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Chinese Language)/현대의 서양문화

<현대의 서양문화>교재내용 요약

Peter Hong 2016. 12. 11. 06:44


[현대의 서양문화]

 

제1장 현대, 서양, 문화

 

1. 들어가며

(1) 서양이란?

1) 지리적 개념 : 유럽과 북미지역. 유럽이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유래.

2) 문화적 개념 : 발전된 자본주의 경제와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 제도, 기독교 전통과 합리적이고 세속화된 문화 등을 상징. 즉, 진보나 문명, 근대성과 동일시 되어왔다. 보편적이고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 따라서 문화적인 권력으로서 힘을 발휘하여 왔으며, 지역 간의 위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여 왔다.

서양을 단일한 ‘서양’으로 접근하는 것 :

① 이제까지 서양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규범이자 발전의 본보기로서 행사해 온 문화적 권력에 눈감는 일이다.

② 실제로 서양이라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2. 서양과 근대

서양 = 진보와 보편성, 문명이나 발전 ⇒ 서양만이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사고에 근거를 둔다.

* 근대화 :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구조와 사회관계를 재편하여 인간 삶을 개선시키는 과정

근대의 특징, 즉 근대 국가 체제, 자본주의 경제, 합리화나 세속화 같은 사회문화적인 변화와 같은 특징들이 발현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 근대성 : 근대를 특징짓는 상태, 특히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고 간주된다.

* 근대 : 근대화라는 역사적 과정이 진행되어 온 시기.

* 현대 :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이 동시대라고 인지하는 시기

* 일본 : 고대→ 중세→ 근세(르네상스~프랑스혁명)→ 근대(프랑스혁명 이후~제국주의 시대)→ 현대(제국주의 이후)

* 미국, 영국 : 근대 - 르네상스~제국주의가 본격화되는 1870년대까지의 시기.

초기 근대 - 15~16세기의 시기로 구분

* 프랑스 : 근대 - 르네상스~프랑스혁명까지. 프랑스혁명 이후 - 현대

 

3. 근대화와 ‘서양문화’

(1) 서양의 근대화란?

- 정치적 : 국민국가 체제의 형성

- 경제적 : 산업사회의 출현

- 사회문화적 : 개인주의, 합리성 및 세속성 원리의 확립 등

① 비유럽 지역에서 동원해 낸 인적·물적·문화적 자원 덕분에 가능했던 것

② 문화적 성과도 전유 - 서구와 비서구 문화는 상호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았다.

 

※ 오리엔탈리즘 : 서구가 비서구 사회의 문화적 유산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전유하는 경향.

비서구를 미개한 것, 신비하고 초월적인 것으로 보곤 한다.

※ 옥시덴탈리즘 : 비서구가 서구에 대해서 정형화된 상을 가지고 악마화, 때로는 선망하며 서구를 단일한 실체인 것 처럼 취급하는 경향

새뮤얼 헌팅턴 : 문명 충돌론. 세계구도가 8개의 문명권으로 이루어진 다극·다문명 세계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

서구와 비서구 사회로 구분되며, 각 문명권 사이에는 소통될 수 없는 상이성이 존재하여 충돌과 대립을 야기한다는 것.

- 문제 제기 : 서구와 비서구 사회의 갈등을 단순히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충돌로만 인식하는 것은 곤란.

이슬람의 경우, 유럽과 북미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 얽혀 있는 세력들 간의 갈등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 근대화는 19세기 이래의 역사를 서구가 주도해 온 제국주의 역사로 파악하면서, 서구인들이자신들의 행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문화적 담론이라고 주장.

‘교류’를 통하여 다문화주의 혹은 문화적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각각의 기반과 개성이 다른

문화들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자고 하며, 인간의 지적·물적 경험과 인식의 세계를 넓히고

지구문화를 풍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고 지적함.

 

4. 서양 근대라는 시공간을 이해하는 방식들

* 근대화론 : 발전이 서구에서 비서구로 확산되는 것, 비서구는 서구에 시간적으로 뒤진 모델로 상정.

즉 비서구는 전통과 과거의 영역에, 서구는 발전하는 현재에 속해 있다는 것.

- 비판 : ① 서구 사회만이 제대로 근대적이고 다른 사회들은 상대적으로 덜 진보되고 열등한 것으로 간주.

② 근대화라는 과정을 서구화와 동일시하였다는 점.

③ 서구의 진보를 측정하는 데도 경제성장이라는 단일한 잣대를 사용할 뿐

사회발전의 다른 측면은 경제성장에 종속괴어 따라오는 것으로 보았다는 점

* 종속이론 : 비서구, 즉 제3세계가 못하는 것은 단지 서구에 뒤처졌기 때문이 아니라 ‘중심-주변’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적 잉여 수탈구조 때문이며, 제3세계의 근대화는 정치발전을 자동적으로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

서구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근대화는 오히려 종속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며,

서구로부터의 ‘탈종속’ 혹은 ‘혁명’을 통해서만 제3세계가 근대화될 수 있다고 주장.

* 세계체제론 : 월러스틴. 세계를 핵심지역과 반주변 및 주변지역으로 구분하지만 영속적인 것은 아니다.

핵심지역의 주도권은 서구지역의 비서구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식민화라는 형태로 행사되어 왔으며,

① 식민화의 경험은 실제로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지만 마치 보편적인 것처럼 간주하는 시각이 서구의 사회과학 속에 뿌리를 박고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② 서구의 근대 경험은 따라잡아야 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구의 개입만 없었다면 모든 지역이 걸었을 보편적인 결로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③ 16세기 이래 유럽이 바꾼 변화는 식민지로 편입된 지역에게만 부정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반드시 긍정적인 변화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④ 근대는 유럽의 주도로 이루어진 성취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세계체제에 포섭된 각 지역들이 하나의 체제 내에서 각기 다른 지위에 놓이게 된다고 본다는 점.

* 디페시 타크라바르티 : 탈식민주의 역사가. 유럽이라는 것이 하나의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각 지역마다 경험한 유럽이 달랐다는 점을 강조. 따라서 근대는 단일한 시간대가 아니며, 각 지역마다 다르게 경험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유럽을 자기 방식대로 번역하는 작업을 거쳤다는 것이다. 근대가 상정하는 세속적이고 과학적인 시간개념 자체를 비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근대가 부여하는 시간관념 자체에도 서구의 특수한 경험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서구와 비서구의 동시대성만 강조해서는 서구에 뒤처진 비서구의 상을 바꾸기 어렵다는 그의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5. 나가며

* 현대의 서양문화 : 특정한 지리적 지역의 문화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이고 발전된 문화로서,

문화적 권력을 행사해 온 개념이기도 하다.

* 현대의 서양문화를 이해하기위한 조건 :

① 서양이나 서구라는 표현과 분리하기 어려운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에 대한 반성

② 실제로 유럽과 북미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단일한 서양문화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할 필요

③ 지리적인 서양 속에 이질적인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갈등이 존재해 왔음을 밝힐 필요의 인식

 

제2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

 

1. 미학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간략한 역사

* 포스트모더니즘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용어.

- 1917년 독일의 철학가 루돌프 판비츠의 ?유럽문화의 위기?에 처음 등장 - 포스트모던적 인간

-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문학비평에서 모더니즘 미학에 반발하는 새로운 경향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

- 1970년대에는 건축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

 

* 어빙 하우 : 1959년 ‘대중 사회와 포스트모던 서설’이라는 논문에서 사용

* 레슬리 피들러 : 1967년 ‘경계선을 넘고 간격을 좁히며’라는 논문에서 사용

* 이합 하산 : 1970년대 초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 20세기 후반의 문학적·철학적·사회적 경향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 찰스 젱크스 : 1977년에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건축에 적용했다.

*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 ?포스트모던의 조건 : 정보사회에서의 지식의 위상?(1979)

* 리처드 로티 : ?철학과 자연의 거울?(1977). 1980년대 미국에서 문학비평과 건축분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철학자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이 의미를 가지게 된 데에는 로티의 영향이 컸다.

 

(1) 포스트모더니즘의 생성과 발전 : 역사적 상화이나 저적 풍토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① 인류 멸망에 대한 공포감 : 나치의 유대인 대량 학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자탄 투하

② 자연환경의 무차별적 파괴

③ 폭발적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기아에 대한 두려움 등

④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을, 일원론보다는 다원론을, 독단주의보다는 관용주의를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받아들임.

 

(2) 유진 런(Eugene Lunn)의 모더니즘의 일반적 특징들

① 미학적 자의식 혹은 자기 반영성 : 모더니즘의 작가, 예술가들은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과정에 주목한다.

② 동시성, 병치 또는 몽타주 : 모더니즘 소설가들은 외적인 시간성을 포기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응축시킨 심리적 시간의 계기에 이루어진 경험의 동시성을 추구한다.

③ 패러독스, 모호성, 불확실성 : 현실을 상대적 전망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면서 세계의 역설적인 다면성을 탐구

④ ‘비인간화’와 통합적인 개인의 주체 또는 개성이 붕괴 : 작품 속의 인물이란 일관되고 해명 가능하며 잘 구조화된 전체로 보이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수수께끼 또는 파편화된 인격으로 나타난다.

 

(3) 모더니즘의 전반적 특성에 비추어 포스트모더니즘을 바라보는 시각

① 모더니즘의 후기 현상 혹은 모더니즘이 극단적으로 발전된 형태로 보는 관점 :

ⓐ 제럴드 그래프, 대니얼 벨, 프랭크 커모드가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 이론가들

ⓑ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모더니즘의 전통이나 이론을 상당 부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②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 의식적 단절이나 비판적 반작용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입장 :

ⓐ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스트들과는 달리 예술의 자기 목적성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보이며, 예술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혼성모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소외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갖는다.

 

(4) 문학 분야 : 포스트모더니즘은 리얼리즘과 재현성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는 점에서 모더니즘과 매우유사한 입장을 견지하지만, 재현성에 대한 회의는 한결 더 첨예하게 부각되기 시작한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여 왔다.

* 알랭 로브그리예 : ?누보로망을 위하여?(1963)에서 발자크식 리얼리즘은 생존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고 주장한다.

* 나탈리 사로트 : 소설 ?황금열매?(1963)

* 상호 텍스트성 :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가장 핵심적인 지배소로 대두되었다.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은 로버트 마이클 밸런타인의 ?산호섬?을, 존 가드너의 ?그렌델?은

?베오울프?를 상호 텍스트로 삼고 있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장작 행위를 일종의 표절 행위로 간주한 대표적인 작가.

?창백한 불꽃?은 반은 시의 형태로, 반의 산문 형태로 되어 있다.

* 롤랑 바르트 : ?S/Z?, ?바르트가 쓴 바르트?는 문학 비평서나 이론서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볼 수 있다

* 노먼 메일러 : ?밤의 군대들?은 역사와 소설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 토머스 버거 : ?작은 거인?. 서부 개척 소설

* 로저 젤라즈니 : ?불멸의 인간?. 공상과학 소설

* 이탈로 칼비노 : ?우주 희극?. 공상과학 소설

* 움베르토 에코 : ?장미의 이름?. 추리소설

* 마누엘 푸익 : ?거미여인의 키스?. 탐정소설

(5) 건축분야 : 포스트모더니즘이 본격적으로 개념화 됨

※ 모더니즘 건축 : 1930년대부터 1960년대에 전성기.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등 유토피아적 이상을 추가하면서 과거와 철저한 단절을 시도했다.

* 미스 반데어로에 : “적은 것이 많은 것”- 모더니즘 건축의 이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모더니즘 건축, 특히 그중에서도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건축 양식에 대한 비판과 도전으로 시작되었다.

 

* 제인 제이콥스 :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1961)에서 당시 미국의 기능주의적 근대도시계획과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개선 프로젝트가 지역주민들 사이의 교류를 제한시키는 반인간적 계획이며, 도시의 자생적 발전 가능성이 무시된 반도시적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 로버트 벤투리 :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1966)에서 모더니즘 건축에 반발하여 단순성 대신에 모호성을, 의미의 명료성보다는 풍부함을, 양자택일적 사고보다는 공존의 태도를, 배제에 의한 통일성보다는 수용에 의한 통일성새로운 건축 디자인의 개념으로 제시했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말에 대해 “적을수록 지루하다”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 젱크스 :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1977)에서 모더니즘 건축이 산업화에는 기여하였지만 도시의 복합적인

문화공간들을 파괴함으로써 비인간화와 소외문제를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의미의 다중화, 이중코드화, 지역성의 이해, 지역적 전통의 해석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모더니즘 건축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 공시성을 강조

● 경제성과 미니멀리즘을 강조

● 획일성

● 대량생산 패러다임

● 기능주의적 건축양식

● 과거의 다양한 생활양식을 강조-전통과 역사성으로의 복귀를 주장

● 장식적인 요소를 중시

● 일상성이나 대중성을 강조

● 다원성과 복수성을 추구

● 절충주의적인 모습(주변 건축물들 참조, 소통을 지향)

(6) 음악 분야 : 포스트모던적 특성은 소리의 감각적 질에 탐닉하는 경향, 중심성(조성)의 해체, 작품 중심적 사고의 탈피로 요약될 수 있다. 소리의 감각적 질에 대한 관심은 음색에 대한 추구로 나타난다.

*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 악기들을 총동원하여 소음을 내는 듯한 효과의 음향 색채 기법을 시도한다.

감각의 횡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 쇤베르크 : 조성(調無聲)은 혁명적으로 해체된다. 무조(無調)음악은 조성의 횡포적인 단일성을 피하기 위한 것.

음악의 인지와 인식에 절대적 권력을 휘둘러 왔던 중심 음에 대한 반발, 즉 인식주체의 지나친

단일성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존 케이지 : 결정되지 않은 음악을 주장한다. 다음에 나올 음에 대해서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 밀턴 배빗 : 전음열주의. 음악의 음고, 음길이, 음량, 음색을 전부 1에서 12까지의 번호로 정리하고, 이것들을 이 수의 논리적 출현으로 통제하려는 음악.

* 루토슬라브스키 : ‘베니스의 게임’(1961)은 우연성 음악으로 “존 케이지”의 영향을 보여준다.

* 톤 존슨 : ‘네 음표의 오페라’(1971). 네 음(라,시,레,미)으로 이루어진 오페라로서 미니멀리즘의 경향을 보인다.

* 스트라빈스키 : 혼성모방

* 루카스 포스 : ‘바로크 변주곡’(1967)에서 혼성모방의 경향을 잘 나타낸다.

 

(7) 미술 분야 :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은 수정주의, 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어휘들로 표명된다.

* 랙스트로 다운스 : 1970년대 초부터 모더니즘의 자기비판적·자아도취적 형식미학에 식상하여 그것에서 이탈하려는 일련의 변화 동향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정의한다.

- 모더니즘 미술 : 순수성, 회화 고유의 본질과 형식을 추구

-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 비순수성과 본질 외적인 회화의 문맥에 관심을 가진다. 모더니즘 미술이 배제해 오던전통과 도덕적 요소를 부활시켰고, 거의 의도적으로 예술과 환경, 예술과 사회,

예술과 현실을 연결시키려 한다.

- 페미니즘 미술 : 남성중심적 모더니즘 미술에 반대해 여성 고유의 미술형식을 여성의 일상적인 생활과 직접 연루된 방법들을 동원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

※ 신표현주의 : 198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형상성과 예술성에 대한 회복을 추구하려는 경향.

미국의 줄리앙 슈나벨, 데이비드 살레, 독일의 안젤름 키퍼, 게오르크 바젤리츠,

이탈리아의 산드로 키아, 프란체스코 글레멘테 등

※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 : 어떠한 입장이나 태도도 불안정하며 진실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다원성과 다양성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 철학분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나타나는 주제〉

첫째, 주체에 대한 이의제기

* 데카르트 : 근대적 사유의 시발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인간 존재의 기초를 신이 아닌바로 인간에 둔다는 점에서 일종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사유하는 주체가 갖는 확실성이 모든 진리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개인을 주체로 확립했다는 것이다.

* 칸트 : 인간 이성의 활동인 수학과 과학이 가진 보편성을 토대로 인간 이성이 보편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주장한다.

* 헤겔 : 이성에 역사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세계 역사를 이성의 자기실현 과정으로 본다.

..........이처럼 절대화된 주체는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등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 마르크스 : 유물론적 접근을 통해 주제를 역사발전단계, 계급, 생산력과 생산양식의 모순 양상 등에 좌우되는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주체로 상대화한다. 의식(주체)이 존재(사회, 경제적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입장

* 니체 : “주체는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규제적 허구이며, 우리가 사건의 다의적 기호에 부과한 통일성에 불과하다. 주체는 힘과 요소들의 복합에로 단일적인 것이 아니라 다원적인 것이다.

* 프로이트 : 정신분석학 역시 또 다른 주체 비판의 진원지였다. 무의식을 상정하여 주체가 더 이상 의식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더욱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충동의 저장고라고 할 수 있는 ‘그것(Es, Id)에 의해서 행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제 주체는 투명성을 가진 그리고 의식에 따라 통일적 행동을 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 바르트 : 후기구조주의자. 자율적인 주체의 소멸을 문학에서 ‘저자의 죽음’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저자를 텍스트의 기원이자 의미의 근원이며 해석의 권위로 보려는 전통적인 이론을 전적으로 거부한다.

* 푸코 : ‘주체의 탈중심화’를 철학적 기획으로 삼는다. 모든 존재의 인식과 행위추구에서 거의 선험적 실체처럼 설정된 주체의 근거를 의심한다. 니체가 절대자로서의 신의 사망을 고한 것처럼 푸코는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다. 인식과 역사적 행동이 주체로서의 인간 개념은 초시간적·초공간적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역사의 한 시기, 즉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산물이며, 따라서 다른 시기에는 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니 어쩌면 벌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 라캉 : 정신분석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전개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통하여 데카르트의 코지토, 즉 투명하게 인식 할 수 있는 선험적 존재를 거부한다. 주체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주체는 ‘상상적 단계’와 ‘상징적 단계’의 두 단계를 거치면서 각각 다르게 구성되지만, 공통적인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자와의 동일시를 통해서 주체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거울의 단계’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거울이라는 타자 속에 비친 영상을 마치 자기 자신인 것처럼 구성(오인)한다. 다음 상징계에서는 언어라는 타자를 통해 자아가 형성된 다. 언어가 주체의 가능 조건이다. 주체는 말의 주인이 아니라 말의 그물 속에 위치한 존재에 불과한 것이 다. 따라서 인간 주체는 무의식(언어)이라는 타자의 기호에 의해 자율성을 박탈당한 채 분열 상태로 살아간다.

