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님께 아뢰어 허락을 받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뵙고 돌아왔음을 알린다. 외출할 때와 귀가했을 때 자식이 부모에게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출전
「무릇 사람의 자식 된 자는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에게 (행선지를) 말씀 드리고 허락을 받아야 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의 얼굴을 뵙고 돌아왔음을 알려 드려야 한다. 나들이 하는 곳은 반드시 일정하여야 하고, 공부를 익힐 때는 반드시 (익힌 내용을 기록하는) 기록장이 있어야 한다. 항상 자신이 늙었다고 말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나이가 두 배 많은 사람을 대할 때는 부모처럼 섬기고, 10년 연장자를 대할 때는 형처럼 섬기고, 5년 연장자를 대할 때는 어깨를 나란히 하되 뒤를 따른다(동년배로 지내되 상대방을 윗사람으로 대우해준다는 뜻). 다섯 사람 이상이 한 자리에 있는 경우에 연장자의 좌석은 반드시 달리하여야 한다.(夫爲人子者, 出必告, 反必面. 所遊必有常, 所習必有業, 恒言不稱老. 年長以倍則父事之, 十年以長則兄事之, 五年以長則肩隨之. 群居五人, 則長者必異席.)」(《예기(禮記) 〈곡례(曲禮)〉》)
용례
아침에 나갈 때나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출필곡반필면해라. 특히, 일이 있어서 늦을 때에는 반드시 전화로 알려 집안 식구들이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글 : 김성일(金聖日)은 문학박사
[고사성어대사전]
삼고초려
초가집을 세 번 돌아보다. 유능한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엽, 유비(劉備)는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漢室)의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하지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전전하며 세월을 허송하다가 마지막에는 형주자사 유표(劉表)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가 되었다. 유능한 참모의 필요성을 절감한 유비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남양(南陽)에 은거하는 제갈량(諸葛亮)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관우, 장비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방문한 끝에 그를 군사(軍師)로 모실 수가 있었다. 이때 제갈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이렇게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방문한 것을 이르러 ‘삼고초려(三顧草廬)’, 혹은 ‘삼고모려(三顧茅廬)’라고 하는데, 실제로 이 말은 제갈량이 첫 번째 북벌(北伐)을 나서기 전, 후주 유선(劉禪)에게 바친 〈출사표(出師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사(師, 자장(子張))와 상(商, 자하(子夏))은 어느 쪽이 어집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 “그럼 사가 낫단 말씀입니까?”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子貢問師與商也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논어(論語) 〈선진(先進)〉》) 살을 빼겠다고 너무 지나치게 운동을 하면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도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모든 일은 적당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새옹지마
변방 늙은이의 말.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등, 길흉화복의 변화가 잦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변방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그의 말이 까닭도 없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쳐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위로하자 노인이 말했다. “이것이 무슨 복이 될는지 어찌 알겠소?” 몇 달이 지난 후, 말이 오랑캐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축하하였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그것이 무슨 화가 될는지 어찌 알겠소?”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말타기를 좋아하던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위로했다. 노인이 말했다. “이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어찌 알겠소?” 1년이 지난 후, 오랑캐들이 대거 요새에 쳐들어오자 장정들이 활을 들고 싸움터에 나갔다. 변방 근처의 사람들은 열에 아홉이 죽었는데, 이 사람은 다리가 병신인 까닭에 부자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近塞上之人, 有善術者. 馬無故亡而
와신상담
땔나무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보다. 원수를 갚기 위해 분발하는 것이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다. 춘추 말기에 연이어 패자로서 춘추 오패의 반열에 올라 춘추시대의 대미를 장식한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이웃하고 있으면서도 원수처럼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사이였다. 오나라의 왕 합려(闔閭)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저자인 손무(孫武)와 충신 오자서(伍子胥)의 보필을 받아 당시의 제후국들을 굴복시키고 춘추 오패의 반열에 올랐다. 합려 19년(BC496), 합려는 월나라를 쳤다가 월왕 구천(勾踐)에게 패하고, 손가락에 입은 상처가 원인이 되어 그만 죽고 말았다. 합려는 태자 부차(夫差)에게 “월나라를 절대로 잊지 말라.(必毋忘越)”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2년 후 월왕 구천은 부차가 밤낮으로 병사들을 훈련시킨다는 말을 듣고 대부 범려(范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부차를 선제공격했다가 도리어 대패하고 말았다. 부차는 승세를 몰아
출처 : 다음백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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