. 관림은 오래된 측백나무가 울울창창하고 고건축물들이 웅장하며 높은 능과 거대한 비석들이 있어서 기상이 삼연하고 그윽하다. 관우는 219년 겨울 손권의 군대에 패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그 이듬해 손권이 관우의 수급을 낙양에 있던 조조에게 보낸다. 조조는 관우를 매우 흠모하였던 터라 왕후의 예를 갖추어 낙양성 남쪽 10리 되는 곳에 장사를 지내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청(淸) 강희 5년에 낙양의 관우 능묘를 ‘忠義神武關聖大帝林’으로 봉하여 관림(關林)으로 부르게 되었다.


4. 향산백원(香山白園)

낙양시 남쪽 13km 위치한 산으로 향기로운 칡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어서 이름을 향산(香山)으로 하였다. 이하(伊河)를 중간에 두고 용문산과 마주하고 있는데, 이곳에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무덤인 백원(白園)이 있다. 백거이는 만년에 향산에서 살았고 자신의 호를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하였으며 이곳에 묻혔다.  (출처: 방송대교재 중국어 중급회화 209~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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