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
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 나태주 / 내가 사랑하는 계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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