 

둘째, 언어의 영역에서 의미의 문제를 재검토한다.(의미의 불확정성)

* 데리다 : 후기구조주의자들은 언어를 포함한 모든 기호의 재현능력과 그것들이 지칭하는 대상의 현조 그리고 기호와 대상 사이의 연계성에 회의를 표명하고, 의미는 본질적으로 불확정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해제주의의 대표자인 데리다는 차이의 체계로서의 소쉬르의 언어관을 받아들이지만 그 원칙을 궁극적인 결과로까지 확장시킨다. 기표는 거울이 상을 비추듯이 직접적으로 기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며, 기표와 기의는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기표와 기의는 계속해서 분리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조합을 형성한다. ‘차연’이라는 신조어로 차이들의 생산 그리고 차이의 체계로 이해되는 언어에 속하는 끝없이 지연되는 의미를 지칭하고 있다. 기표의 기의는 그 자체가 언제나 이미 또 다른 기표이기 때문에 의미는 오직 기의의 끊임없는 이동과 지연에 의해 생산된다. 데리다에게 해체의 과정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정이다.

 

셋째, 합리주의 혹은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다.

근대성을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자아, 객관적인 진리, 질서, 진보 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학과 기술은 자연과 사회를 이성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확고한 수단이라고 여겨졌으며, 이러한 과학적 진보주의는 유토피아주의와 결합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한 20세기에 들어와 이러한 낙관주의는 송두리째 흔들렸다. 본래 자연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실현하고자 했던 계몽주의는 그 자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억압과 폭력으로 변질 되었고 계몽의 목적인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내면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 프랑크푸르트 학파 : 대상의 분석과 종합을 통해 파악하고 이를 기초로 하여 유효한 도구를 만들어 내는 도구적인 이성의 강화와 확대에서 근대성의 악을 찾았다.

* 푸코 : 기본적으로 역사적이고 정치적으로 사유한다. 근대 이성의 폭력성을 지식과 권력의 결탁관계를 통해 폭로하고자 했다. “광인”과 “죄수”와 “성적 일탈자들” 등을 통해 근대적인 합리성이 갖는 폭력성의 양태를 탐구했다. 권력의 예속화에 맞서 내면적 성찰을 통해 자신만의 도덕규범을 스스로 정립해 나가는 능동적 주체 혹은 ‘윤리적 주체’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 광인 : 중세와 르네상스기에는 결코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17세기 중반 들어 단지 이성의 상실로 규정되어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정상에 대비하는 비정상으로 구분되고 비이성적 인간은 타율적이며 존속적인 인간이 되며, 수용소에서 작동되는 은밀한 감시와 처벌의 기제는 광인에게 죄의식을 형성시키고 스스로를 처벌하도록 한다........

- 판옵티콘 : 원형감옥. 영국의 철학자 벤담의 설계. 권력과 통제의 내면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상징.

- 근대사회의 성적 담론 : 정상적인 성과 일탈적인 성, 도덕적인 성과 비도덕적인 성 등의 이분법.

- 근대사회의 특징: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구축된 지식과 담론으로 사회의 일탈자들을 관리하 고 궁극적으로 통제 대상들이 내면의 윤리 의식에 의해 스스로를 통제하도록 이끌어 간다. 지식과 담론에 가려 은밀하게 작동하는 권력을 이 통제기제로서 인간을 예속화하는 것이다.

* 리오타르 : 1979년 역사의 진보를 주장하는 근대의 기획을 비판한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간행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철학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했다.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면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메타서사에 대한 불신으로 간주된다.”고 말한다.

메타서사는 지식을 정당화시키는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이야기들로, 그것의 가장 큰 기능은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실천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두 종류의 메타서사가 있는데 하나는 기원과 관련하여 현재와 미래를 정당화하는 신화, 그리고 시초가 아니라 종말에 기원을 두는 역사이다. 근대성의 모든 주요한 ‘해방의 이야기들’은 본질적으로 기독교적 패러다임이 세속화된 변종들이다.

● 계몽주의의 메타서사 : 인류를 무지라는 악에서 해방시켜 줄 지식을 통한 진보

● 헤겔의 사변적 메타서사 : 변증법을 통해 정신이 자기 소외에서 해방된다.

● 마르크스주의의 메타서사 :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투쟁을 통해 인간이 착취에서 해방된다.

● 자본주의의 메타서사 : 무수히 갈등하는 개별 이익들 간의 보편적 조화를 창출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을 통해 빈곤에서 인간이 해방된다.

이러한 메타서사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된 자본주의의 세계화 및 과학과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서 종말을 맞게 되었고, 이제 더 이상 지식은 인간의 보편적인 목적의 실현이 아니라 효율성과 수익의 측면에서 가치를 부여받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편적 합의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리오타르는 지배적인 집단이나 문화의 언어 게임이 다르게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들을 침묵시키는 순간 불의가 발생한다고 보면서, 자신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타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윤리적 체제를 제안한다.

 

포스트모던적 사유에 따르면 : 인간 존재나 의미나 단선적인 방향을 갖는 역사와 같은 문화적 통일체로 보이는 것들은 실제로는 배제와 위계질서화와 같은 과정을 통해 외견상의 실체로 유지되어 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주체나 의미나 가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관점들에 의해 조건 지어지며, 이러한 관점들에서 벗어나는 혹은 어긋나는 다른 현상들, 예를 들면 말에 대비되는 글, 남성에 대비되는 여성은 위계적인 이원론의 재현을 통해 외적인 것, 즉 ‘타자’로 억압당하고 가치를 박탈당했다. 이러한 관점들을 재사유할 때 고정된 기원이나 진리 등 의미와 가치의 중심을 이루는 개념들은 해체될 수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사유는 필연적으로 동일성과 단일성의문화를 해체하고 억압되고 감추어진 타자를 드러내면서 차이와 다원성의 문화를 향해 나아간다.

 

3.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과 옹호

※ 비판 :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종종 전통적인 도덕 체계에 대해 반대하는 경향을 묘사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 주체의 능동성을 약화시키면서 인간의 도덕성이나 윤리성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종교계 일각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도덕적 상대주의와 일탈적인 행동을 부추긴다고 비난해 왔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인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를 금지한 것은 그 일례이다.

* 촘스키 : 포스트모더니즘이 분석적·경험적인 지식에 전혀 기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말함.

* 앨런 소칼 : ?지적 사기?라는 책을 써서 보드리야르, 라캉, 들뢰즈, 크레스테바 등의 글이 얼마나 아전인수 격으로 자연과학적 개념을 차용했는지 비판했다.

* 하버마스 :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 자율적 이성의 개념, 즉 주체 철학을 비난하지만, 근대적 이성을 근원적으로 해체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몽주의의 전통인 근대성의 합리적 프로그램을 포기함으로써 비합리적이고 잠재적으로 파시스트적 성향을 띠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티가 ‘반계몽주의적 전통’에 서서 의지와 정신과 상상력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자율적 합리성, 과학적 객관성, 합리주의적 보편성, 법을 과소평가한다고 말한다.

계몽주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것을 복구해야 하고,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의 구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후자는 더욱 커다란 ‘모던’의 테두리 안에서 생겨나는 발전과정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프레더릭 제임슨 : 마르크스주의자. 포스트모더니즘의 배후에 까려 있는 것이 상품의 생산이 아니라 상품의 판매 와 소비를 강조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논리라고 보고 있다.

※ 옹호 : 동일성과 총체성을 비판하며 차이와 다원성을 지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동일자에 의해 억압된 ‘타자’에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 포스트모던적 페미니즘 : 크리스테바, 제인 플랙스, 주디스 버틀러 등.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들의 대의명분을 지지한다고 보았다. 남성과 여성의 이원론적 범주화는 계몽주의의 전통에서 생겨났으며, 그것은 해체되어야 하며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사회가 규정하는 성적 차이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시몬 드 보부아르, 푸코, 데리다 등의 사유에 근거를 두고 있다.

* 문화다원주의 운동 : 문화인류학 분야에서 모든 문화는 각자 독특하고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 운동 역시 포스트모더니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인류학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피식민지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서구문화의 기준으로 볼 때 미개한 야만인의 문화도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문화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존중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문화다원주의는 1980년대 들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부성과 특수성의 사유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소수 문화집단과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새로 운 시각을 부여할 수 있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변방 역할에 머물렀던 제3세계 국가들 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그 중요성이나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게 된 것이다.

※ 세계화 시대와 정보화 시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 예술, 철학을 함께 아우르는 문화 현상을 넘어서 20세기후반 이후를 특징짓는 시대적 분위기로 우리가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의 생활세계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제3장 서구문화의 신기루 : 서양 근대와 현대 과학기술

 

1. 들어가며

오늘날 한국에서 서구적인 것을 발전된 것과 동일시하고, 서구화되는 것을 개발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서구화’의 개념을 다른 것보다 과학과 기술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과학과 기술이 종교나 문화보다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보편성객관성 그리고 실용성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과 기술은 서양근대철학의 산물이며, 서구문화에 대한 이해 또한 과학과 기술의 문제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이는 서구화가 좋냐 나쁘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① 서양에서 계몽주의 시대 전후에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한 현대 과학과 기술의 철학적 함의를 살펴볼 것이다.

② 현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에 미친 심대한 영향들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비판들을 살펴볼 것이다.

③ 과학의 객관성과 기술의 중립성에 대해 제기된 심각한 물음들을 살펴볼 것이다.

④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과 그것이 과학과 기술에 대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⑤ 현대 과학과 기술이라는 새로운 신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고

⑥ 포스트모던 시대에 과학과 기술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을 검토하고 평가할 것이다.

 

2. 서구 근대와 과학, 그리고 기술

(1) 서양 근대의 출현

- 서구의 역사 :

고대 : 통상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시대와 로마 제국 시대까지

중세 : 476년 서로마제국이 붕괴한 때로부터 15세기 르네상스가 시작될 때까지

근대 : 르네상스로부터 산업혁명기까지

현대 : 산업혁명기 이후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중세 :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을 이해했으며, 성경을 통해 계시되는 신의 의지와 섭리가 가장 중요하였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언명은 중세의 정신을 잘 보여 준다.

- 근대 : 중세를 암흑기로 보고, 그 이전 고대 시대의 정신을 다시 되살리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재탄생’ 혹은 ‘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진 ’르네상스‘가 이러한 시대정신의 표현인 것이다.

르네상스가 다시 부활시키려 했던 것은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세계관과 사고체계였다.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였고, 신의 창조에 대한 경외가 아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한 지식의 축적을 강조하였다. 근대 초기의 대표적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는 이성중심주의의 사고는 인간의 몸을 비롯한 자연을 일종의 기계로 인식하게 하였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지식은 곧 힘이다.”라고 말했다. 자연에 대한 지식이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부여할 것이라는 것이다. 자연을 인간의 지배 대상으로 보아 학문의 목적은 자연의 정복과 이용에 있다고 주장했다.

 

(2) 과학기술의 발달

근대철학은 자연과학의 본격적인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 시작은 천문학과 물리학에서 시작되었다. 지동설(프톨레마이오스) ⇒ 지동설 주장(코페르니쿠스) ⇒ 갈릴레이 ⇒ 물리학 이론으로 정착(뉴턴)중력의 법칙, 보일의 법칙 및 실험과 같은 과학적 방법론 탄생.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다윈의 진화론과 마르크스의 사회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각각 과학임을 자처하면서 서양사회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송두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3) 기술의 발달

산업혁명은 근대철학에 힘입은 자연과학의 발전, 중세 장원제의 붕괴, 자본주의 시장의 발달 등 서로 연관된 여러 요소가 결합된 결과로 일어났다. 산업혁명 이후의 기술 발전이 특별히 폭발적이었던 것은 이전에는 순순하게 이론영역에 속하던 자연과학과 경험영역에 속하던 기술이 점차 융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4) 과학의 발전과 철학

16~17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과학기술은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과학기술보다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으로부터 거리 두기,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 신뢰, 자연을 인간의 지배하에 있는 지식과 사용의 대상으로 보는 철학이 힘을 얻게 되자. 과학기술이 급격하게 발전되기 시작했다. 결국 철학의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가 엄청난 전환을 이룬 셈이다.

 

3. 과학과 기술에 대한 도전

너무나 급격하게 발전하는 기술의 힘에 대한 불안감, 과학과 기술이 과연 인간다운 삶에 대한 진리와 같은 종류의 것인지, 과학과 기술의 성취가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지 등과 같은 문제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1) 진보 사상의 쇠퇴

* 근대의 정신 : 진보에 대한 열망 - 인간 이성의 진보를 의미. 중세의 신과 온갖 미신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자연의 정복을 통한 구원.

* 서양 근대의 꿈 : 자연의 효과적인 이용을 통해 모든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서 인간 이성을 마음껏 꽃피우는 것. 하지만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기술에 대한 회의와 원자폭탄은 물리적인 피해만큼이나 큰 철학적인 상처를 남겼고 진보에 대한 열망은 이내 물음으로 바뀌었다.

 

(2)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물음

* 20세기 중반까지 과학철학의 중요한 문제 :

① 과학적 이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는지

② 과학과 과학이 아닌 학문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 과학의 상식적인 견해에 대한 문제점 :

① 과학적 관찰이나 실험은 언제나 특정한 이론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

② 관찰이나 실험에서도 오류가 발생한다는 사실

③ 아무리 많은 관찰 사례를 모아도 전칭명제인 과학 이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귀납의 문제

 

* 칼 포퍼 : 과학의 발전과정이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대담한 추측과 이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 과학적 가설은 반증 가능해야 하며 ‘과학적 이론은 반증가능하면서도 아직 반증되지 않은 이론이다’라이고 주장한다. 결론은 과학이 절대적 진리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함의를 갖는다.

* 토머스 쿤 : ‘과학의 발전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라고 봄. 패러다임의 전환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종교적인 개종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즉 동양과 서양의 의술은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속하여 그 우열을가릴 수 없는 체계들인 것이다. 17세기 뉴턴 물리학으로의 이행은 과학적 진보로 이해하기보다는 패러다임의 혁명적 교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3) 기술의 유용성과 중립성에 대한 물음

기술발전을 통해 지상천국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은, 양차 세계대전이 비극적으로 끝나고 이어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점차 사그라지게 되었다.

* 하이데거 : 과연 기술이 주도하는 사회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인간 자신마저 기술적 조작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을 개탄했다.

* 자크 엘륄 : 인간 스스로 기술발전을 중단시킬 수도 없게 된 현대 기술사회의 상황을 비판하면서 기술이 자율적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① 환경문제 : 1960년대부터 시작된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은 근대가 가졌던 기술발달에 대한 신뢰와 기대에 큰 타격을 입힌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② 기술 격차 : 온갖 기술을 사용하여 편리하게 살아가고 있는 선진국에 비해 제3세계는 과거보다 더 극심한 기아 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현대기술은 결국 상위 10%의 선택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③ 기술이 중립적인가 : ‘랭던 위너’는 기술은 정치적이며, 인간의 삶에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주장. 특정한 기술의 개발이나 도입은 사회 구성원들 중 일부에게 더 큰 영향력을 갖게 하거나 더 소외시킬 수 있고, 인간 삶의 맥락과 의미를 바꾼다는 것이다.

④ 자유 상실 :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는데 반해 기술에 의해 생겨나는 변화들을 잘 인지하지도 못하고, 인지한다 하더라도 개인이 그것을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4. 포스트모던 시대의 과학과 기술

현대 과학과 기술이 근대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과학과 기술의 이론적·현실적 측면에서 노출된 여러 가지 문제가 결과적으로 근대주의의 붕괴에 일조한 셈이 되었다.

* 상대주의 : 인식론적 차원에서 근대의 신화를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 ‘칼 포퍼’의 반증이론

* 기술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 : 세계대전, 원자폭탄, 환경오염, 기술격차 등

* 자연에 대한 폭력 :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면서 비인간화가 더욱 심해지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 포스트모던 시대 과학과 기술의 중요한 특징 : 근대 시대에서와 같은 해방과 구원의 기제로서가 아닌, 일상의 유용함을 위한 단순 도구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

- 문제 : 눈앞의 성과에 오히려 더 집착하는 방식으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추구되고 있는 것

‘엘륄’은 “기술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자율성을 상실한 기술사회의 모습을 비판하였는데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에 대한 이면마저 흐릿해진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굳이 그 자율성을 되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5. 새로운 과학과 기술을 향하여

현대기술은 최근의 역사에서 동양과 서양의 정치적·경제적 불균등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었다.

*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목적 없는 과학과 기술의 모습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1) 맹목적인 과학과 기술 발전의 추구를 피하고,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추구하는 것이다.

- 기술 격차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 에너지의 소비를 줄일 수 있고 환경에 피해가 적으며 지역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보다 큰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 등 노력을 통해 기술 발전의 방향과 속도가 조절될 수 있을 것이다.

(2) 인류의 보편적인 행복에 대한 관심 :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과학과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 ‘소외된 90%을 위한 공학설계’에 대한 관심.

(3) 순수 과학 분야 연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동시에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대주의적인 전제를 재고하는노력도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과학과 기술은 동양적인 지혜와의 접점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통해 서양근대의 폭력성과 단순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6. 나가며

오늘날에는 과학과 기술의 유용성·객관성·중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인류의 보편적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믿었던 현대 과학과 기술이 폭력과 불평등의 원천이 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보다 바람직한 모습의 과학과 기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의 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서양 근대의 꿈과 오늘의 현실, 그리고 미래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4장 서구와 이슬람 사회

 

1. 들어가며

서구와 이슬람 세계는 이슬람이 완성된 이후 지난 1,400년 동안 협력과 갈등을 거듭하는 애증의 관계였다. 특히 근대 이후 18새기부터 일반적으로 서구의 이슬람 세계 식민지화가 가속화되면서 ‘지배와 피지배’라는 숙명적 적대관계로 출발했다. 711년 아랍군의 지브롤터 해협 횡단 이후 오랜 기간 이슬람 세계의 직접지배와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려 온 서구로서는 18세기 이후 모처럼 뒤바뀐 힘의 강약구도를 깨뜨릴 의사가 전혀 없었다. 서구의 ‘이슬람 편견’은 오늘날까지도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 9·11 테러 : 2001년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을 붕괴시켰던 사건으로 서구에서 이슬람의 위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문명충돌론’ 이론이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었다.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 카에다를 비호해 주었다는 이유. 급진 이슬람정권인 탈레반군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 이라크 전쟁 : 2003년 대량살상무기와 역시 9·11테러 연계를 앞세우며 미국 중심의 다국적군에 의한 전쟁

* 2011년부터 시작된 아랍민주화 시위 : 이슬람식 민주주의가 새롭게 부각되고 급진적 이슬람 정치 세력이 퇴조.

