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연휴 다음 날 출근길은 언제나 허둥지둥입니다. 특히 오늘 같이 저녁 일정이 잡혀있으면 가급적 차를 두고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서둘러야 합니다. 게다가 오늘은 몸이 아프지도 않은데 전체적인 컨디션이 평소 80%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꾸준히 복용해온 고혈압약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좋은 약 덕택에 안정적인 혈압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끔 혈압이 조금 더 내려가면 기운이 없고 몸이 처지는 느낌입니다. 몇 일 더 계속되면 심장주치의와 상의하여 용량을 줄이던지 아니면 복용 시간을 바꿔야겠습니다.
집 앞에서 143번 시내버스를 타고, 경기고등학교 앞 7호선 청담역에서 지하철로 환승합니다. 제가 다녀본 서울 시내에서 지하철 역 중에서 가장 이상한 구조의 역이 청담역이 아닌가 합니다. 일설에는 주변에 워낙 많은 유력 인사들이 살아서, 그 분들 각자의 편의를 위해서, 역의 입구를 여러 방향으로 설계했다고 합니다. 소문입니다.
긴 지하철 통로 맞은 편에서 변성기가 아직 안 지난 듯한 소년의 톤 높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처음에는 귀에 살짝 거슬렸습니다.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았습니다. 고등학교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사내녀석 둘이서 손을 꼭 잡고 걸어오면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계속 재잘거립니다. 아마도 경기고등학교 재학생인 듯 합니다. 빼빼 마른 몸에 키가 훌쩍 커 보이는 한 녀석과 길이는 짧지만(ㅎ)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또 다른 녀석입니다. 둘이 친구 사이인가 봅니다. 그런데 키가 훌쩍 큰 녀석이 아픈 것 같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입니다. 저는 매일 만나는 아이들이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넉넉한 웃음을 가진 녀석이 아픈 친구 손을 꼭 잡고 학교로 향하고 있습니다.
요즘 신문, 서점 등에서 올 해의 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재미 삼아 저도 몇 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과 장 자끄 상뻬의 『진정한 우정』을 꼽았습니다. 올 해 제 삶의 키워드 “동행”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된 책입니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지금도 물론 오랜 친구들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이가 들면서 저도 모르게 조금씩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나 봅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켜가며 선을 넘지 않는 매너 있는 분들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신체적 또는 심적으로 어떤 일정한 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많이 불편해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고, 그렇기에 혼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피아노를 치고 수영을 합니다.
올 한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교회 순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했고, 양육과정에 참여하면서 적지 않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스포츠센터 상급반 수영팀에도 합류했고, 피아노 트리오도 결성했습니다. 12월에는 불러주시는 좋은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분들과 함께 “동행”하는 즐거움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게 된 멋진 일이 올해 있었습니다.
아침에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등교하는 친구 사이의 어린 녀석들을 보며, 잊고 있었던 삶의 교훈 한 가지를 또 기억해냈습니다.
“인생이 너무나 힘겨운 탓에 ‘동행’을 찾은 것만으로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 장 자끄 상뻬, 『진정한 우정』 中에서.
p.s.
아래 사진은 「열린책들」 페북에서 가져왔습니다. 폴 오스터, 『겨울 일기』 中에서입니다. 저도 갈림길에 서서 방황할 때마다 몸의 어딘가가 고장이 난 듯해서요. 새해에는 모든 분들의 건강을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고성은/건국대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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