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평생 지지리 인복도 없이 살아왔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주 주위사람들과 싸움을 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하여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 누구도 불편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걸 좋아할 리 없을 텐데 살아오면서 자주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런 사람들 주위에 좋은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인복이 없다는 그들의 말은 자신의 잘못은 돌아보지 못하고 주위사람들만 탓하는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의 행동을 비난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내 삶은 참 퍽퍽했던 것 같다. 살아오는 고비마다 어느 한순간도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주위를 돌아보면 일을 쉽게 풀어가는 사람들이 태반이었고 그들 주위에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누군가가 있었건만, 나는 늘 힘들고 지쳐 쓰러질 때쯤 되어서야 희미하게 출구가 보이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릿속에서는 스스로 ‘인복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인복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문득 내가 그토록 힘들게 살아야했던 이유는 나 스스로 인복이 없도록 행동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편한 존재가 아니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사람들을 일관성 있게 대하지 못했으며 부정적인 성격 탓에 주위사람들을 불안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많았지만 그들과의 관계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늘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내 편리만 주장하고, 내 주장만 옳다고 여겼고, 나는 흐트러지면서도 상대방의 흐트러진 모습은 용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 주위에는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없었고 나이 들수록 삶의 무게를 나눌 사람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비록 힘겹긴 해도 내가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주위 사람들의 도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지리 인복도 없다고 한탄하는 순간에도 언제나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도움 없이는 그 모든 일을 결코 이루지 못했거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 내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 없이 내가 이룬 일들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얻은 모든 성과가 오로지 나 혼자만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내게 인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내게 주어진 인복을 깨닫지 못하고 지키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인복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내가 인복이 없다고 느끼는 건 실제로 인복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 살아왔기 때문일 수 있다. 분명 내 주위에 좋은 사람, 진실한 사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건만, 내가 그들을 힘들게 했거나 그들이 내 곁에 남아있지 못하도록 지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인복’이라는 말을 쓴다. 대개는 ‘인복없다’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부정적 맥락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는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은 쉽사리 자신의 인복이 보족함을 탓한다. 하지만 모든 인복은 살아가면서 내가 만드는 것임도 잊어서는 안 될 듯싶다. 자신이 인복이 없다고 생각되거든 자신의 행동거지를 곰곰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어준 존재였는지 말이다. 어쩌면 인복이 없다는 말은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지 못한 존재라는 말일 수 있다. 인복이 없다고 생각되거든, 신세 한탄 대신 나 자신부터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이 어떨까.
~양은우/한국능률협회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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