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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정약용 장인 홍화보의 용기

다산의 장인 홍화보(洪和輔)는 무신이었지만 사실 몸이 가냘퍼서 마치 여인과 같았다. 키도 작아서 어느 누가 보아도 무인처럼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용맹은 남보다 뛰어 났으며, 타고난 성품이 호탕 하여 병법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좋아 하였다. 1761년(영조37)에 장상(將相)과 대신들에게 문무(文武)를 겸비하여 장수가 될 만한 자를 천거 하도록 하였더니 모두들 홍화보를 추천 하여 훈련원 초관(哨官)이 되었다. 홍화보의 인품과 명성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사도세자가 죽을 때 였다. 1762년(영조38)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당시 집권 세력들은 사도세자가 향후 조선의 국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영조 역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세자가 국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세자에..

정약용 선생 ‘충주’에서 만나다

정약용 선생 ‘충주’에서 만나다 -다산 제2의 고향은 충주- 충주에서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추억이 있는 금가면 하담리의 다산유적지(모현정 주변)를 권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은 남양주이나 제2의 고향이 충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충주에는 다산선생의 조부모님, 부모님, 정약전 형님 내외분을 모신 다산 가족의 선산이 있었다. 선산은 선생이 7살 때 모친(해남 윤씨)을 여의고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자주 찾았던 안식처였다. 선선 가는 길에 장호원에서 쓴 ‘장호원에 당도하여’라는 시에서 ‘충주가 점점 가까워지니 고향과 흡사하네.’ 라고 할 정도로 충주를 고향으로 여겼다. 지금 충주 선산에는 다산 가족 묘소는 없다. 천주교 박해로 선산관리가 되지 않아 1981년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