이슬람 세계의 주류적 흐름은 서구와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듯이, 서구와의 대결과 갈등보다는 협력하고 공존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절대다수 이슬람 국가들이 서구와 정치적·경제적 협력 체제를 함께 구축하면서 글로벌 평화와 발전의 중요한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 문명 간 대화 이론 : 이란의 전 대통령이자 철학자인 모하메드 하타미가 그의 책 ?문명의 대화?에서 설파. 1999년 유엔총회 연설 이후 2000년을 유엔이 전한 문명 간 대화의 해로 선포하게 만들었다.

- 현재는 많은 수의 무슬림들이 서구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유럽에만 약 2,000만 명 이상의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고, 미국에도 800만 명가량의 무슬림이 1,500개 이상의 모스크를 짓고 서구 사회 내에서 분명한 자신들의 종교적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2.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접촉과 역사

(1)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지배

* 우마이야 왕조 : 7세기 말에 아랍어를 공용어로 하고 아랍 통화를 제정하였다.

8세기 초에는 동쪽으로는 파미르 고원까지 진출하여 중국과 접하였으며,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 를 정복하고, 711년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하여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켰다. 이베리아 반도의 오늘날 에스파냐 땅은 이후 1492년까지 800년 가까이 이슬람 세계에 속하면서 중세 최고 수준의 학문, 과학, 예술, 문화 등의 결실을 유럽에 전해 주는 지적 창구 역할을 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유럽의 3개 대륙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9세기 말에는 튀니지로부터 시칠리아 섬을 공격하여 200년 이상 이슬람 세계의 지배하에 두었다.

(2)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세계

* 오리엔트 전선 : 아랍군은 7세기 말부터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까지 진격했다.

1071년 셀주크 튀르크가 비잔틴 영역인 아나톨리아 영토로 진격하면서 이슬람 세계에 내주었다.

셀주크 튀르크를 이어 등장한 오스만 제국에 의해 후일 비잔틴 제국이 멸망당하는 전주곡이 되었다.

* 오스만 제국 : 첫 건설자인 오스만 베이는 월내 셀주크 튀르크 시대의 한 부족장이었다.

1299년부터 시작된 오스만 베이의 정복사업은 그의 아들 오르한 시대에 이미 유럽의 발칸 반도에 진출하여 비잔틴의 존재를 위협하였다.

1453년 술탄 메흐메드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뒤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토는 북으로 헝가리에서 남러시아, 남으로는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걸프 해까지 이르러, 과거 이슬람세력권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은 오스만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중세가 종식되고 근대가 시작되는 기점이 되었다. 유럽은 오스만 제국이라는 동방문화권과 직접 접촉함으로써 동방의 새로운 기운과 문명을 급속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곧바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스스로 ‘지리상의 발견’이라 부른 대항해 시대가 도래 하게 되었다.

 

(3) 이슬람 세계의 쇠퇴와 서구의 회복

16세기 중엽에 절정에 달한 오스만 제국은 17세기 들어 쇠퇴하기 시작했다.

- 내부요인 : 귀족 및 지방영주들의 세력이 커지고, 예니체리 군인들의 반란과 권력남용, 피정복지에서의 과중한 세금, 관료와 군부의 부패 등으로 사회적 혼란이 커졌기 때문

- 외부요인 : 유럽인들이 신항로를 발견하여 오스만 제국의 문자보급로에 타격을 입힌 것과 1571년 에스파냐와의 레판토 해전에서의 패배, 1683년 오스만의 비엔나 공략 실패 등을 들 수 있다.

* 19세기

-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계기로 유럽의 오스만 영토 잠식을 더욱 활발해졌다.

이집트 침략은 서구가 이슬람 세계를 본격적으로 지배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 그리스의 독립 선포

- 이집트의 총독인 무하마드 알리가 독립운동을 일으켜 오스만에 대항하며 이집트의 근대화를 추진시킨다.

이스마일 통치기에는 수에즈 운하를 완공하고, 산업·교통·교육의 혁신을 가져왔다.

하지만 지나친 재정지출은 경제를 파탄시켜 수에즈 운하의 실권이 영국으로 이관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결국 1882년 이집트는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 영국 : 예멘 아덴, 키프로스에 이어 이집트를 점령하고, 1890년에는 바레인과 쿠웨이트를 세력권에 넣는다.

- 프랑스 : 알제리 점령 이후 튀니지, 소말리아, 모로코를 연달아 침략하였다.

- 이때부터 서구에 의한 이슬람 세계 식민시대가 본격화되었다.

* 탄지마트 : 근대식 대개혁. 종교와 민족을 초월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공개재판, 군현제도의 실시, 오스만은행 설립 등 정치개혁. 술탄 마무드 2세가 예니체리 군대를 해산하고 서양식 군대 창설.

* 메시루티예트 : 1876년에 공포된 신헌법. 제국 내 모든 시민의 동등한 권리, 내각 중심의 국정운영,

언론의 자유, 근대적인 조세 및 형벌제도 등을 명시.

하지만 러시라-터키 전쟁의 발발과 오스만 제국의 패배로 한계에 부딪혔다.

 

3. 20세기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

(1)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시작된 이슬람 세계와 서구의 현대적 갈등 : 반영(反英)에서 반미(反美)로

- 1947년11월29일 유엔총회장 : 미국의 집요한 제3세계 회유 작전으로 아랍과 유대 두 개의 독립국가로 분할하는 안이 통과되었다.

- 당시 인구비율에서 아랍인의 1/3을 차지하고, 전체 면적의 7%만을 소유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전역의 56%를 분할한다는 것이었다. 경작 가능한 대부분의 비옥한 땅은 이미 유대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 유엔표결 현장에 영국은 없었고 기권을 택했다. 이로 인해 아랍인들의 반영 투쟁은 반미로 바뀌었다.

- 사실 팔레스타인 분쟁과 삼중 약속을 통해 아랍인과 유대인의 갈등을 심어 놓은 것은 영국이었다.

-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팔레스타인이라는 한 지역에 아랍인에게는 아랍국가의 독립을(후세인-맥마흔 서한), 유대인에게는 유대 민족국가의 창설을 약속해주고(밸푸어 선언), 실상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자기들이 그곳을 점령하기로 합의(사이크스-피코 협정)했다는 사실이다.

- 상호 모순된 세 개의 비밀조약과 강대국의 비도덕적 정치음모가 바로 오늘날 중동 분쟁의 불씨를 가져온 본질 적인 핵심이다.

-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서구사회의 유대인 편들기팔레스타인 아랍인 추방과 박해는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갈등관계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스라엘 건국과 네 차례의 중동전쟁

아랍국가와 제3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문명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 준‘데일 야신촌 학살사건’을 중심으로 가혹한 아랍인 추방을 단행하며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국가를 세웠다.

아랍인의 심장부에 유대국가가 들어섬으로써 이슬람 세계와 서구사회가 화합하기 힘든 응어리를 갖게 되었다.

- 1차 중동전쟁(1948) : 당시 아랍세계의 맏형 격이었던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아랍국가들의 즉각적인 저항

- 2차 중동전쟁(1956) : 아랍민족주의를 표방한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의 지도 아래 전쟁이 벌어졌으나 모두 패배

- 3차 중동전쟁(1967) : 6일 전쟁. 기존의 아랍영토마저 이스라엘에 점령당했다. 가자지구, 요르단 강 서안.

골란 고원, 시나이 반도 등이 그곳이다.

- 4차 중동전쟁(1973) : 석유무기화 조치로 석유파동을 유발

- 1980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사건

- 1991년 걸프전쟁

- 인티파다 : 팔레스타인에서의 비무장 봉기.

유엔은 아전보장이사회 결의를 통해 점령지의 즉각적인 반환을 여러 차례 촉구했지만, 그 결의안은 지금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국제법상 되돌려주어야 할 점령지 내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3. 이란과 서구의 불편한 관계

[1954년 모사데크 정권 붕괴 사건]

* 모사테크 : 스위스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 민족주의자로서 1951년 이란 수상이 되었다.

영국의 앵글로이라니안 석유회사의 횡포에 맞서 석유산업의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고, 1952년 영국과국교를 단절하면서 서방과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더라도 독자적인 노선을 주창하면서 석유이익을 이란에게 되돌리려는 정책적 시도를 하게 된다.

* 팔레비 : 친서구파 이란 왕. 모사테크를 해임함으로 국민들의 시위와 대립은 유혈충돌로 치닫는다.

결국 미국 정보당국이 개입하여 모사테크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적인 팔레비 왕정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그때부터 1979년까지 팔레비 왕정은 철저한 친서방노선을 표방하면서 석유이익을 독점하고 이란국민들의 자유와 기본권을 억제하였다.

- 이 사건은 미국이 공공연하게 중동사태에 개입하는 뚜렷한 기점이 되었으며,

동시에 중동-이슬람 세계의 미국에 대한 불신이 더욱 가시화되는 정치적 계기가 되었다.

- 1979년 2월, 호메이니에 의한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정은 무너지고 이란은 오늘날 가장 강력한 반미,반서구 국가가 되었다.

 

4. 걸프전쟁(1991년)과 알제리의 좌절

* 걸프전쟁 : 1990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은 1980~1988년 사이 8년 동안이나 지속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피폐된 경제를 회복하고 민심을 얻기 위해 도발적으로 쿠웨이트 침공함으로 촉발됨.

이슬람 세계와 서구 사이에 또 다른 협력과 적대관계를 규정한 사건.

* 쿠웨이트 : 원래 오스만 시대부처 이라크의 바스라 주에 속한 이라크 영토였음에도 1932년 이라크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석유 이권 때문에 영국이 계속 통치하고 있다가 1961년 이라크에 귀속되지 않고 독립하였기 때문에 이라크는 그때부터 영유권을 주장해 오던 터였다.

- 1991년 1월 일부 걸프지역 아랍국가들과 함께 미국 중심의 서구세계는 다국적군을 편성하여 사담 후세인 공격을 감행하였고 42일 만에 끝남으로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철수했지만, 미국이 더욱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중동 문제에 개입하는 계기가 되어 반미-반서구 정서가 더욱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시에 일부 아랍국가들이 다국적군에 가담하여 사담 후세인 공격에 동참함으로써 그나마 명목상으로 유지되던 아랍민족주의가 퇴조하고아랍 22개 국가의 개별국가중심주의가 뚜렷이 부각되었다.

- 일부 걸프지역의 아랍 산유국 토후들은 아예 미국의 안보 우산 속에 들어갔고, 이집트와 시리아는 산유국들을 군사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대가로 상당한 재정적 혜택을 받았다.

- 이라크를 지지했던 예멘, 요르단, PLO 같은 일부 아랍국가들은 심각한 원조 중단 사태에 직면했으며, 걸프지역에 서 자국 노동자들이 축출 당함으로써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한편 분할된 남북 예멘의 통합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 1991년 알제리 대통령 차들리에 의해 다당제 인정. 이슬람 정치세력 이슬람구국당(FIS)의 집권이 확실시 되자, 알제리 군부는 프랑스와 서구의 지지와 묵인으로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비상계엄 선포를 통해 이슬람구국당을 해체하고 야당인사들을 구금하였다.

이 사건은 국민들에 의한 새로운 민주주의 선거방식도 그것이 서구의 이익에 합치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안겨 주었다. 곧 이슬람 세계가 서구에 갖는 근원적인 불신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줌으로 써 서구와의 관계 개선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되었다.

 

(5) 오슬로 평화협정(1993년)과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실마리

* 오슬로 평화협정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국가 사이에 상호 불가침과 외교관계 수립 등을 통해 공존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의 점령지인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국가 설립이 가능해졌다. 분쟁과 갈등을 접고 화해와 공존으로 가는 중요한 선언이었다.

- 1995년 평화협정의 이스라엘 당사자인 이츠하크 라빈 수상이 암살당하고, 2001년 우파 리쿠드당의 샤론이 새로운 이스라엘 수상이 되면서 오슬로 평화협정의 골격은 훼손되었고, 분리장벽과 점령지 내에서의 유대인정착촌 건설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랍인 사이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4. 9·11테러와 서구의 이슬람 정책

* 9·11 테러 : 2001년 알 카에다를 중심으로 하는 일부 급진적 이슬람 정치조직들의 소행이지만 리비아, 이란 같은 반미국가는 물론 지하드, 하마스, 헤즈볼라 같은 과격 이슬람 단체들도 한결 같이 테러를 비난했다.

하지만 이슬람 세계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사일과 전투기를 동원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공연한 민간인 학살도 국가 테러로 중지되거나 응징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당하면서 전쟁의 정당성은 온데 간데 없고, 서구사회의 ‘이슬람 죽이기’라는 악몽이 재현되는 듯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 2011년 초부터 튀니지에서 촉발되어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민주화 시위도 이슬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리비아 내전에 서구가 군사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이슬람 세계 와 서구사회의 갈등 양상이 변질되고 있다.

- 2011년 4월 9·11테러의 주범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고,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신중동정책을 발표하면 서 다시 이슬람세계와 서구가 화합하고 협력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5. 서구사회에 들어온 이슬람

(1) 유럽의 이슬람

- 유럽의 무슬림 인구는 2007년 통계로 약 5,3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이슬람은 유럽의 두 번째 종교가 되었다.

프랑스에 2010년 현재 470만 명, 독일 약 400만 명 이상, 영국 약 300만 명가량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

- 무슬림이 서유럽에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로 이들은 주로 식민종주국의 용병들이었다. 알제리와 세네갈인은 프랑스군에서, 인도인은 영국군에서, 타타르인과 동유럽 무슬림은 독일군에 서, 모로코인은 에스파냐군에서 각각 해당 국가의 이익을 위해 근무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체제 가 무너지자 수많은 노동자와 유학생 및 기술연수생이 서유럽으로 진출했다.

- 1970년대 이후 이슬람 성원건립사업은 무슬림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함께 오일달러로 부유해 진 일부 이슬람 국가의 정책적인 배려와 유럽 각 정부의 배려에 힘입어 서유럽 전체에 약 3,000개 정도가 개원 하였다. 이슬람 성원은 주로 대도시 중심부에 위치, 무슬림들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 1980년대 초에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무슬림보다 프랑스 현지에서 태어난 무슬림이 더 많아 졌다. 프랑스 태생 무슬림들은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1세대보다 더 크다.

- 유럽인의 개종 : 1970년대 이래 수만 명의 유럽인이 정식으로 이슬람에 입문, 특히 기독교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새로운 현상으로 유럽인 무슬림의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 수피운동 : 유럽인의 개종에 영향을 미치는 종파로, 자급자족으로 중세 초기의 묵가적인 생활양식을 지향하여 정통 이슬람보다는 신비주의라 일컬어진다. 수피운동의 극단적인 형태는 모로코에서 유래한 다르까위 형제단으로 이들의 국제본부는 영국 노르빅에 있다.

- 유럽 무슬림의 종파별 분포에 따르면 90%가 순니파에 속하고 10% 정도가 시아파에 속한다.

특히 영국에는 동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이스마일파 무슬림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1980년 아가칸 재단을 런던 심장부에 이슬람 성원을 건립하였다. 이곳은 이스마일파의 세계본부가 되었다.

- 1990년대 초반 유럽 이민자의 2/3가 무슬림이었다. 유럽 각 정부는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우려는 인구와 문화의 양면에 나타난다. 이슬람 공동체는 현지 문화에 동화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조짐을 보여 주지 않아 유럽인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 유럽 이슬람이 사회의 위협적인 종교로 간주되고 무슬림이 그 사회의 불편한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한, 유럽에서 자라나고 공부한 무슬림 2세들의 좌절과 차별은 더 큰 사회문제로 유럽을 괴롭힐 것이다.

- 2001년 9·11테러 이후에 런던테러나 기타 유럽국가들에서의 테러 대부분이 외부의 소행이라기보다는 그곳에서 뿌리를 내린 자국민 무슬림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 차별과 소외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민자의 제한과 함께 자국 시민 무슬림에 대한 공정 한 기회와 사회적 통합 노력이 절실한 과제로 남는다.

 

(2) 미국의 이슬람

- 미국에는 600만 명의 무슬림과 1,500여 개의 이슬람 성원이 있다.

미국은 이슬람 전래 초기부터 이슬람 국가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는 미국의 독립을 제일 먼저 인정한 우방국이며, 1787년 모로코의 술탄은 미국과 평화우호 조약을 체결했고, 미국은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도 협력관계를 맺은 바 있다.

-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되면서 미국의 지도자들은 아랍국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민간 부문, 즉 미국 석유회사들은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위해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 줌으로써 아랍에는 강한 반미감정과 함께 과격한 이슬람 국가가 생기게 되었다. 과격한 아랍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의 위상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 1970년대 후반부터 워싱턴은 이슬람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주로 세계 석유 위기에서 비롯된 태도 변화였다.

- 9·11테러는 미국 사회 전반에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슬람의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바람직한 현상도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지만, 반대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더욱 고착시키는 경향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9·11테러를 일으킨 집단의 종교라는 심정적 적대감이 그것이다.

- 무슬림을 향한 한층 강화된 감시체제와 꼼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드는 새로운 안보시스템 속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삶의 적응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 무슬림들 :

① 학교에서 혹은 외출 시에 차도를 벗어 던지는 무슬림 여성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② 급진적 이슬람 주의자들의 무모한 인명살상을 비판하는 쪽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③ 이라크전쟁을 둘러싼 반전평화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무슬림은 소극적인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④ 9·11테러 이후 미국 무슬림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 이민 2세 중심의 무슬림 젊은 전문가 집단에게 조국 미국 에 대한 충성과 미국적 이해관계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 벼렸다.

 

〈미국-이슬람 관계 자문기구를 중심으로 관계개선을 위한 조직적인 노력〉

첫째, 지역사회와 지방의회를 통해 무슬림의 존재를 떳떳이 알리는 동시에 이슬람의 올바른 성격과 미국사회에 대한 기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둘째, 미국 내 이슬람 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아랍-이스라엘 분쟁은 물론 이슬람권 분쟁에 대해 미국 행정부가 이중 잣대를 버리고 보다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다하로독 국내 정치적 로비와 유엔을 통한 압력을 강화하고

셋째, 이슬람권 이민정책에 대한 미국 당국의 문호개방을 촉구하며

넷째, 9·11테러 이후 급증하는 모스크에 대한 공격, 무슬림 자녀들에 대한 따돌림과 정신적 가해, 직장에서의 불이익을 철폐하기 위한 내부의 단결과 조직적·제도적인 안보 문제를 확보하고

마지막으로 이런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으로 무슬림의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방안 등이 심도 있게 강구되고 있다.

 

미국적 가치에 대한 애국적 입장과 이슬람 세계에 대한 종교적 연대감 사이에서 무슬림으로서 신앙과 종교적 가르침을 지속해야 하는 고통과 모순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노력이 오늘날 미국 무슬림의 현주소이다.

