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Gathering/풍산홍씨청주종친회

모현정, 하강서원, 홍명희 생가

Peter Hong 2013. 8. 30. 08:18

모현정

 




조선 선조 때의 문신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 1549~1615)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정자로 순조 17년(1817년)후손들이 세웠다. 정면3칸, 측면2칸 규모이며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의 누각이다. 남한강변의 사휴봉(四休奉)위에 있어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뛰어나다. 예전에는 주변에 연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는 하담(荷潭)이 있었는데 하담의 가을달 풍경은 충주8경 중 하나였다. 정자 아래에는 1786년 홍이상을 기려 만든 하강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누각형식을 채택하면서도 짧은 누하주를 사용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입면형식을 유지토록 한 수법이나 튼실한 부재를 사용하면서 간결, 소박한 가구기법 등 조선후기 건축의 양식과 기법을 볼 수 있는 가치있는 건물이라 하겠다.



 

하강서원

 



하강서원은 1786년(정조10) 창건하였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1907년 서원터에 하강단소를 만들고 제사를 지내왔으며, 1974년 복원하였다. 서원입구에는 솟을삼문이 있고 목조건물인 하강 단소는 정면3칸, 옆면2칸 규모로서 겹처마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서원건물은 정면5칸 측면2칸 규모이며 가운데 3칸에는 넓은 마루, 양쪽 각각 1칸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옆에 재실이 있다. 서당안에는 홍이상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해마다 음력 10월 제사를 지내며 풍산 홍씨 종중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 홍이상은 자 원례(元禮), 호 모당(慕堂)이며 식년문과에 장원하여 예조와 호조의 좌랑과 직제학,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서경까지 왕을 호종하였으며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대사성에 올랐다. 이후 성혼을 변호하다 파천되기도 하였으며 광해군 때는 부제학, 개성유수 등을 지냈다. 하강서원은 조선의 중후한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원건축물이라 하겠다.



  벽초 홍명희 생가(홍범식 고택)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450의 1... 홍명희가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이 곳 생가는 25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깊은 고가이다. 좌우 대칭을 이룬 ㅁ 字 모양의 안채와 사랑채로 된 이 집은 조선 양반 가문의 정형적인 가옥구조와 공간배치로 중요한 민속자료이다. 원래는 1,000여평 대지에 90칸의 집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 헐리고 홍명희의 先祖가 이 집에 터를 마련한 것은 1730년경 고조부 홍정주(洪定周)때 부터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명문 사대부가의 하나이었던 풍산홍씨(豊山洪氏)의 종가이었던 이 집은 홍명희가 어릴 적만 해도 50여명이 살았을 정도로 큰 집이었고, 대가족이었다. 義士 홍범식은 1909년 금산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펼치던 중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망하게 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 순국하였다. 그는 "훗날에도 내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마라.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마라."는 유서를 후손에게 남겼다. 홍범식의 아들 벽초 홍명희는 임꺽정의 저자이다.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 문학의 3대 수재로 불렸지만 최남선,이광수는 친일로 돌아섰으나 홍명희는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여러번 치루고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가는 터에 한 동안 임꺽정은 금서로 취급되었다 풀려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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