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트나 재킷이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냈던 반면, 넥타이는 가문과 교육 수준, 사회적 지위, 군대 등 착용자의 과거를 보여주는 확실한 수단이었다. 넥타이는 은유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과 같다. 무대 중앙에 배치되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라도 금방 드러날 수밖에 없다. 멋진 넥타이는 그 사람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아이템이다. 물론 넥타이를 선택하는 문제는 주관적이고도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넥타이는 착용자의 감각과 스타일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척도다. 그러므로 넥타이를 매는 데는 고도의 감각이 필요하다. 넥타이의 상징적인 세계를 이해하기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넥타이는 남성복 아이템 가운데 유일하게 실용적인 목적이 아닌 장식용으로만 쓰인다. 장식용이라고 하지만, 차분한 비즈니스 복장에 화려한 컬러와 디자인을 결합하는 넥타이는 사람의 개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서명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넥타이가 명백한 자기표현의 도구라고 인식하는 남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전형적이면서 감동 없는 유니폼처럼 넥타이가 어리석은 획일화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프(stripe) or 올드 스쿨(old school) | 19세기 영국에서 유래한 대각선 줄무늬 타이를 말한다. 타이의 줄무늬는 한때 매는 사람의 출신 학교를 상징하기도 했지만 요즘 나오는 스트라이프 타이는 그 상징성을 상실했다고 보는 게 옳다. 영국의 스트라이프 타이는 줄무늬가 왼쪽에서 오른쪽 아래로 그어져 있지만(regimental), 미국의 타이의 줄무늬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향한다(reverse). 그것은 1920년대 브룩스 브라더스가 스트라이프 타이를 미국에 도입했을 때부터의 전통이다.
『남자는 철학을 입는다』, 남 훈 지음. 갤리온, 中에서,
2.
우리 병원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눈치를 채는지 모르겠지만, 매년 3월 초,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스트라이프 타이를 맨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줄무늬는 한때 출신 학교를 상징했고, 나는 선생으로서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의미였다. 스트라이프 무늬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은 단정함, 반듯함, 지적 여유 그리고 약간의 날카로움 등이다. 그래서 이삼십대 시절, 구두 바닥이 닳도록 병원 안을 누비고 다닐 때는 스트라이프 무늬의 타이를 자주 맸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스트라이프 줄무늬 타이를 매고 일정을 소화했다. 우리 교회 CES 멘토스쿨 제8기 학생으로 한 홍 담임 목사님 앞에서 대표선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양복의 색은 채도가 낮은 푸른색으로 골랐고, 넥타이는 나이를 생각해 조금 점잖은 것으로 고르려다가, 『적과 흑』의 대비가 강한 스트라이프 줄무늬를 선택했다.
3.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1830)은 스탕달의 장편소설이다. 현실적으로 일어난 형사사건의 공판기록으로 쓰여졌다. 작은 마을의 야심 많은 청년 줄리앙이 돈 많은 정부(情婦)를 총으로 쏜 죄로 처형된 이야기를 그린 적과 흑은 대담하고도 독창적인 유럽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제목의 '적(赤)'은 군복을 '흑(黑)'은 사제복을 표현했다. 이것은 나폴레옹 이후의 사회에 사는 평민은 수도사가 되는 것 이외에는 출세의 길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p.s.
어젯 밤 생각과는 달리, 잠깐 우리 교회 상징색인 파스텔톤의 화사한 연두색 타이에 손이 갔지만 결국 이것을 골랐다. 주님의 종이 거하는 곳, 교회, 그리고 거룩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대라고 한다.
~고성은/건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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