- 이슬람이 위험하고 위협적인 테러리스트의 요소를 갖고 있다고 잘못 해석하고 보려는 학자들과 정치부 기자들의 편견에 가득 찬 기사로 이슬람이 비민주주의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 이렇게 편견과 무식을 바탕으로 이슬람을 그린 미국 언론의 지배적인 경향은 이슬람을 하나의 문화적 제도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한 잘못된 것이다.

 

6. 서구와 협력하는 현대 이슬람 세계

새로운 변화에 적합한 이슬람법의 적용과 개혁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 가고 있다.

이제 아랍인을 비롯한 무슬림도 이슬람 일체주의와 아랍민족주의를 강조하며 서구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계속하는 한편, 전통적인 이슬람 규범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는 조화와 절충의 묘를 찾고 있다.

- 문명의 충돌에서 이슬람 세계와의 문명 대화로

중동은 인류가 처음으로 문명을 일구어 낸 땅이고, 다양한 이념이 함께하는 경험을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해 간 공존의 현장이었다. 이슬람 세계와 서구의 관계에서 두 세계는 갈등 못지않게 조화와 공존의 지혜를 주고받았다.

 

* 칼톤 쿤 : 중동 인류학자. 중동을 ‘모자이크’사회로 표현하면서, 민족집단 간의 뚜렷한 노동가 직업의 분화, 다양 한 복장과 언어, 종교에 대한 관용, 이슬람을 통한 동질성의 확대 등에 의해 갈등과 반목보다는 이질적인 문화 자체의 존속과 다른 문화와의 대등한 조합을 강조하였다.

* 용광로 이론 : 전통적인 무슬림 사회학자들의 주창.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이슬람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용해되어피아의 구분 없는 종합적인 문화토양으로서의 중동을 규정하고 있다.

* 바이어 : 서구인들이 무슬림들이 가진 증오의 씨앗을 뿌리는 데 어떤 역할을 하였다면, 그 증오의 씨앗을 제거하 는 데도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오늘날 서구는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따라서 변화를 주도하기에는 서구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뿐만 아니라, 서구 자체의 보호를 이해서도 이러한 변화 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 앞으로 서구와 이슬람 세계는 글로벌 시대의 공동주역으로 협력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슬람 세계의 각성과 함께 과거사에 대한 서구의 진지한 반성도 따라야 한다.

 

제5장 서구와 비서구 세계

 

1. 동양과 서양, 서구와 비서구

에드워드 사이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동양과 서양은 세계지도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편견의 세계’이다.

* 메르카토르식 지도 작성법 : 16세기 네덜란드의 지리학자인 메트카토르가 만든 세계 항해지도로써 유럽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다른 대륙보다 훨씬 더 크게 그리는 방식.

세계의 중심은 유럽이고 서양과 북반구가 문명의 중심이라는 인식을 강화하게 된 것.

- 1974년 피터스의 투영도에서는 세계의 국ㄱ가들을 실제 크기에 맞게 나타냄으로써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남반구와 비서구 사회를 보다 적절하게 표현하였으며, 유럽은 상대적으로 축소하였다.

- 서양인들은 세계의 역사를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그리스, 로마를 거쳐 중세 유렵을 지나 유럽의 르네상스와 상업혁명으로 진보하는 것이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 대륙은 모두 유럽인들이 나중에 ‘발견’한 것처럼 기술하였다.

최근 역사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유럽 중심의 역사와 서구중심주의 세계관과 문명관이 유럽의 지식인들이 만들어 놓은 ‘상상의 동양과 날조된 지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오리엔탈리즘 : 동양을 지배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만들어진 허위 지식체계. 동양을 서양보다 열등하고 미개한 세계라고 상상하고 조작하는 인식 방식이고, 동양에 대한 계몽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유럽 중심의 잘못된 세계관과 편견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상상의 지리와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세계지도이다.

 

2. 두 세계와 식민지 조우

오늘날과 같은 동양과 서양, 서구와 비서구, 그리고 북반구와 남반구라는 양분된 세계는 식민주의 시대로부터 기원한다.

- 유럽인들은 15세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상상의 동양’을 찾아 나섰다. 이때 서양인들은 서구의 물질문명과 무기, 화포, 그리고 성경을 가지고 갔으며, 동양에서는 새로운 기이한 물건과 동식물들을 가져왔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대사건을 통해 전개되는 유럽 중심 역사는 동양의 세계를 야만으로 날조 하거나 과장한 것이다.

 

* 이븐 할둔 : 튀니지 출신의 역사학자. 14세기에 이라크, 인도, 중국 같은 비아랍권 국가에서 오는 상인들은 유럽 보다 더 부유하고 훨씬 떵떵거리는 동양인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 안드레 군더 프랑크 : 종속이론. 유럽과 아시아의 세력 판도가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815년경이라고 본다.

* 바스코 다가마 : 희망봉 발견과 인도항로 탐험

* 아마드 이븐 마지드 : 이슬람의 항해자. 바스코 다가마보다 20~50년 앞서서 희망봉을 돌아 서아프리카 해안을 거슬러 올라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여 지중해로 진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도 역사적으로는 최초의 일이 아니며, 북유럽의 변방에 살던 바이킹족들은 이미 10세기에 지금의 알래스카와 캐나다 지역을 왕래하였고 1000년경 그린란드를 떠나 북미 대륙으로 온 바이킹 일행은 지금 의 뉴펀들랜드 북동지역을 점령하고 빈란드라고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이처럼 유럽인들에 의한 신항로 탐험과 신대륙 발견은 처음부터 과장과 날조된 것이었다.

 

* 정화(鄭和) 원정대 : 중국 명나라의 해상왕이 이끈 원정대. 1405년부터 1433년 기간 중 7차례에 걸쳐 세계의 바닷길을 항해했으며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원정했다고 한다.

- 영국 해군 장교 출신 개빈 멘지스는 콜럼버스보다 71년 앞선 1421년에 아메리카를 발견했고, 마젤란보다 98년 앞서서 세계 일주를 하고, 바스코 다가마보다 80년 먼저 인도양을 항해했으며, 쿡 선장보다 300년이나 먼저 호주에 첫발을 내딛고 유럽인들보다 400년 먼저 남극과 북극을 탐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콜럼버스가 1492년에 그토록 고대했던 인도가 아니라 오늘날의 바하마와 도미니카 공화국, 쿠바 등이 있는 카리브 해 연안의 섬들에 도착했다. 인디언의 유래도 아메리카를 인도로 착각하고 부른 데서 연유한 것.

- 콜럼버스의 탐험은 애초부터 이교도들에게 기독교 전파와 개종을 위한 것이었고, 또 다른 십자군 원정이라는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포르투갈과의 해외 팽창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원된 것이다.

- 유럽인들은 금을 찾고자 하였고, 금을 위해 잔혹한 원주민 학살을 시작하였다.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인디언들은 ‘미개하고 잔인한 야만인들이고 악마의 자식들’인 데 반해

인디언들에게 유럽인들은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두렵고 기이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 존 맨드빌 : 14세기 기사. 여행기『약속의 땅으로의 여행과 편력』에서 다른 곳에 사는 이방인들이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몸’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 세바스찬 뮌스터 : 독일의 신학자이자 수학자. 『세계지리학』(1544)에서 야만인, 미개인, 괴물들에 대한 내용이각각의 장으로 나누어 기록되어 있다.

* 아메리고 베스푸치 : 항해자. 그가 쓴 모험기들은 유럽에서 콜럼버스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 15, 16세기의 유럽인들에 의한 신대륙 발견은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노예화의 길을 의미했다.

신대륙 발견으로 아프리카의 가장 큰 비극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른바 아프리카인들의 세계적인 이산(diaspora)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 16~18세기에는 아메리카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지역에까지 유럽인들의 탐험대가 도착하였고, 모든 지역에서 침략과 잔혹한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 『총, 균, 쇠』라는 책을 통해 문명의 수수께끼를 추적하였다. 이 책에서 거의 모든 비서구문명사회들이 유럽인들과의 접촉과 침탈 과정에서 사라져 갔음을 주목하고 있다. 쇠칼과 같은 철기 무기들과 총, 전혀 면역성이 없는 질병과 병원균들이 원주민 사회를 붕괴시킨 주요 요인이었다는 것.

- 초기 식민지 시대에 약탈과 노예화, 질병도 무서웠지만 서구인들은 의도적인 원주민 말살정책을 실행하기도 했다.

- 당시 북미에는 1,000여 개의 종족이 1,000만 명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4세기가 지난 후에는 고작 22만 명만 살아남게 되었다.

- 뉴멕시코 지역의 인구는 1519년에 1,100만 명에 달했지만 1650년에는 150만 명만 남게 되었다.

- 멕시코에서는 1519년에 에스파냐가 아즈텍을 정복한 이래 2,500만 명이던 인구가 50년 후에 600만 명으로 줄었 으며, 1600년에는 100만 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 페루와 멕시코를 정복할 때도 대량 무차별 학살 이외에도 생물학전, 독한 술, 강제 이주, 투옥과 구금, 원주민 여 성의 강제 불임, 아동 납치, 종교 의식 금지, 백인들의 가치관 주입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 것이다.

- 아프리카에서 유럽인들은 신대륙을 개척하기 위한 노예들을 공급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노예사냥에 나섰다. 이들의 저항과 방어 행윌ㄹ 유럽인들은 종족 폭동과 종족 간 학살 행위라고 서술하였다. 노예선으로 아메리카에 노예로 수송한 아프리카인들만 해도 1,000만 명을 넘는다. 이들 대다수는 18세기에 끌려갔으며, 카리브 해 지역과 브라질로 가장 많이 팔려 갔다. 노예선들은 영국의 식민지 지역에 가장 많이 수송되었으며, 해마다 5,000~6,000여 명씩 노예로 끌려갔다고 전해진다.

- 호주와 뉴질랜드,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에서도 유럽인들의 잔혹한 약탈과 살육, 질병과 종족말살정책은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무차별 살육이 대표적이다. 혈통은 완전히 끊어졌고 종족 말살이 완성되었다. 영국 정부와 식민지 공권력은 태즈메이니아인들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절시켜 버렸다.

* 제국주의 : 머나먼 영토를 지배하는 제국의 태도와 이론과 실천을 말한다.

* 식민주의 : 머나먼 영토에 이주하여 직접 정착하고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 영국은 전 세계적으로 간접통치 방식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에스파냐나 포르투갈,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은 직접 통치 방식을 취했다.

- 오늘날 직접적인 제국주의는 종말을 고했지만, 제국주의는 문화적 측면에서 정치적·이념적·경제적·사회적 실천에 서 여전히 남아 있다.

- 식민주의는 전 세계에서 인종들의 질서, 즉 인종들 간의 위계서열을 만들었다.

- 백인들과 흑인들 사이에는 현지 원주민들과 인도 등지에서 플랜테이션 노동자들로 계약하여 전 세계로 데려간 이주민들이 있었다.

- 아프리카에서 팔려 온 노예들은 최하위층으로 인간 취급을 받을 수도 없는 격리된 자들이었다.

 

3. 제3세계의 탄생과 종언

동양과 비서구 사회의 탄생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결과였다면, 제3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 정치의 산물이다. 전후 제1세계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계이고, 제2세계는 구소련과 동구권을 중심으로는 공산주의 블록을 의미했다. 그리고 제1세계와 제2세계가 아닌 모든 국가를 제3세계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제3세계라는 용어는 전후 비서구사회를 지칭하는 용어이면서 낙후된 저발전국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혹은 77그룹(G-77)과 같이 비동맹 독립국가들을 의미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1989년 이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구소련이 급속히 해체되면서 냉전시대가 종말을 고한 후, 제1세계도 제2세계도 제3세계도 없는 다극화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제3세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 및 격리주의 정책. 17세기부터 백인들의 식민주의를 통해 확립 된 것. 소수의 백인이 85%의 흑인을 지배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은 각 인종들의 거주 구역과 업무 구역을 분리하고, 사회문화적 접촉뿐만 아니라 혼인도 금지하는 극단적인 정책이다.

- 자신의 우월성에 토대를 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 또는 명시적 적대행위로서의 인종주의는 식민주의를 정당화 할 뿐 아니라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 인종주의자들은 인종을 미개, 반문명, 문명으로 나누기도 했으며, 오직 아리안족과 셈족만이 문명화되었다고 보았 다. 중국도 유럽인들이 볼 때는 발육을 멈춘 반문명 상태였다.

- 외국인 차별과 외국인 혐오주의는 모두 인종주의의 다른 형태이다.

다민족의 공존과 상호 존중을 인정하지 않고 자국민과 자문화, 자신의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은 인종주의와 다를 바 없다.

* 제국주의자들의 향수 : 문명화된 국가가 야만적인 국가들을 부양하고 고양시킬 의무가 있다는 ‘백인의 책무’라는 특수한 사명감과 함께 일어난다. 영화「인도로 가는 길」,「아웃 오브 아프리카」,「부시맨」과 같은 작품들은 백인들의 식민사회를 우아하고 질서 있게,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백인들에 게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4. 발전과 저발전-선진국과 개발도상국

* 발전 : 인간의 잠재 능력을 증진하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며, 인간의 선택권과 인권, 자유를 신장하는 가치 지향적이고 질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경제적 측면만으로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발전하였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 인간의 자유와 정체성, 인권과 선택권은 문화 다양성을 증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 1999년 하버드 대학에서 ‘문화적 가치와 인류발전 프로젝트’라는 세기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새뮤얼 헌팅턴, 제프리 삭스, 로렌스 헤리슨과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했으며, 발표된 논문들을 엮어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 문화상대주의자들 : 모든 문화는 각기 고유한 발전의 목표와 윤리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문화의 기준으로 발전목표와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이란 문명 개념이나 진보 개념과 같이 서구가 다른 문화권에 강제로 이식하거나 부가하는 개념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반문화상대주의자들 : 발전주의자와 진보를 신봉하는 자들은 이미 발전은 서구나 비서구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인류사회가 추구하는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목표가 되었다고 할 것이며, 빈곤과 질병, 문맹의 퇴치뿐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기회를 넓히고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발전이 보편적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 어떤 입장이든지 관계없이 발전하는 데 문화적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는 모든 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 문화가 목표, 발전은 수단 : 문화를 개조하지 않고서는 어떤 발전도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 발전의 목표는 문화, 즉 인간들의 마음 상태를 바꾸는 일이 되는 것이다.

* 화이트헤드 : ‘문명의 진보란 반드시 더 좋은 상태를 향해서만 일률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함.

- 진화주의는 특히 기술과 경제적 관점에서 유럽사회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하는 유물사관과 발전 이론이 유행하면서 제3세계와 저발전국 혹은 후진국이라는 수준 낮은 발전 단계에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미개사회를 숱하게 만들게 되었다.

- 발전주의는 진화주의와 같이 유럽식의 제도와 관념을 신생 독립국가들에 이식시킴으로써 이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잘 살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촉진하여 주민들이 서구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살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또 다른 근대화의 이념이다.

- 세계화는 경쟁적·폭력적이고 제국주의적이다. 국가, 자본, 시장, 시민사회를 하나로 가깝게 연결하고 세계를 하나 의 지구촌으로 만들어 주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끊임없이 또 다른 ‘야만’과 ‘부적응 문화’를 만들어 낸다.

세계에 포섭되지 못한 빈곤 국가들과 오지의 지방은 세계화의 피해자가 되고 야만이 된다.

문명과 야만의 양극화는 식민주의 시기와 같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 에드워드 사이드 :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문화는 여러 가지 정치적·이념적 명분들이 뒤섞여 있는 극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 전 세계는 200개가 넘는 독립국가로 나누어졌다. 일부 학자들은 앞으로 수백 년이 지나면 독립국가는 500개가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한다. 이는 사람들이 거대 국가보다는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자율 적이고 작은 규모의 정치 공동체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분리독립운동은 고유한 문화권을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다.

- 자신들과 다른 집단을 구분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문화의 차별화와 정치화 현상은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거대한 문화자본의 침투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언어와 종교,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정치와 저항의 과정에서 종교적 근본주의가 더욱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며, 전통의 복귀와 부활과 같은 문화정치 현상도 나타난다.

* 문화다양성 협약 : 유네스코가 주도한 협약.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 이제 문화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일 뿐 아니라 경제의 핵심이고 정치의 축이기도 하다.

문화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과 타자의 모습을 견주어 바라보고,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봄 으로써 현실 문제의 근원을 생각할 후 있는 것이다.

 

제6장 세계화 시대 에스파냐어 문화권의 의미와 특성

 

1. 들어가며

* 세계화 : 재화와 용역뿐 아니라 자본과 금융 관련 상품이 국경을 넘어 활발히 거래되면서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현상.

- 1982년 멕시코의 외채 위기 : 세계화가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IMF의 구제 금융을 받았다.

- 15세기 말 이래 본격적으로 개시된 근대 유럽의 팽창은 세계화의 첫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선도국가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었고, ‘발견’과 정복의 주요대상은 오늘날 라틴아메리카로 불리는 지역이었다. - 에스파냐는 가톨릭, 이슬람, 유대교의 공존과 혼종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사례를 예증한 바 있다.

- 투우라는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경기, 잔혹한 식민통치의 전설,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종교재판소의 이단 심문과 화형식 탓에 오랫동안 에스파냐는 유럽 내의 후진적 이방인으로 치부되어 왔다.

- 카스티야, 카탈루냐, 바스크 등 에스파냐의 여러 지방은 ‘하위민족주의’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고유의 지역적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유서 깊은 원주민의 역사적 전통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초 이래 약 300년 동안 주로 에스파냐의 식민 지배를 겪은 까닭에 ‘이스파노아메리카’나 ‘이베로아메리카’로 지칭되곤 한다.

- 2008년 현재 지구상에서 에스파냐어를 모국어 또는 공용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4억5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라티노 인구 팽창에 따라 에스파냐어 문화권은 세계화의 발신지인 미국 내부에서도 크게 확대되면서 지난 몇 십 년간 미국의 인종 구성을 더욱 다양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 라티노 : 라틴아메리카 출신 주민. 영어식 표현으로는 히스패닉.

 

2. 이베로아메리카의 종교문화 : 가톨릭의 아성

- 중세 초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에스파냐에서 교회와 국가는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다.

-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이슬람 세력을 밀어내려는 이른바 재정복 과정(8세기 초~15세기 말), 15세기 말부터 300 년 이상 가공할 만한 위세를 떨친 종교재판소의 역할, 아메리카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된 예수회의 선교활동을 거쳐 19세기와 20세기의 전통주의적 가톨릭 대학의 설립 추진, 오푸스데이(Opus Dei:신의 사역)의 활동은 에스파냐의 가톨릭을 대변하는 몇 가지 흐름이었다.

