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엇을 잃었을 때 가장 고통스러울까? 직업과 재산, 연인과 가족, 건강과 자신감, 친구와 소속감과 같이 우리가 살면서 성취하고 사랑하고 지키려 애써왔던 것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느닷없이 떠나갈 때가 있다. 나한테 더 소중했던 것일수록, 나와 오래 한 인연일수록 그 상실감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연인이었던 바람기 많은 남자친구에게 또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걸 털어놓으며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뜨리는 여인에게 가장 적당한 위로의 말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 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밉고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저의 30대에 7년을 같이 한 사람인데, 그 사람과 헤어지면 그 7년간의 추억이 모두 헛된 시간으로 남을 것 같아요. 헤어진다는 건 상상조차도 힘들어요. 그냥 참고 기다려야 할까요? 그래도 내 편이던 사람이 떠나가고, 혼자가 되는 게 두렵고요. 다시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혼자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시 다른 사랑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그녀를 머뭇거리게 한다. 두려움은 사랑이 아니고 불안이 행복이 아님을 그녀도 안다. 지금 이 남자와 헤어지지 않는다 해도 평생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자주 울게 될 거라는 걸 그녀도 안다. 결국 이별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식투자에서는 스탑로스(stop-loss)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는 손절매(損折賣)이다. 즉 주가가 떨어질 때 현재보다 더 하락할 것이라고 생각되면, 손해를 보더라도 팔아서 추가적인 손실을 피하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주가가 내려가서 1억이 오천만원으로 반 토막이 나서 잠 한숨 못자면서도, 그 오천만원 조차 못 건질까 불안해하면서도 끝내 못 팔고 원치 않는 장기투자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오를 가능성이 없는 걸 알면서도 팔지 못하다가 결국 더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심리는 무엇일까? 지금 주식을 팔면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자기 손으로 자르는 것이고, 지금 그 손해를 ‘확정’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차마 팔지 못하는 것이다. 비자발적 장기투자자나 불행한데도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당장의 고통은 피해서 작은 희망(사실은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고 있는 부질없는 희망)을 버팀목 삼는 것이다. 당장은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지만, 대신 두려움과 불안을 끝까지 가지고 가야된다는 점이고 결국 나중에 더 큰 상실감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졸업식 없는 학교가 없듯이, 인생에도 이별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모든 사람이 천 번째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첫사랑과 산다고 행복해질까?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시절 처음 산 주식을 무조건 끝까지 보유하고 있으면 대박이 날까? 아무리 좋은 선생님이 있다 해도 경험보다 더 좋은 선생님은 없다. 첫사랑의 이별은 지옥이다. 첫 직장에서 퇴사를 결정하는 순간 또한 한없는 막막함과 불안이 있다. 하지만, 그 이별과 마무리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전보다 더 잘 알게 된다. 그렇게 해서 다음엔 더 나에게 잘 어울릴 연인과 직장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소개 했던 바람기 많은 남자친구와 이별한 여자 분은 그 후로 어떻게 될까?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은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것이고, 그러고 나면 새로운 가능성이 그녀를 기다릴 것이다. 그 새로운 남자친구는 이전의 바람기 많은 남자친구보다 더 자신에게 맞는 남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실과 이별의 끝에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이 다시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과 이별하고 또 많은 것들과 새로 만나게 된다. 지금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분이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것이 사람이던, 직업(은퇴)이던 손안에 든 것이 나를 찌르고 있다면, 아무것도 잡지 못하게 될까 두렵더라도 일단 놓아야 한다. 그리고 나면 ‘빈손’이 그냥 ‘빈손’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제 새로 잡을 수 있게 된 무한한 가능성의 손으로 다시 보일 것이다.
-강성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학연금 2017년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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