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來江上數峯寒(만래강상수봉한)
片片斜飛意思閑(편편사비의사한)
白髮漁翁靑蒻笠(백발어옹청약립)
豈知身在畵圖間(기지신재화도간)
강 위로 날 저무니 봉우리들 차가운데
가볍게 비스듬 눈 내려 마음이 한가로워라
흰 머리 낚시 노인 푸른 삿갓 썼는데
제 몸이 그림 사이에 있는 줄 어찌 알까?
작가는 고려후기 비서윤, 원주주관, 동래현령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인 홍간(?∼1304)이다. 자는 자운(子雲) 또는 운부(雲夫), 호는 홍애(洪崖).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지경(之慶)이다.
1266(원종 7)년에 민지(閔漬)가 장원하였던 과방에 함께 등제하였다. 벼슬이 비서윤(祕書尹)을 거쳐 도첨의사인(都僉議舍人) 지제고(知製誥)에 이르렀다. 뒤에 원주의 주관(州官)으로 나갔다가, 언사(言事) 때문에 동래현령으로 좌천되어 그 곳에서 별세하였다.
시문에 능하였고, 시체가 청려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제현(李齊賢)은 『역옹패설(櫟翁稗說)』에서 “그가 시 한편을 지어 낼 때마다 어진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그 시를 좋아하여 서로 전해가며 외웠다.”고 하였다. 그의 시가 뛰어나서 당시에 널리 애호되었음을 알 수 있다. 허균(許筠)도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그의 시가 “아름다우면서도 맑고 곱다.”고 평하였고, 홍만종(洪萬宗)도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허균이 뽑아준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선집을 밤새워 읽고 “이인로(李仁老)와 홍간의 시가 제일 좋다.”고 하였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특히, 당시에는 모두 송나라 시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당나라 시를 배운 것이 높이 평가되는데, 허균은 “「난부인(嬾婦引)」·「고안행(孤雁行)」 등의 작품이 매우 뛰어난데, 성당의 작품과 같다.”고 하였으며, 홍만종은 “당조(唐調)를 깊이 얻어 송나라 사람의 기습(氣習)을 벗어났다.”고 하였다. 저서에 12대손 홍방(洪霶)이 여러 시선집에 전하는 것을 모아 편찬한 『홍애집』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겨울 어느 날 시인은 눈이 만들어내는 가장 황홀한 장면을 만날 수 있는 곳에 우연히 머물고 있었다. 그곳은 강이 흐르고 있고, 그 주변을 첩첩이 산봉우리가 에워싸고 있었다. 시간도 마침 해질 무렵으로 흥취가 배가되는 시간대였다.
한겨울이라 한낮에 잠깐 누그러졌던 추위가 저녁에 접어들면서 다시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구의 지시라도 떨어졌는지, 때맞추어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날은 차갑지만 바람은 사납지 않았던 듯, 눈은 살랑살랑 비스듬하게 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강이고 산이고 조금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눈의 별천지가 되었다. 시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눈뿐이었다. 그런데 눈 천지를 훑어보던 시인의 눈이 한 곳에서 멈추었다. 바로 눈 덮인 강 위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푸른 삿갓의 노인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이고 난 뒤, 모든 것은 미동도 없이 숨죽이고 있었다. 예외가 있다면 관찰자인 시인 자신뿐이었다.
이러한 정적인 공간에 움직이는 물체가 나타났으니, 얼마나 돋보이겠는가?
푸른 삿갓을 쓴, 나이 든 어부는 눈 천지가 되기 전까지는 생업으로 물고기를 잡든, 은거(隱居)하며 세월을 낚든,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눈에 덮여 온 세상이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으로 되고 난 뒤, 그 평범한 어부는 그림 속 주인공이 되었지만, 막상 자신은 그러한 사실조차도 알지 못한다. 참으로 물아일체(物我一體)와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눈은 단순한 경치가 아니다. 눈은 세상의 모든 더러움을 일시에 사라지게 하고 마음의 근심마저도 잊게 하니, 가히 겨울의 마법사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할 것이다.
출처 : 충청타임즈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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