- 에스파냐에는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지명과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서북부 갈리시아에 있는 대표적 명소로, 중세 이래 널리 알려진 순례자의 길이 끝나는 지점이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 바르셀로나에 있는 에스파냐 가톨릭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로서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했다. 건축을 시작한지 10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

가톨릭 예술 양식의 재현이자 프랑스식 합리주의의 요소를 가미한 독창적인 작품이다.

* 가톨릭식 지명 : 아메리카, 콜롬비아, 산토도밍고, 엘살바도르 베라크루스, 산타페, 콘셉시온, 아순시온 등

* 해방신학 :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영감을 받은 라틴아메리카 가톨릭 성직자들의 행동주의적 신학 사상과 현실참여 운동이었다. 1960~1980년대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대중 운동을 후원하면서 사회 정의와 인권의 실현을 위한 푯대가 되었다.

*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 페루의 사제. 해방신학자들은 가톨릭교회의 권위주의적 계서구조와 경직된 성서 해석에 반대하면서 포괄적인 신학적 이해 속에서 성서의 주요개념을 재해석하려고 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을 원용해 개발도상국의 빈곤, 분배의 불평등, 양극화 문제를 신학적 의제로 삼았고, 교회 기초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면서 구조적인 억압 기제를 고발하는 동시에 빈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도모했다. 좌파적 색채를 띠거나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단일한 형태를 유지한 것은 아니었다.

* 오순절파 : 복음주의 계열 개신교 교파. 가톨릭 아성에 맹렬히 도전한 결과 개종 또는 교파 간 이동이 뚜렷했다. 브라질과 과테말라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개신교 신자 증가율이 인구증가율의 5~6배에 이르렀다. 폭발적 증가는 누적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도시 빈민층의 새로운 저항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의 독특한 재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3. 에스파냐어 문화권의 현대 정치사 : 내전과 혁명, 군부독재, 민주화 이행

〈에스파냐〉

20세기 에스파냐 역사의 분수령은 내전이었다. 한마디로 내전은 20세기 초부터 지속된 에스파냐의 고립과 침체,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절정이었다. 국왕과 더불어 대지주, 군부가 권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의 군사독재(1923~1931) : 농민 수탈, 노동계급은 도시의 빈곤층을 형성.

- 1931년 제2공화정 : 토지개혁, 정교분리, 군대개혁을 실행하고자 했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부딪혔다.

- 1936년 인민전선 정부 출범 : 그동안 억눌려 왔던 대중의 요구는 봇물이 터진 듯 분출되었다. 파업, 시위.

- 1936년 7월17일. 에스파냐 군부의 실력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반란 : 노동자들의 저항에 치열한 내전을벌이게 되었다. 파시스트 국가인 이탈리아와 독일은 군수물자뿐만 아니라 병력까지 투입해 반란세력을 지원했다.

전쟁 확대를 우려한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불간섭 정책을 고수하는 가운데 결국 소련만 단독으로 인민전선정부 에게 물자를 제공하고 군사고문단을 파견했다. 에스파냐의 내전은 바야흐로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 1939년 3월 승리를 거둔 프랑코 : 1975년까지 에스파냐 역사상 최장기 독재정권을 유지하면서 지역 간 분열과국제적 고립을 심화시켰다.

- 1975년 프랑코의 사망 : 에스파냐의 민주화 이행은 분열과 고립의 시대를 마감하는 계기.

에스파냐 정치권의 선택은 또 다른 정치적 분란의 최소화와 과거의 비극적 상흔에 대한 망각이었다.(망각협정). 2007년 ‘역사기업법’을 통과시키면서 과거사 정리 문제 해결.

〈라틴아메리카〉

- 1910년 멕시코 혁명, 1959년 쿠바 혁명, 1979년 니카라과 혁명 : 게릴라 무장투쟁의 승리였다는 공통점.

- 20세기 내내 라틴아메리카 곳곳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 것은 군부 통치의 여파였다.

미국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으면서 경제성장에 몰두하는 동시에 억압적인 독재체제를 유지했다.

- 아르헨티나 군부의 ‘추악한 전쟁’(1976~1983)은 칠레의 장군 피노체트의 철권통치(1973~1990)와 더불어 가장 악명 높은 권위주의 체제로 손꼽혔다.

 

4. 에스파냐의 지역적 다양성과 지역 간 대립

- 북부가 녹색의 에스파냐라면, 중앙고원지대는 붉은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는 백색의 에스파냐라고 지칭할 수 있을 만큼 에스파냐의 여러 지방은 다양한 색채를 띤다. 오랜 역사와 다양한 경험을 반영하는 징표이다.

- 남부 안달루시아 : 세비야와 그라나다를 포함하여 가장 오랫동안 이슬람의 정치적 지배와 문화적 영향 아래 놓여 있었고, 투우와 플라멩코의 본고장이다.

- 바스트 국가 : 나바라를 비롯해 에스파냐 동북부로부터 프랑스 서남부까지 걸쳐 있는 바스크인들의 지방을 일컬으며, 독자성이 매우 강하다. 피카소의 그림으로 재탄생한 게르니카, 산페르민 축제, 특히 소몰이 축제로 잘 알려진 나바라의 팜플로나 등이 바스크 지방의 명소이다. ‘바스크 국가와 자유(ETA)'

- 카스티야 :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에스파냐 전체 면적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며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부를 이룬다.

- 카탈루냐 : 오랫동안 아라곤 연합왕국의 중심지. ‘카탈란’이라는 고유 언어를 사용하면서 카스티야와 숙적관계를 유지해 왔다. 바르셀로나는 “가장 남쪽에 있는 북유럽 도시”로 불릴 만큼 가장 국제적인 감각과 화려한 면모를 갖춘 도시로서 꾸준히 일하고 검소하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특성이 있다.

- 통합의 주도권을 쥔 카스티야 : 에스파냐 내전이 끝난 귀 프랑코의 파시스트 체제가 철저한 중앙집권적 통치를 선보이며 카탈루냐에 대한 가혹한 탄압으로 지역 간 대립과 악감정을 더욱 증폭시키고 말았다.

 

5. 정열의 스포츠, 축구와 투우

에스파냐 = 태양과 정열 = 축구와 투우

〈축구〉

- 라 리가(La Liga) : 에스파냐의 1부 리그

- 엘 클라시코 : ‘라 리가’의 호적수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가 벌이는 축구 경기.

한 시즌에 최소한 두 번씩 펼쳐지는 그야말로 숙명의 라이벌전이다.

에스파냐 내전의 재연으로 인식하기까지 한다.

〈투우〉

- 목축과 농업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신에게 황소를 바치는 고대의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멕시코 등지에서 시성식 같은 종교의식이나 국가적 경축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로서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 매년 봄 부활절 축제부터 10월 말까지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에 열리는 오후 5~6시 무렵에 시작된다.

- 주역 투우사 마타도르. 작살을 꽂는 단창잡이, 말을 탄 채 창으로 소를 찌르는 창잡이, 조수 등 여러 명이 한 조.

* 물레타 : 마타도르가 사용하는 붉은 천으로 감긴 막대 창.

 

6. 라틴아메리카의 두 가지 거대한 전환

(1) 첫 번째 전환 : 유럽 지향에서 전통 또는 혼성의 재발견

- 1820년대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성취한 뒤 반세기 넘게 혼란기를 겪다가 1880년대에 다소 안정을 되찾은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는 서유럽과 미국을 발전 모델로 삼아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는 특히 프랑스 문화가 유럽지향적인 라틴아메리카 엘리트층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 1900년경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상파울루는 ‘남아메리카의 파리’로 탈바꿈했다. 게다가 1860년부터 1930년까지 아르헨티나에만 600만 명이 넘는 유럽인이 쇄도했다.

- 1898년 미국-에스파냐 전쟁 이후에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커졌고, 특히 카리브 해와 중앙 아메리카는 ‘미국의 뒷마당’이 되었다.

* 호세 엔리케 로도 : 우루과이의 작가. 『아리엘』(1900)을 통해 미국 문화가 지닌 물질적 세속주의와 미국에 대한 열광을 경고했다. 대신 지역적 정체성의 형성과 유지를 역설하면서 라틴 문화의 반물질적·반세속적 성향과 정신적 감수성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 호세 바스콘셀로스 : 멕시코 철학자. 멕시코 혁명이 끝난 뒤 실용적 기술을 매개로 라틴아메리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1920년대 미국과 영국의 지배 욕구를 경계하면서 원주민의 역사와 혼성, 즉 인종적 혼혈과 문화적 화합을 지역적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파악했다.

 

(2) 두 번째 전환 : 세계화의 ‘모범생’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 거점으로의 변모

- 1982년 멕시코의 외채 지부유예 선언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의 긴급 지원을 받게 된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국가들은 정부규제를 출소하고 방만한 재정지출을 줄이며, 비효율적인 공기업들을 민간부문에 매각하고 외국자본에 대한 제한을 철폐하거나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국내시장을 개방하는 등 신자유주의 노선을 충실히 견지했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범생’으로 인정받은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는 계층과 지역의 양극화라는 심각한 상황에 봉착했으며, 현재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극심하고 도시화 수준과 국가 채무의 부담이 가장 높은 편이다.

- 1994년1월1일 북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NAFTA)의 발효에 항의하면서 봉기를 일으킨 멕시코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해방군이나 다른 반세계화 대중운동 세력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 특히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의 정치무대에서는 좌파의 귀환현상이 나타났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 다 시우바, 아르젠티나 정의당의 네스토르 키르츠 네르, 볼리비아 사회주의운동당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니카라과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 등이 21세기 초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바람’을 이어 갔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대폭 수정하거나 폐기하고 빈곤퇴치를 위한 부의 공평한 분배, 의료혜택의 확대, 주거문제 해결과 같은 사회정책을 강조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 거점으로 탈바꿈시켰다.

 

7. 스팽글리시 : 미국의 라틴아메리카화?

- 지난 한 세대 동안 미국 내 에스파냐어 사용 인구의 증가에 힘입어 에스파냐어 문화권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관심거리이다. 아메리카대륙은 리오그란데 강을 경계로 북쪽의 앵글로색슨과 남쪽의 라틴문화권으로 구 분되어 왔지만, 최근 미국 내 인종과 언어지형이 눈에 띄게 변화하면서 이런 전통적인 구분법이 점차 무색해졌다.

- 현재 에스파냐어 사용 인구만으로도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다음의 ‘국가’를 이룰 수 있는 수준, 즉 미국은 ‘제5의 라틴아메리카 국가’인 셈이다.

- 가장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의 경우 공식통계에 따르더라도 라티노 인구는 전 주민의 약 305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순위 2~3위를 유지해 온 텍사스 역시 예로부터 두 가지 언어와 문화를 지닌 지역으로, 특히 텍사스 남부는 라티노 문화권을 이루어 왔다. 라티노는 텍사스 전체 인구의 32%를 차지했고, 18세 이하 연력 집단의 40%가 라티노이다. 일명 ‘젖은 등’(불법이주자)을 포함한다면 미국 내 라티노의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 치카노 : 멕시코계 미국인. 원래 20세기 초 ‘제1세대’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1930년대 말 갓 이주한 멕시코인을 낮춰 부르는 표현이었다. 작은 꼬마나 소년을 뜻하는 ‘치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스팽글리시 : 1954년 푸에르토리코의 언론인 살바도르 티오가 신문칼럼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로서,

애당초 에스파냐어의 퇴보를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표현은 어법에 맞지 않는영어 구사를 공공연히 비판하고 라티노를 주변적 존재로 폄하하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게 되었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스팽글리시는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쿠바, 도미니카 출신 이주민들이 구사하는 비표준적 영어로서 미국 남부에서는 흔히 ‘텍스-멕스’라고도 불린다. 인종차별 요소를 지닌다.

- 일부 라티노 활동가들은 치카노의 경우처럼 스팽글리시를 언어적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에 대한 긍정적 표지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스팽글리시는 라티노의 ‘언어이자 정체성이며 행동양식이자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재탄생했다. 그것은 또한 치카노, 뉴요리칸(뉴욕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코인), 쿠바계 미국인 등 특정 라티노 집단 을 일컫는 여러 이름과 표지들의 분파적 성격을 예방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 에스파냐어 사용 인구의 증대는 미국 내 영어 전용 정책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인종·문화적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 에스파냐어 문화권은 우리에게 제공하는 정보와 교훈은 적지 않다. 정복과 수탈, 지배와 종속의 역사를 예증했고 때로는 반발, 저항, 혼성을 통해 다양한 파장을 선보였다, 특히 대안의 부재를 설파하면서 전 세계에 획일적인 논리를 부과하려는 최근의 세계화 추세에 맞서 에스파냐어 문화권은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인 삶의 모습 과 다면적인 사호 작용을 웅변해 주는 귀중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제7장 현대 서양의 도시계획과 도시문화

 

1. 지구도시화 시대의 도래

세계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07년5월23일자로 지구촌 거주자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게 되었다. 도시는 문명의 공간적 집약이자 축소이다. 현대도시는 고도의 과학기술과 공학이 제공하는 편리함을 갖추고 있지만, 도시사회의 갈등구조를 완화시킬 사회적 대화 장치의 부족,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일자리 문제, 각종 공공서비스와 문화공간에 대한 접근과 이용의 불균등 등 다양한 문제를 껴안고 있다.

 

2. 19세기 근대적 도시정비의 유산

(1) 산업도시의 대안 모색

- 산업혁명은 도시 기능과 성격에 혁신적 변화를 야기했다. 생산의 중심지라는 특성이 첨가된다.

* 도시화 : 좁은 의미로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이촌향도 현상이 낳은 도시의 비약적 팽창을 말한다.

- 도시 인프라망의 정비 없이 공장이 들어서고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이들로 인해 순식간에 등장한 산업도시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 상류층의 거주지는 도심에서 멀어졌고, 이에 따라 도시공간의 ‘사회적 분리’가 진행되었다.

 

* 오웬 : 산업도시에 대한 대안적 구상을 실험한 최초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환경이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 봉사하는 것으로서 조직되고 재창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상적 공동체를 구상하 였다. 1825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건립한 뉴하모니 공동체는 몇 년 못가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실패하였다.

* 푸리에 : 산업발전이 다수의 빈곤을 야기하고,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채 독점과 투기를 일삼는 기생적 인간 들을 양산한다고 생각했다.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적 협동조합적 공동체 거주자들을 위한 팔랑스테르 건설을 통해 준비된다.

* 고댕 : 19세기 중반 푸리에의 영향을 받은 기업가. 파밀리스테르라는 이상적 공동체를 건설했다.

- 19세기 전반기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은 소규모 이상적 공동체 구상을 통해 각종 생활서비스와 편의시설, 문화설 비, 협동과 우애에 기초한 노동, 사회적 연대와 분배의 정의, 노동과 여가의 결합, 환경친화적 주거단지 등 도시계획의 중요한 요소들을 제시하였지만 근대 도시계획으로 온전히 이어지지 못했다.

(2) 근대적 도시정비와 보수적 사회개혁

-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19세기 후반의 사회주의자들은 주택난과 열악한 주거환경을 산업자본주의의 결과로 파악 하면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폐지와 함께 주택문제도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회혁명의 성공 이후 집산주 의 원칙에 따라 코지와 건물을 국유화해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도시의 열악한 환경을 점진적으로 개선시킨 이들은 보수적 사회개혁가들이었다.

- 1840년대 영국 차티즘 운동의 절정, 프랑스의 1848년 2월혁명과 제2공화국의 탄생 등 진보주의적 흐름을 진정 시키며 등장한 보수적 정치세력과 자유주의적 사회개혁가들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 하에서 근대적 도시정비를 위해 노력했다.

- 영국에서는 채드윅의 노력으로 1848년 공중보건법 제정. 이후 19세기 후반 건축물뿐 아니라 도로구조와 폭, 하수체계 등을 규제하며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는 건축조례 제정이 확산되었다.

- 프랑스에서도 1850년에 비위생 건물정화법이 제정되었다. 이후 19세기 후반에 쓰레기 처리, 하수 처리 등과 관련된 도시위생 개선정책이 등장하였고, 1902년에 공중보건법이 제정되었다.

- 19세기 후반의 도시정비는 프랑스 제2제국의 보나파르티슴, 영국의 보수적 토리당 내부의 개혁파 등 보수주의 정치권력에 의해 전개되었다.

- 도시정비는 전염병과 도시 노동자 밀집지구의 혁명적 계급의식 확산을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리고 대규모 공공 건축물 건립을 통해 권력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되었다. 우선적으로 도심의 상징적 공간들과 부유층 거주 구역에서 이루어졌다.

* 오스만화 : 1850년~1860년대 프랑스 제2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의지를 반영해 1853년~1870년까지 파리의 대대적 정비와 도시 미화를 수행한 센 지사 오스만의 이름을 딴 것으로서, 19세기 후반에 실현된 가장 대표적인 근대적 도시정비. 오스만화로 인한 파리의 변화는 크게 네 가지이다.

① 좁은 길과 도심의 빈민 주거지역을 철거하고 대로를 신설하여 도시의 소통망을 확충했다.

② 상하수도 체계와 녹지공간을 확대했다.

③ 웅장하고 화려한 공공건물들이 새로 건설되거나 확충되었다.

④ 1860년에 주변 18개 소읍을 편입시켜 오늘날의 파리 시 경계를 형성했다.

※ 오스만화는 투기성 도시계획의 원형이었다.

- 유럽의 근대적 도시정비는 20세기 전환기 미국의 도시미화운동을 촉발시켰다.

슬럼을 철거하고 좁고 비위생적인 거리들을 정비하면서 도시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콜럼버스 400주년 기념 세계박람회 : 도시미화의 표준안을 제시-백색도시(white city)

19세기 후반기 도시의 근대적 정비는 자유방임적 도시정책과 달리 도시생활의 기초적·필수적 도시설비들을 확충 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도시정비가 정치권력과 부동산 소유주와의 결합에 의해 수행되면서 시민들의 참여는 배제되었다. 근대적 도시정비의 최대 수혜자는 부동산 소유자들이었다. 또한 화려하고 깨끗해진 도시 중심부의 근대적 경관이 보여 준 미학은 스펙터클 효과를 통해 정치권력의 통치성을 강화시켜 주었다.

 

3. 20세기 국제주의 양식과 교외개발

(1) 기능주의적 도시계획

- 파리의 오스만화나 미국의 도시미화운동을 통해 건립된 권위주의적 신고전주의 건축물들이 보여주는 ‘기념비적도시’에 대한 반발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기능주의적 근대도시 구상을 낳았다.

* 르코르뷔지에 :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 1993년 출간한 『빛나는 도시』에서 근대적 대도시 계획안으로 격자도로망, 마천루 빌딩, 밀집된 고층 아파트군, 고청건물 사이의 넓은 녹지 등을 강조했다.

* 바우하우스 : 1920년대 독일에서 벌어진 기능주의적 실용예술 및 거축 디자인 운동. 근대적 실용적 기능을 강조.

그로피우스, 마이어, 미스 반데어로에 등

* 히틀러 : 독일 제3제국의 수도 베를린을 전면 개조해 ‘세계의 수도 게르마니아’로 만들 계획이었다. 오스만이 변화시킨 파리보다 더 웅장하고 거대하고 장엄한 세계제국의 도시를 건설해 권력을 과시하고자 하였다.

* 조닝(zoning) : 지역용도제. 실용성이 중시된 미국에서 1910년대 도시계획에서 공간을 사용 용도와 법적 규제에 따라 기능별로 나누어 배치하는 것. 주거전용, 업무지구, 지구지정이 없는 세 개의 용도지구로 구분하여 토지 이용을 규제하고 건축물 고도도 제한하였다.

- 1928년 미국 표준도시계획법이 제정되어 가로, 공공용지, 공공건물, 공급시설, 지역용도제 등을 체계화하였다.

- 1928년 근대건축국제회의 : 르코르뷔지에 주도로 기능주의적 도시계획은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 아테네 헌장 : 1933년 아테네에서 열린 CIAM 4차 회의에서 채택.

근대 도시계획의 네 가지 기능으로 주거, 생산, 여가, 교통을 강조하였다.

- 기능적 건축과 도시계획

· 장점 : ①다양한 건축물을 간결하고, ②통합적인 양식으로 대치시킬 수 있고, ③비용도 절감된다.

· 단점 : ① 다양한 지역특성, 전통과 문화, 역사적 경험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문제점을 드러냈고,

② 기능에 따른 공간 활용으로 인해 도시민의 공동체적 생활양식의 확산도 어렵게 하였다.

③ 또한 19세기와 마찬가지로 도시환경을 바꾸어 가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 역시 힘들게 했다.

 

(2) 정원도시와 2차 대전 이후 교외개발

* 정원도시 운동 : 19세기 말 영국의 사회사상가 하워드가 주창. 도시와 농촌의 장점만 뒤섞는 새로운 제3의 자석.

* 정원도시 : 고임금-저임대료의 공간이자 자연의 아름다움과 일자리 및 흥밋거리를 갖춘 새로운 정주 형태이다.

민주주의와 협동주의에 기초한 정원도시의 토지는 공동체가 공유한다.

최초의 정원도시는 1904년 런던에서 56km 떨어진 레치워스에 완성되었다.

* 대런던계획안 : 1944년 도심 과밀인구를 외곽으로 이전하고, 교외지구 인구를 더 이상 증대시키지 않으며, 외부권역에 기존 소도시를 확장하는 동시에 신도시를 개발하고 그린벨트로 둘러싼다는 도시계획.

* 모두를 위한 도시 : 프랑스. 파리 교외의 소도시들에서 공공설비 확충, 저렴한 임대아파트단지 건설, 녹지 확보 등을 통해서 자치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었다.

* 드골 : 프랑스 대통령. 1965년 수도권 도시기본계획을 만들고 수도권 정비와 신도시 개발을 실행했다. 국가 중심의 관료주의적·권위주의적 교외 개발. 수도권고속지하철 탄생.

* 르페브로 : 마르크스주의적 도시이론가. 68혁명을 전후로 자본의 안정적 순환과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국가가 도시환경에 대해 사회적 투자를 확대시켜 온 것을 비판하였다.

마르크스주의적 도시 이론 혹은 정치경제학적 도시 이론이라 부르는 이 같은 해석은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적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비판적 이해의 핵심이다.

※ 프랑스인 : 사회적 네트워크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형성하는 공동체 문화를 중시했고,

문화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도심의 공동주택을 선호했다.

※ 영국인 : 가족 단위의 단독주책을 선호해 교외 주거지를 원했다.

- 20세기 중반 교외 성장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미국이었다.

- 교외는 중산층에게 가족의 사생활을 보장하고, 도심의 범죄, 성매매, 하위문화에 대한 두려움에 안정감을 제공했 다. 교외는 비슷한 사회경제적·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어울려 살아간다는 공동체 의식을 낳았으나, 부유한 백 인 중산층들만의 폐쇄적 공동체였다. 교외가 개발될수록 미국 대도시의 낙후된 구역은 슬럼으로 변해갔다.

 

4. 20세기 말 신자유주의와 도시문화

(1) 신자유주의와 도시 재개발

* 3R : 도시 재생산(regeneration), 개선(renovation), 재활성화(revitalization)

* 1929년 대공황 : 수정자본주의(포드주의적, 케인즈주의적)를 통해 자본주의 위기를 조절

* 1960년대 말 : 고비용, 저효율 난관에 봉착

* 1970년대 중반 : IT산업과 도시건조환경이라는 새로운 투자 영역을 찾아낸다. ⇒ 신자유주의 시대 등장

* 신자유주의 시대 :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세계도시의 성장을 야기했다.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경제사회 영역에 대한 일정한 국가 개입과 규제를 완화하며,

시장의 자율적 질서를 강조한다. 영국 보수당 대처, 미국 공화당 레이건의 ‘보수혁명’으로 시작.

* 신자유주의적 도시 재개발 : 20세기 말부터 서양의 여러 대도시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주요 도시들도 중심적 세계 도시가 되기 위한 무한경쟁 속에서 도시 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 맨해튼의 남동쪽 로어이스트사이드(LES) 재개발

- 1990년대 맨해튼 한복판 센트럴파크 북쪽의 할렘(Harlem) 구역 재개발

* 할렘 : 흑인들의 상징적·문화적·저항적 공간. 재개발로 고우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잃어 갔고,

임대로 상승으로 떠나가기 시작한 흑인들의 공간은 백인 중산층이 메웠다.

* 도크랜즈 : 19세기 런던의 가장 대표적인 슬럼으로 다양한 이민자 주거지역이었던 이스트엔드 타워햄릿 구를 중심으로 한다. 약 20년간의 재개발로 인해 슬럼은 사라지고, 빌딩 밀집지역으로 변화했다.

주거단지와 혼재된 사무실의 초과 공급으로 난개발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울러 이스트엔드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사라지게 만들었으며, 임대료 상승으로 많은 주민들이 오랜 생활공간을 떠나야만 했다.

(2) 도시 공공개발은 가능한가?

* 신자유주의 도시재개발에 대한 비판 :

- 지역의 고유한 역사성, 정체성, 문화 등의 무시

- 효율성과 경제성을 강조한 초현대적 건물들 난립

- 기존 주민들을 소외시키고 특정 계층과 부동산 개발업자 이익 극대화

* 대책 : 슬럼의 재개발에는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시 정부나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공공성을 확보하기위해서는 시 정부나 국가의 공적 역할이 민간 자본의 역할보다 두드러져야 한다.

* 로저스 : 영국의 세계적 건축가. 런던 도크랜즈 재개발은 실제 도시의 질이나 공공이익에 적합하지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은 개발이라고 지적.

〈공공성이 강조된 재개발 사례〉.................. 공공성과 정체성 강화, 주민 공동 건설

* 파리의 도시재생 사업 : 미테랑 대통령의 사회당 정부의 강한 의지로 공공사업 성격을 띠었으며, 문화예술 공간의 확충으로 특징지어졌다. 국가나 시 소유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자본의 이익 추구를 최소화하면서 건축가와 도시계획가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한 사회당의 강력한 정책의지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포스트모던 건축물로 유명한 퐁피두센터 : 1977년. 도심 한복판의 낙후지역이었던 보부르 재개발의 결과.

* 런던, 1974년 도심 청과물 시장이었던 코벤트가든은 낡은 시장건물을 보수한 후 1980년 다시 문을 열었다.

주민 공동체와 역사적인 장소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현대화된 이곳은 이후 관광명소가 되었다.

*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시 정부의 부두 재개발 : 주민 공동체의 참여를 유도해서 공공소유였던 부두 부지를 상업시설·문화시설·관광시설·주거시설로 재개발하였다.

*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 :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시 정부가 공공성과 해항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재개발을 추진했다. 옛 산업용 부두를 재정비해 다양한 해양문화 활동을 촉진시켰다.

 

5. 도시의 미래를 만드는 힘

-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진행된 도시 재활성화 :

①자본이 중시되는 도시 ②전문가가 중요시되는 도시 ③일부 계층이 중시되는 도시로 변화시키고 있다.

- 대다수 도시개발과 재개발은 상가, 주택, 사무실 같은 단일 기능만을 갖고 있으며, 단기적 영리 목적에만 부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문화적 공공공간과 복합용도 개발에 관한 지역사회의 장기적 수요는 무시되고, 거주하기 좋은 마을,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진다.

* 뉴어바니즘협회(CNU) : 1993년에 결성. 역사적인 양식과 건축을 중시하고 지역공동체와 공공성을 중시하는 도시계획가들과 건축가들의 모임.

* 뉴어바니즘 헌장 : 1996년 미국 찰스턴에서 열린 제4회 회의에서 채택.

①지역성과 장소성의 강화 ②역사유산의 중시 ③공동체의 거점 구축

④도시 가꾸기에 주민 참여의 적극적 유도 등을 강조한다.

* 어번 빌리지 : ① 낙후된 도심을 현대적 고층빌딩 숲으로 바꾸지 말자.

② 편리한 생활조건을 갖추면서도 거주민의 공동체적 문화를 유지하자.

③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유지하는 작은 마을 규모를 개발하자.

④ 컴팩트 시티(compact city)의 개념을 기초로 한다.

* 컴팩트 시티 : ① 도시민들의 일상적 소통의 부재를 극복하자.

② 주민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활동이 서로 겹쳐지게 하자.

③ 이웃 공동체가 도시생활의 중심이 되게 하자.

요컨대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려는 구상이다.

* 해비타트 : 유엔 산하기구로 1978년 창립되어 주거와 도시문제를 논의한다. ‘조화로운 도시’개념을 제시.

* 조화로운 도시 : ①공간적 조화 ②사회적 조화 ③환경적 조화 ④조화로운 개발을 위한 도시계획을 강조한다.

* 도시에서 인권보호를 위한 유럽 헌장 : 1998년 유엔인권선언 50주년 기념회의에서 발의, 2000년에 확정.

- 도시를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속한 집합적 공간으로 규정하고 도시민이 스스로의 정치적·사회적 · 생태적 발전을 위한 권리를 갖는 동시에 연대의 의무가 있고, 도시 정부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도시 거주자 모두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내일의 도시 : 정의로운 도시, 다양성의 도시, 공공서비스의 도시, 민주적 도시, 창조적 도시, 환경친화적 도시, 다중심적 도시, 소통이 자유로운 도시, 참여와 연대의 도시, 무엇보다 인간다운 도시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 장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 도시의 아름다움은 시민공동체의 오랜 사회적·문화적 참여의 결과이다.

도시의 미래, 문명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힘은 공동체적 시민의식에 충만한 시민들이 행하는

일상의 작은 실천들에서 나온 것이다.

 

제8장 관광인류학 : 현대 서양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1. 들어가며

* 굴뚝 없는 산업 : 국제관광은 2009년 한 해 동안에만 1조 달러 이상의 소득을 창출했다.

1일당 30억 달러의 소득을 생산했다는 계산이다. 사회경제 발전의 주요한 동력이다.

- 사람들은 관광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시켜 마주하게 되는 일종의 ‘타자’와의 진정한 만남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자 한다.

* 4S : 태양(Sun), 모래(Sand), 바다(Sea), 성(Sex)

* 관광산업의 부작용 : ①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②관광국 내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심화,

③성의 대상화 및 상품화, ④현지인과 현지문화의 대상화 및 상품화 등 사회적 문제 야기.

* 맥캔넬 : 관광은 극히 근대적인 행위이며, 리조트나 관광단지로 떠나고 싶은 충동에 대한 대응이다.

* 여행 : 배움의 일환이다. 경험적 학습 방식. 타문화를 접하고 배우는 중요한 하나의 방법.

- 국제관광 시대가 타민족과 타문화에 대한 이해, 즉 국제 이해를 증진시키는 한편, 지역과 민족이라는 전통문화의 복원 또는 강화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라진 지 오래되었거나 사라질 위기에 빠진 전통문화를 재생시키고 지역의 색채를 강화시키고 있다.

- 세계화로 인한 지구적 문화의 확산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 지역과 지방문화, 즉 민족 정체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관광 과정을 통해 유지되고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 관광은 현대 서양문화의 주요한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게 한다.

* 인류학 : 삶의 모든 방식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문화를 자연적이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에 따라 구성된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관광도 계량화나 경제적인 측면을 위해 대상화되고 조작되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의 일환으로 구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으로서, 문화 전체에 영향을 주는 총체적인 사회적 현상으로 조망되어야 한다.

 

2. 국제대중관광의 탄생

Tour

-ism

선반 또는 원형, 축 또는 중심점을 도는 운동을 의미하는 tornare(라틴어)와 tornos(그리스어)에서 유래. 근대 영어 ‘돌다’라는 뜻으로 변형되었다.

행동 또는 과정, 일정한 이론이나 태도 또는 방침이나 주장을 의미.

ist : ism의 행동 또는 일정한 이론이나 주장을 하는사람

낱말 ‘tour'와 접미사 'ism'을 합쳐 만든 합성어는 ’원형으로 움직이는 행동‘을 뜻하게 된다.

tour는 왕복, 즉 한 곳을 출발하여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는 행동을 의미한다.

* 대니얼 디포 : 1724년 『영국 섬 전역 투어하기』(A Tour~~~)라는 제목의 여행 가이드를 출판했다.

* 그랜드 투어 : 17~18세기 유럽의 귀족 자제들이 시작한 교양여행을 설명하는 용어였다.

- 세계관광기구연맹이 제안하고 세계관광기구가 채택한 저의로서 국제관광객 :

① 방문국을 최소한 24시간 이상 체류하는 임시 방문자로서

② 여행 목적으로는 여가(휴가, 휴일, 위락, 유학, 종교, 스포츠)와

③ 업무(친지 방문 도는 가족 회합, 회의)가 있다.

* 관광객(tourist) : 여가나 휴식을 즐기기 위해 쾌락을 좇는 사람. 소극적으로 주어진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 유람.

* 여행자 : 고통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의 ‘travail'와 어원이 같은 영어의 ’travel'이라는 표현 속에서 고생과 노동을 곁들이는 사람, 즉 여행을 하는 여행자는 고생을 하면서 무엇에 몰두하여 일을 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뭔가를 찾아 나서는 사람.

* 에릭 리드 : 여행의 역사를 연구한 역사학자. 관광과 여행을 시대적으로 구별한다.

전근대 사람들은 여행을 고통으로, 심지어는 고행으로 이해하였지만, 근대 사람들은 쾌락 또는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 근대 관광 : 대중적이며, 국경 내외에 있는 관광지를 찾아 개발하고 유지하며 관광객을 모집하여 관광지로 수송할 수 있는 교통수단도 마련된 관광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 최초의 대중관광 : 기차의 발명과 영국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획기적인 사회활동의 한 방편으로 탄생했다.

19세기 후반부터 대중관광의 발전은 이처럼 산업발전과 궤도를 같이하였다. 토머스 쿡.

* 토머스 쿡 : 대중관광 사업을 시작한 사업가. 1841년 7월5일 영국 북부지역 유람여행을 기차와 함께 시작했다.

* 관광의 시스템적 접근법 : 관광지와 관광객(체계)과 관광이 어떻게 연계되어 종합적으로 진행되는지, 즉 관광 과정을 마치 작은 퍼즐 조각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큰 그림처럼 이해할 수

있는 분석적 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관광산업의 여섯 부문 : 마케팅, 운수회사, 숙소, 관광시설, 기타 서비스, 그리고 법적 제도.

- 관광산업은 단일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경험, 풍경, 장소, 볼거리, 분위기 등

다양한 구성 요소의 집합을 판매하는 것이다.

- 관광산업은 관광환경, 즉 물리적·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기술적 환경이 어떻게 관광객의 관광경험에 영향을 주는지도 신중하게 고려하게 된다.

* 레이퍼 : 지리적 요소와 행위적 요소를 구분한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출발지역, 통행지역, 도착지역 모두에 하나의 체인처럼 연결되어 퍼져 있다고 설명한다. 각각의 지리적 요소에 행위적 요소가 연결되어 있다.

‘상품’으로서의 관광이지만 복합적인 과정이 연계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인 ‘관광상품’은 단순하게 제조업 에서 만드는 하나의 ‘상품’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3. 관광과 인류학의 만남

- 관광의 3중성 : 복잡함, 중층성, 전체성

- 정치학에서의 관광 연구 : 공공정책과 기획 분석, 정치경제적 측면과 개발

* 기어츠 : ‘중층기술’을 바탕으로 한 심층 분석 방식도 관광연구에 도입하여 관광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를 요구.

- 인류학과 관광연구가 인간의 역동성과 문화를 밝혀내고자 하는 공통된 목적을 갖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 관광객과 인류학자의 차이 : 인류학자들은 인류학의 ‘진지’함을 내세워 관광과 인류학이 동일선상에 취급되는 것을 반대해 왔다. 즉, 인류학자들은 체계적이고 사회 역사적으로 맥락화된 세계 정치와 경제에 대한

해를 주장하고 제시할 책임이 있으며 억압자들을 대변하여 말해야 하는 반면, 관광객들은 세계 정치와 경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던 셈이다.

- 관광인류학자들에 의한 인류학자들의 분류 : ①진지한 관광객 ②심층적인 관광객 ③파트타임 관광객

④단순하지도 비판적이지도 않은 제3의 관광객 ⑤정제되고 유식한 엘리트 관광객 등으로 표현

 

(1) 주인(호스트)과 손님(게스트)과의 만남 : 성스러운 여행 또는 제국주의의 지배

- 관광인류학의 대표적인 저서 : 인류학자인 스미스가 편집한 『주인과 손님』이다. 현지인-호스트, 관광객-손님. 성스러운 여행으로서의 관광과 제국주의의 지배로서의 관광을 다루고 있다.

* 넬슨 그래번 : ‘성스러운 여행’으로 접근하는 방식의 대표자. 관광객과 이들이 우연하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관광의경험이 갖는 문화적 의미에 관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 ‘성스러운 여행으로서의 관광’의 이론적 바탕 : 뒤르켐의 이론, 말리노프스키의 연구, 모스의 연구,

방 주네프와 터너의 논의 등

- ‘제국주의의 지배’라는 측면 : 데니슨 내시와 같은 인류학자들이 강조. 관광을 제국주의의 산물로 이해.

관광지와 관광객의 관계를 사회정치적 구조를 중심으로 분석사고 있는 시각에 가깝다.

과거 식민지와 본국 간 관계의 연속처럼 일종의 중심과 주변으로 구분되는 구도하에 놓인다는 것이다.

영국 사람들은 예전 영국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나라들, 즉 인도, 카리브 해 섬들과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관광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관광지에 자리하고 있는 관광호텔이나 대표적인 관광기업, 사업 역시 대체로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 다국적 기업이 소유하고 있어 대부분의 관광소득이 관광지 사회 내에 재분배 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으로 유출되는 구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즉, 이는 호스트가 차지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체계에 미치는 관광의 실증적 영향 또는 충격에 보다 관심을 갖고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 해리 매튜 : (대중)관광자라는 골든호드들은 오늘날 똑같은 식으로 저개발국가들을 위협하고 있다. 현대 관광은 대중들이 단순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세계 곳곳의 지역문화가 파손되고 오염된다고 주장.

- 그래번을 포함한 첫 번째 관점 : 미시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유지되는가’에 중점을 두는 접근 방식이다. 특히 관광이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과 어떻게 미시적으로 즉, 개개인의 경험에서 맞물리는지에 초점을 두는 접근방식인 것이다.

- 내시와 같은 두 번째 관점 : 거시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인간의 삶이 유지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관광이라는 행위를 통해 기존의 사회화·구조화·계급화된, 식민과 제국으로 구분된 역사적 배경이 맞물려 있음을 인식하고 이런 구조를 강조하는 접근방식인 것이다.

- 전자에 속하는 관광인류학은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관광, 즉 일상과 비일상 간의 이동 과정을 통하여 표현되고 유지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며

- 후자에 속하는 관광인류학은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관광적 생산양식이 초래하는

사회·경제·정치·환경적 결과를 연구하는 것이다.

 

(2) ‘무대화된 진정성’과 ‘관광적 시선’

* 맥캔넬 : 최근 관광인류학에서 중요하게 도입되는 핵심적 개념은 ‘무대화된 진정성’이다.

모든 관광객은 성스러움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관심의 현대판으로서 ‘진정성’, 즉 진정한 삶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관광객은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 대한 ‘진정성’을 추구하은 일종의 순례자이다. 타자들의 ‘진정한 일상생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관광객의 ‘시선’은 사람들의 생활을 침입하게 되고 이 침입을 통해 사회적 관계가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다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관광객을 위해 일종의 ‘무대화된 진정성’이 관광지라는 공간에 제공된다.

* 존 어리 : 진정하지 않은 것에 즐거움을 갖는 심지어 관광객들을 구경거리로 삼는 포스트-관광객이라는 개념을도입. 관광과 감각이라는 개념은 중심으로 하고 있다.

* 부어스틴 : 관광객들이 거짓된 ‘진정성’, 즉 진정한 원주민들이 아니라 배우들이 진행하는 전통춤 공연이나 모델화된 민속촌 같은 ‘유사이벤트’를 찾게 되었다는 것.

- 최근에는 시각 중심의 관점을 넘어서서 후각과 촉감과 같은 또 다른 감각들이 관광에 주는 효과로 연구의 초점이 발전되어 대형 카니발과 축제를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 흥미로운 것은 결과적으로 관광 연구는 비일상적이라고 인식된 먼 곳에 있는 관광지보다 축제, 스포츠 행사,

퍼레이드 등 일상적이고 익숙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관광현상에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 랑팡 : 세계화와 정체성, 문화유산과 정체성, 전통과 정체성, 역사와 정체성, 성과 정체성 등의 다양한 연구주제를 다루고 있다. 국내 문화유산을 유람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집단 정체성인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며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프레츠 : 민족을 ‘상상된 공동체’로 이해하면 관광명소들은 흔히 민족의 대표적인 성격을 나타내거나 민족의 존재를 역사적으로 입증해 주는 장소로 기능하게 된다고 한다.

* 앤더슨 : 민족주의 운동이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활용하는 인구조사, 지도, 박물관이라는 세 개의 기관 중 마지막인 박물관의 기능과 동일하다.

- 초국적 주체들은 거주국과 기원국, 둘 사이에 존재하는 탈중심화되고 소외된, 심지어는 혼란 속에 있는 자들로 기술되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 이들은 관광객의 범위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종족적 소수자로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인들과 같은 초국적 주체들은 민족-국가로 경계 지어진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된 ‘타자’로 인식되고 있기에 삶 자체가 여행이며, 이들의 모국 관광은 오랜 여행 끝에 집으로 귀환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 변화하는 세계화의 맥락을 고려할 때, 오히려 국제관광은 세계화와 지역 통합과 같은 정치·경제적 변화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다민족·다종족 사회 및 연합국가에 걸맞은 새로운 정체성들을 등장시키는 하나의 교육적 도구로 인식될 수도 있다.(랑팡.1995)

 

(3) 관광객

* 에릭 코헨 : 가장 먼저 관광객을 분류한 학자. 그는 관광객의 행동과 그 동기를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제도화 수준에 맞춰 관광객들은 떠돌이, 탐험가, 개별 대중관광객, 단체 대중관광객으로 범주화할 수 있으며, 이들은 각각의 범주에 맞춰 요구가 다르고 도착지와의 관계도 다르다.

· 떠돌이 : 색다르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관광객. 전혀 제도화되어 있지 않을 그룹. 지역주민과 직접 거래.

· 탐험가 :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나 알려지지 않는 곳이며, 이런 곳을 찾아 나선다.

여정이 피곤하고 불편해지면 바로 편안한 관광환경을 찾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 개별 대중관광객 : 제도화된 관광시설이 제공하는 자원들을 이용해 좀 더 편한 형태의 떠돌이 관광을 한다.

· 단체 대중관광객 : 관광의 거의 모든 것, 즉 식사, 휴식, 쇼핑, 관람 등을 제도화된 관광시설에 맡기고 자신들의본국 환경과 흡사한 ‘관광버블’ 안에서 단체로 관광을 한다.

* 잭슨 : 크루즈가 정박하는 관광지에 관광객을 위한 보호 환경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 이를 ‘관광버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 관광버블 : 원래 보호벽을 의미하는 ‘환경버블’이라는 개념에서 기원했다.

국적기, 자국 회사가 소유한 호텔, 버스, 레스토랑 등 물질적 요소와 동기, 태도, 신념 등과 같은 관광객의 내면과 관련된 관광버블의 심리학적 측면이 있다.

- 여행 목적 중심에 의한 분류 : 문화관광, 의료·보건 관광, 스포츠 관광, 회의관광 등으로 범주화하기도 한다.

 

(4) 관광경험

- 관광경험은 ‘타자성’이라는 개념과 연관지어 살펴볼 수 있다. 타자성은 만남 또는 접촉을 통해 인식된다.

* 그래번 : 관광을 성스러운 순례로 이해. 특히 만남의 순간, 관광경험의 시간성에 주목했다.

그 만남이 이루어지는 관광의 순간에 관광객은 타자를 경험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진정성’을 되돌아볼 계기를 갖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 왕(Wang) : '실존주의적 진정성‘의 개념으로 ’관광적 순간‘을 설명한다.

“실존주의적으로 진정한 관광경험을 추구하는 관광객은 특정한 관광활동에 의해 활성화되는 존재의 실존주의적 형태에 몰두한다.” 춤을 추는 순간은 일상생활과 일반적인 갈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리미널(문지방)한 세상으로 관광객들을 초대한다는 것.

- 시간과 갈등이 미뤄지면서 어떤 경험을 통해 관광객은 타자와 마주하며 자신과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4. 포스트-관광과 관광객

* 맥캔넬 : ‘관광’이 현대적인 현대 사회의 것으로 접근되었다.

* 파이퍼 : 포스트모던주의적 개념으로 관광에 접근하고 있다.

- 포스트-관광은 사회적 변화를 보다 밀접하게 반영하고 있는 연구하고 할 수 있다.

〈포스트-관광객〉

첫째, 관광을 위해 집을 떠나야 하는 충동을 점점 더 느끼지 못하고 있다.

비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CD-ROM 등을 통해 가상 관광을 제공 받는다. 3D영화, 전용 영화관 등

둘째, 취미나 견해가 날로 다양해지고 있으며, 그 폭도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다양한 관심의 ‘패스티시(혼성 작품)’를 표방한다. 우주관광, 유람선관광 등

셋째, 현실적으로 일련의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관광 자체를 하나의 게임처럼 여기며, 진정한 관광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포스트-관광객의 또 다른 특성〉

① 관광의 상품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② 관광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으며

③ 관광과 관련된 기호, 특별히 아주 스펙터클한 기호들에 이끌린다.

- 디즈니랜드를 포스트-관광이라 하고, 그곳을 관람하는 관광객들을 포스트-관광객이라고 할 수 있다.

관광, 관광객, 관광경험을 하나의 고정된 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다차원적이고 가변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관광을 이해함으로써만 현대 사회, 현대 문화에 대한 그림이 제대로 그려질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의 변화된 흐름도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5. 나가며

- 관광은 타자의 일상생활인 ‘진정성’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진정성’을 찾고자 하는 근대적 행위이며,

사회·문화·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세계적인 주요 산업의 일환이다.

- 관광인류학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이론들은 관광이라는 근대적 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오늘날 현대 문화를이해하고자 하는 분석적 도구하고 할 수 있다.

- 관광인류학은 과정으로서의 관광 시스템, 무대화된 진정성, 관광적 시선, 포스트-관광객을 포함한 다양한 관광객 등에 과한 이론들을 통해 현대 서양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제9장 현대 스포츠 : 자본과 미디어가 결합한 문화 쟁투의 장

 

1. 스포츠의 정의

desportare(라틴어) : 기분전환 활등을 하다. ⇒ desporter(고대 프랑스어) : 뛰놀다. ⇒ disport(영국) ⇒ sport

① ‘전환하다’라는 의미의 중세영어 ‘sporten’에서 파생된 것으로, ‘일상으로부터의 방향, 또는 기분전한’ 혹은 ‘오락’

② 야외에서 행하는 수렵

③ ‘운동경기’로 한정되어 사용919세기)

④ 놀이와 일의 연속에 있는 경쟁적 신체적 활동의 제도화된 형태 - 뤼센

⑤ 자연의 정복을 위한 신체훈련을 통한 육체의 문화 - 가르생

⑥ 유희의 성격을 지닌, 자신과 타인의 경쟁 혹은 자연요소에 대한 도전을 하는 신체 활동(국제스포츠체육협의회)

⑦ 완전과 탁월성을 향한 노력 - 굼브레히트

* 하위징아 : 경기를 놀이에 포함시키면서도 스포츠는 그 둘과 구분한다.

스포츠가 사회구조와의 유기적 관련성을 모두 상실해 버렸다고 단언.

* 더닝 & 시어드 : (전통)놀이와 (현대)스포츠의 구조적 차이를 비교하면서 현대스포츠가 형식적 조직을 지니며 합리적인 기록적 규칙을 중시하며 제도적·형식적 장치를 통한 통제가 강화된 점 등을 주목한다.

 

2. 현대 스포츠의 등장과 특징

(1) 현대 스포츠의 등장과 배경

- 형식적 측면에서 현대 스포츠는 이전에 놀이형태로 혹은 느슨한 규칙하에 존재하던 경기 방식에 체계적인 규칙과 제도를 도입했으며, 내용적 측면에서는 18세기 후반에 나타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 산업혁명의 진원지인 영국에서 현대 스포츠가 탄생한 것은 우연만은 아니었다.

1) 마르크스주의적 입장

- 경제적 관점 : 자신들의 계급의식에 상응하는 스포츠 영역들을 구축 ⇒ 스포츠 종목의 차별화를 낳게 되었다.

노등계층들 - 단체 경기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었다.

- 단체 스포츠 : ① 경기자, 관중들에게 사회지배적인 규범을 내면화시키는 억압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제로 작용

② 노동계급 집단들 내부의 연대성을 구축하고 강화하는 기능도 할 수 있다.

* 캐시모어 : 자본주의에서 스포츠가 행하는 4가지 주요 기능

① 조직화된 스포츠는 유순한 노동력을 길러내는 데 기여한다.

② 스포츠는 완전히 상업화되어 시장의 힘에 지배된다.

③ 스포츠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를 표상한다.

④ 국가의 관료적 행정은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한다.

* 토머스 아널드 : 19세기 중엽 럭비하교 교장.

스포츠는 단결, 규칙준수, 공정성 등을 전수하는 가기형성 과정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 스포츠 또한 그 자체의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채 작동하는 영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비마르크스주의적 입장

* 베버 & 퇴니에스 : 현대 스포츠의 등장을 사회형식의 보편적 변화 과정에 따른 현상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근대사회가 보이는 합리화와 계량화 등의 과정이 스포츠 영역에서도 발현된 것이다.

근대사회와 현대 스포츠는 성취 원리를 중심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

- 반면 스포츠 영역에 존재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요소들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적·계급적 변화의 양상들이 동시에 추동해 낸 결과물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현대 스포츠의 특징

* 캐시모어 : 스포츠를 통해 표출되는 현대인의 욕망에 대해 언급

① 불확정성(예측 불가능성) ② 경쟁적 욕망의 대리표출 ③ 금지된 과도함의 표출 ④ 자족적 특성

- 지나치게 예의바른 현대인의 삶은 경쟁의 기회를 앗아가 버렸으며, 인간의 본능에 존재하는 폭력적 성향을 억누르고 있다. 스포츠는 그 기회를 부여해 준다. “살해의지의 미학화”라고까지 부른다.

- 스포츠는 노동으로부터의 회피라는 그 자체의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내면적 이유를 언급한 것.

* 거트먼 : 현대 사회의 변화와 병행하는 스포츠의 내·외적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① 세속성 : 제의적인 활동이었던 경기는 종교적 속성을 잃고 세속성을 띠게 되었으며, 마침내 스포츠가 종교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 피에르 쿠베르탱 :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올림픽 경기를 “종교적 운동경기”라고 표현

* 브런디지 : “올림픽 운동은 20세기의 보편적 종교”라고 언급했다.

② 평등성 : 스포츠에 참여할 기회와 조건의 평등을 의미. 명시적인 차별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문화적 조건에 의한 ‘보이지 않는 천장(white ceiling)이 특정한 계층과 인종적 주체들이 특정한 스포츠 영역 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충분한 경제적 지원의 필요성

③ 전문화 : 전문적 기술의 습득. 스포츠는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즐기는 놀이와 확연하게 구분.

④ 합리화 : 모든 규칙은 더 나은 방식으로 계속 개선되고 서로 다른 놀이나 경기가 동일한 형식의 스포츠로 형성

⑤ 관료화 : 공통된 규칙을 제정하고, 대회를 개최하고 합리적인 규정을 수립하거나 개정하기 위하여 관료집단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되었다.

⑥ 계량화 : 스포츠에서 기록의 중요성은 재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록과의 싸움이다.

* 얼트록: 점수 또는 c-g-s(센티,그램,초 체계)로 측정할 수 있는 체육활동만을 스포츠로 정의하자고 제안함. ⑦ 기록 추구 : 도전과 진보의 상징.

- (신)기록 추구는 계량화의 조건하에서 가능하며, 계량화는 합리화에 의존한다.

- 합리화된 훈련이 전문화를 낳는다. 이를 위해서는 뒷받침할 수 있는 관료조직이 필수적이다.

- 이 모든 것은 결국 사회적 역동성 속에 뿌리내린 스포츠의 세속화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3. 현대 스포츠와 사회문화적 양상

(1) 스포츠와 성(Sex)

* 스나이더 : 스포츠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와 관련하여 세 가지 범주적 구분을 한다.

첫째, 여성들에게는 용인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 격투, 필드 경기, 복종시키려 하고, 힘을 가하고, 신체접촉이 일어나는 대면 대립 스포츠 등

둘째, 일반적으로 여성들에게 용인되지 않는 영역도 있다.

- 경쟁적 필드 경기, 단거리 경주 그리고 멀리뛰기 등

셋째, 여성들에게 일반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스포츠가 있다.

- 수영, 체조, 피겨스케이팅, 테니스 등

- 스포츠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별참여를 제한하는 방식뿐 아니라 보상의 차별화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 오늘날 스포츠 영역에서 남녀차별의 현상이 사라졌다고 할 수 없다.

- 또한 남녀의 차이를 온전히 무시하고 공정한 경쟁만을 강조하는 것도 타당한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 관건은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정한 경쟁에 해가 되는 차별을 줄이며 경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들을 모색하는 것이다.

 

(2) 스포츠와 계급

- 스포츠는 중세부터 계급적 성향을 지니고 출발했다.

- 아마추어 정신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직업으로 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은 돈만을 위해 경기하는 속물들이라고 간주.

- 철저하게 아마추어 정신으로서 스포츠를 강조하는 이들의 태도에는 지난날 스포츠 영역에 대해 가졌던 지배적 지위의 상실에 따른 박탈감과 노동계층들의 스포츠 참여에 대한 두려움에 일정 정도 기반해 있었다.

- 근대 자본주의 체제하의 경제적 사회적 조건의 차이는 각 계급의 주체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스포츠 종목의 차이를 가져오기도 했다.

 

(3) 스포츠와 인종

- 스포츠 영역에서 인종과 관련된 문제의 대부분은 여러 분야에서 흑인 선수들이 받은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차별과 관련된 것이다.

- 내면적 상황 :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제 상황에 처해 있는 흑인들이 야구보다 농구를 더 많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 야구에서 백인과 흑인의 포지션별 차이.

- 또 다른 차별 : 성공한 흑인 선수들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삭제해 버리는 것.

- 흔히 흑인들은 스포츠 분야에서 과도한 성취를 거두고 있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이것은 흑인들이 처한 차별의

다른 표현일 뿐이며, 스포츠 이외의 영역에서 성공한 흑인들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두드러지게 해 주는 것일 뿐이다.

- 흑인들이 거둔 스포츠 영역에서의 두드러진 성공이 다른 영역에서 그들이 거둘 수 있는 성공을 사전에 차단하는 기제로 작동하거나, 다른 영역에서 그들이 성공하기 어렵게 하는 현실의 불평등한 조건들을 은폐하는 것으로 기능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4) 스포츠와 민족주의

- 국가 간 경쟁이 필수불가결한 종목이나 영역에서 스포츠는 민족적 갈등의 대리전 양상을 띠기도 한다.

-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극명한 인종적·민족적 차별화의 기반 위에서 치러진 경기였다.

유대인들을 제외시켰으며, 유색인종, 특히 흑인들에 대한 두드러진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 1969년 월드컵 지역 예선을 벌였던 엘살바도르온두라스가 예선전 직후 벌인 전쟁. 6일 동안 전쟁.

- 영국의 축구 프리미어 리그(EPL) 팀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는 토트넘 지역을 대표하는 토트넘과 같은 지역에 속한 첼시아스날의 팬들은 노골적인 반유대주의 감정을 두고 반목한다.

- 프랑코 독재에 저항했던 카탈로니아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 팀과 프랑코 재임 시절 그가 후원했던 레알 마드리드 팀 사이에는 민족적·정치적 반목의 역사 이외에 권력과 자본의 집중에 대한 반감이라는 기류도 흐르고 있다.

- 영국의 훌리건 : 1985년 유러피언 결승전 게임. 영국의 리버풀과 이탈리아의 유벤투스 간의 경기. 38명 압사.

 

(5) 스포츠와 자본, 미디어의 결합

-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 등 미디어와 자본이 스포츠와 만난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결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 텔레비전 보급이 중가하자 실제 스포츠 현장을 찾는 관객 수는 급감하였지만 텔레비전 중계가 많아지면서 TV중계권료가 이윤을 발생시켰다.

- 스포츠는 카메라 촬영 기법의 발달로 더욱 스펙터클하게 시청자의 눈앞에 다가왔다.

- 수직적 통합 : 미디어가 다양한 스포츠 팀들의 소유주가 되는 과정.

- 비디오화된 스포츠 : 시청자들을 즐겁게 만들고 후원자들을 유지할 목적으로 극적이고 흥분되며, 스타일화 된 이미지를 만드는 것. 이렇게 생산된 이미지는 비디오를 통해 세계 전역에 무수하게 반복 중계되며, 디지털로 처리되어 카툰에까지 들어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 미디어는 스포츠 자체에 대한 영향력도 미치기 시작했다. 경기 규칙을 변경했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텔레비전 중계에 적합한 것으로 지향하고 있었다. 프로테니스협회는 텔레비전 중계에 맞춰 타이 브레이크제도를 도입했다.

① 스펙터클화 ② 광고·중계권료 등의 독점화 경향 ③ 미디어의 스포츠구단 장악

④ 기업자본과 스포츠스타의 결합⑤ 스포츠 자체의 변화 추동

 

제10장 변화하는 세계와 전환점에 선 가족 개념

 

1. 들어가며

- 정상가족 : 1950~1960년대 서구 사회에서 널리 수용되어, 실제로 한때 사람들 대부분이 따랐던 표준 가족 모델 성인 남녀 한 쌍과 그 자녀들로 구성되며,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해야 하는 것이 규범이었다.

- 현재 지구화와 개인화로 나타나는 사회적 변화와 새로운 기술의 출현 속에서 다양한 가족 혹은 선택에 의한 가족 이라는 모델이 정상 가족의 모델을 대체해 가는 추세이며, 그런 의미에서 서구의 가족생활은 전환점에 놓여 있다 고 봐야 할 것이다.

- 서구에서 받아들여지는 새로운 가족모델은 서구의 관용과 자유로운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발전된 서구와 전통에 사로잡힌 비서구를 가르는 경계로 작동하고 있다.

 

2. 변화하는 가족생활과 가족 규범

- 사랑은 더 이상 반드시 혼인신고로 이어지지 않으며, 점점 더 많은 쌍의 연인이 혼인신고서 없이도 함께 살고 있 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출산은 이제 결혼과 반드시 연결되는 것이 아니며, 혼외 출산의 수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가 아니라 헤어질 때까지 함께하는 관계가 증가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가 유지되고 있지만 배우자는 계속해서 바뀌는 ‘연속 일부일처제’를 과연 일부일처제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 새로운 자유와 동시에 새로운 위험부담이 생겨났으며, 또한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상황인 것이다.

 

(1) 개인화와 가족생활

- 새로운 가족생활에서 우선 두드러지는 것은 ‘개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과정이다.

- 이것은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며 근대에 들어서면서 전통적 사회관계와 유대가 가지는 중요성은 점점 약화되어 왔다. 제도적 틀 역시 지속적으로 힘을 잃어 왔다.

- 세금공제 혜택이나 연금 수급권, 임대주택 입주나 의료비 지원 등과 같은 많은 사회제도는 여전히 개인들에게 바람직한 삶의 경로를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러한 압력은 더 이상 정상가족을 가족의 단일한 형태로 가정하지 않고 점점 더 개인을 단위로 한다는 점에서 변화가 있다고 봐야 한다.

-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단위가 되어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책임지며 살아갈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 정상 가족이라는 규범이 개인들을 옥죄던 힘은 사라졌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 야 한다는 것은 이미 또 하나의 규범이 되었다.

- 가족생활은 개인 혼자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선택하여 성취해야 할 대상인 것 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어떻게 늙어 갈 것인가는 오히려 정상 가족의 규범이 지배하던 시기보다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고도 할 수 있다.

 

(2) 지구화와 가족생활

- 지구화는 단지 경제적 교환과 시장 개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경쟁이 심화되며 이주가 일상화되는 삶의 총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 1950~1960년대 유럽 : 남부 유럽에는 빈곤이 만연했고, 중부 유럽에서조차 임금 수준은 낮았으며 현재와 같은 물질적 풍요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당시의 중부 유럽에서는 안정적인 고용계약이 일반적이었으며

노동시간도 일정하였고, 일자리도 많아서 구직이 쉬웠다. 따라서 남성은 임금노동을 하고 여성은 가사노동 을 한다는 성별 분업에 근거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삶을 꾸려 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쉽게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일과 가정에 대한 장기적 계획은 서로 연동되어 있었다.

-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오늘날 노동유연화와 규제철폐는 평생직장의 개념을 사라지게 하였으며, 많은 서구의

나라에서는 직장 자체가 싼 임금을 찾아 외국으로 이전해 버리면서 실업이 증가하고 있다.

평생직장이나 공동체적인 연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단위가 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이다.

- 젊은 인력에게는 특히 치명적이며, 정규직보다는 임시직이 증가하고 있다. 불확실한 물질적 조건들은 중산층으로 까지 번져서 불안과 불확실성이 젊은 층에게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상황에서 가족을 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3) 새로운 가족생활 방식들

- 개인화와 지구화로 대변되는 새로운 사회변화 속에서 1950년대의 정상가족 모델은 더 이상 규범으로서의 힘을 잃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개인들에게 이룰 수 없는 꿈, 특권의 상징이 되어 버린 측면도 존재한다.

- 현대의 가족생활은 “시공간의 곡예” : 불안정한 고용과 불규칙한 노동시간, 부모의 지리적 이동과 별거 같은 상황 에서 자녀를 출생하고 양육하기 위해 일정한 안정성과 규칙성이 필요하다.

- 북유럽식의 가족생활 : 남녀가 가사노동을 평등하게 분담하고 자녀를 함께 양육하며 국가의 복지혜택을 받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분명한 현대 서구 가족생활의 일부이다.

 

3. 과학기술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가족

- 체외수정의 의미 : 1978년 영국에서 체외수정을 통해서 ‘시험관 아기’ 탄생.이것은 출생하는 ‘자녀’와 부모 사이에 유전적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의미.

- 1985년 미국에서 체외수정을 통해 대리모에 의한 출산이 성공했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

- ‘코튼 베이비’ 사건 : 임신이 불가능한 미국의 30대 부부가 영국 여성 코튼 씨에게 대리모로 출산 이후 친권을 포기하고 아이를 양도하기로 돈을 받고 계약했고, 출생하자 영국의 법원은 계약의 효력과 의뢰인 부부의 양육자 자격을 인정하여 아이의 미국행을 허락한 사건. 영리적 성격이 문제.

- 인공생식기술을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기술 때문이라기보다는 친권과 계약을 둘러싼 사회적 의미와 법 규정, 관습에 관한 것이었다.

- 이스라엘 영화 「구글 베이비(2009)」: 이스라엘의 게이 커플이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미국에서 난자를 구매하고 수정란을 인도로 보내어 대리모가 그들의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 지구화된 세계에서 상품화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인공적인 생식은 세계적으로 취약계층인 젊은 여성들을 난자매매 와 대리모 산업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덕분이다.

- 인공생식기술의 명암 :

① 통상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많은 개인들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는 사실

② 많은 여성들이 불임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

③ 동성 커플의 경우에도 자신과 유전적인 관계가 있는 아이를 얻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는 사실

④ ‘정상가족’의 관념을 강화하고, 입양이나 위탁, 보육 등 다양한 가족형태의 확산을 막는 다는 지적도 있다.

⑤ 여성의 생식 능력을 상품화한다는 비판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4. 나가며

-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고 여성의 공적 진출과 개인의 성적 지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새로운 변화는 서구에서 시작하였지만, 비서구 사회에서도 새로운 규범으로 작용하며 실제로도 가족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 규범에 의해 속박되지 않고 개인의 선택과 지향을 존중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가족생활을 안정적으로 꾸려 갈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을 획득해 가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제11장 소셜 네트워킹과 가상현실로 보는 뉴미디어 문화현상

 

1. 들어가며

-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등

국경을 초월하며 가능한 모든 이해관계 집단들을 대표해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영화광, 자동차광, 자전거광, 환경활동가, 동성애자 찾기, 애인·가족 찾기, 친구찾기 등

- 뉴미디어에 대한 반응 :

첫 번째 집단 :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변화의 범위를 전 세계적이며 근본적인 변화로 이해하고자

한다. ‘e-혁명’, ‘디지털인간’, ‘웹2.0’이 연장선상에 데모크라시2.0, 마켓2.0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

두 번째 집단 : 뉴미디어와 같은 새로운 변화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곧 사라질 유행에 불과하며 오히려 해가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구글 검색과 같은 뉴미디어로 인하여 뇌의 사용이 퇴화되고 온라인 게임중독, 인터넷 중독과 같은 해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집단 : 새로운 변화와 현존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찾고자 한다. 정·반·합의 원칙에 의해 조금씩 변화한다은 진화론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뉴미디어의 신선함과 혁신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뉴미디어의 등장은 과거 미디어의 발전, 더 나아가서는 인류 역사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

- 가상현실 : 실제와 가상은 더 이상 독립된 것이 아니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서로 상호 작용하고 상호 보완한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상호 작용은 사이버공간의 시간과 실제의 시간이라는 이중적 시간에서 진행된다.

 

2. 뉴미디어란 무엇인가?

(1) 왜 뉴미디어인가?

① 중간 혹은 보통의 뜻을 담고 있는 미디엄(medium)의 복수형으로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기 위해 중간에 존재하는 매개체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매체라고 번역된다.

② 따라서 미디어란 정보의 송신자와 수신자를 매개하는 수단, 즉 기술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모든 수단과 기술은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③ 미디어는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목소리, 얼굴 표정이나 몸짓, 문자, 메시지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포괄하고 있다. 신문, 전화, 라디오 및 텔레비전, 인터넷 등 대중전달매체를 뜻한다.

④ 가상세계와 휴대형 유비쿼터스 정보기술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 즉 뉴미디어로 발전해 가고 있는 추세이다.

플렛시블 디스플레이, 전자팩, 주문형 비디오, IPTV, 스마트폰, 웹2.0 등

 

* 헨리 젠킨스 : 전 MIT 비교미디어연구 프로그램의 창립자이자 『컨버전스 컬처』의 저자

- 미디어의 두 가지 측면을 제시 :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측면과

의사소통 기술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문화적 실천들, 즉 관련된 관습들의 집합

 

〈아날로그와 디지털 미디어의 차이는 무엇인가?〉

첫째, 디지털 미디어는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쉽게 조작될 수 있고 네트워크화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저장될 수 있고 원격 접근이 가능하며 저장과 전송과정에서 손실되거나 파괴될 위험이 거의 없다.

둘째, 디지털 데이터도 쉽게 조작될 수 있으며 조작의 결과는 품질의 손실 없이 무한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다.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어 다양한 형태의 뉴미디어가 등장했다. 즉, 현 시대의 ‘뉴’미디어에는 정보처리방식에서 의 디지털화가 기본적인 기술적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뉴미디어 환경을 대표하는 것이 웹2.0이라고 할 수 있다.

* 웹2.0 : 인터넷을 네트워크화된 플랫폼으로 바꿔 놓는 뉴미디어.

2003년 오라일리미디어와 미디어라이브 간의 회의 중에 처음으로 제기된 개념이라고 한다.

기존의 포털 중심의 웹1.0에서 진화된 차세대 웹으로 이용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보와 지식을 생산, 공유, 소비하는 열린 인터넷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웹2.0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각종 콘텐트를 자유롭게올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물로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등을 통해 이용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새로운 인터넷 환경이다. 모바일 웹2.0으로 그 영역이 빠르게 확장 중이다.

새로운 참여, 창조성, 상호 작용성을 가진 웹의 등장인 것이다. (예) 위키피디아

* 위키피디아 : 전 세계 네티즌에 의해 200여 개 언어로 작성되어 무료로 서비스되고 있다. 누구나 이 백과사전을 이용해 정보를 찾고 잘못된 사항을 수정, 보완함으로써 정보와 지식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된다.

* 웹2.0의 서비스 형태 :

① 플랫폼으로서의 웹 ② 집단지성 ③ 롱테일의 개념, 즉 일반상품의 수익성 ④ 매시업(결합서비스)

뉴미디어와 이른바 디지털혁명은 지구적 문화 변화의 일부이며, 과거 인쇄기의 발명과 전기화와 버금가는 큰 영향을 인류에게 끼치고 있다.

 

(2) 뉴미디어의 기술사

- 인터넷은 1969년 미국 국방성 산하 고등연구프로젝트국의 연구에 의해 탄생하였다. 핵전쟁 시에도 활용이 가능한 탈중앙집중적인 명령 및 통제 시스템으로 구축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네 개의 호스트 컴퓨터가 연결되면서 알파넷이 설립되었고, 응용프로그램인 전자우편을 개발하게 된다.

그 후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인 도메인 네임 시스템을 개발된다.

- 비슷한 시기 대학 캠퍼스에서 유즈넷이라는 자발적 회의 시스템이 등장한다. 파일전송이 가능하도록 했다.

- 1987년 최초의 상업적 인터넷 회사 UUNET이 UUCP와 유즈넷 서비스를 상업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 1991년 월드와이드웹(WWW), 즉 웹1.0이 개발되면서 인터넷 상업화의 전성기를 맞는다.

WWW은 유럽입자물리연구서의 팀 버너스리가 오늘날 익스플로러와 같은 브라우저·편집기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 써 시작되었다.

- 인터넷이 기술적 측면에 머물렀다면 웹은 인간이 인터넷이라는 기술을 만들어 사용하는 기술문화적 측면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가게 된 것이다.

* 디지털미디어 : 서로 얽힌 전기선과 광선의 이미지가 보여 주듯이 전기로 작동된다.

* 무선 디지털미디어 : 위성방송과 무선 네트워크와 같이 공기를 통해 전달되어 보이지 않고 느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디지털 미디어는 물질적 기기에 의해 작동된다.

* 디지털미디어 지형 : 자연의 지형과 같이 경계가 모호하고 다층적이며 겹치는 모습을 의미

작은 텔레비전과 타자기 같은 모습을 한 기기 ⇒ 데스크톱 기기 ⇒ 노트북과 후대용 기기

⇒ 스마트폰과 모바일 기기 ⇒ 하나의 슈퍼 기기로 융합(?) - 아직은 거리가 멀다. 기술문화적 비호환성 문제.

* 소프트웨어의 비호환성 : 다양한 기기가 서로에 대해 기술문화적 호환성이 없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리눅스 등과 같은 컴퓨터 운영 프로그램들은 서로 매우 비호환적이다. 이유는 뉴미디어는 구미디어의 유산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 숀 큐빗 : 제2의 사무실 혁명-스크린과 시청자 사이의 거리가 역동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에서기원한다. 디지털화된 기기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1의 사무실 혁명-타자기, 계산기, 서류함 등의 발명에 의해 진행되었다.

* 소셜 커머스 : 자립적 소비, 소비자들의 자유선택, 협력·협작적 소비 등과 같은 대안적 개념으로 설명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추세이다.

소셜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들이 사모펀드 형식의 벤처투자기금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평가 기준은 평등과 민주 등 고전적인 가치를 근본으로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것일 뿐, 보다 더 본질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상업성과 이윤성이다.

 

3. 현실 속의 가상세계

* 세컨드라이프 : 2003년 ‘린든랩’이 3D그래픽을 이용하여 실제와 똑같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인터넷 사이트이다. 회원을 ‘주민’이라 부르며 아바타와 같은 분신을 만들어 생활한다.

* 프레이저 & 두타 : 『소셜 네트워크 e혁명』의 저자들. 가상세계는 아이덴티티, 사교관계, 사생활 같은 인간관계과 긴밀하게 연관된다고 말한다. 현금거래가 가능한 가상화폐와 가상상품이 존재한다.

- 아이덴티티를 ‘조작’하고 나아가 ‘변형’함으로써 아예 다른 차원으로 데려다 준다.

- 사교관계는 대개 ‘느슨한 관계’의 e-지식인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가상세계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무관심하다.

* 폰지형(ponzi) 사기사건 : 세컨드라이프에서 정교한 다단계식 금융판매. 실제 미국화폐로 상환할 수 있는

가상화폐 린덴달러를 계속 발행하였던 것이다. 이후 세컨드라이프 금융시스템은 무너졌다.

* 매도프 폰지형 사기사건 : 매도프가 사기를 친 금액은 648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 랜돌프 해리슨 : 경제학자. 세컨드라이프가 폰섹스 산업에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고 인터넷 도박의 천국이 되었 으며, 가상시장 자체를 조작하여 신뢰할 수 없다며 세컨드라이프의 경제시스템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 톰 벨스토르프 : 가상세계는 그 어느 것도 모방하지 않고 오히려 사용자들이 가상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현실의 수준으로 다가간다고 역설한다. 출혈현상 발생.

- 가상세계는 사용자들이 현실처럼, 즉 가상이라는 단어의 의미중 하나인 사실상,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의미에서 허구적이지 않고 현실적이다. 점점 현실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며 그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세컨드라이프 같은 가상세계는 사용자 개인이 온라인으로부터 로그아웃을 해도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새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 그러나 가상세계와 현실 사이에 경계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 가상세계와 현실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 가상세계와 현실을 서로 반대되는 양분적 개념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가상세계와 실제세계를 서로 다른 세계이긴 하지만 서로가 구별되는 한편으로 현실이 이 두 세계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 흥미로운 것은 가상세계와 실제세계 사이의 경계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선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 출혈현상 : 세컨드라이프 사용자들이 실제세계에서 가상세계에서만 가능하거나 이해될 수 있는 행동들을 실제세계에서 하는 것, 즉 가상세계의 문화적 요소들이 실제세계로 새어 나오는 현상.

- 기술은 인류 역사 속에서 항상 가상세계와 실제세계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해 왔다는 것.

가상세계와 실제세계 사이의 관계는 상호 대체된다기보다는 상호 보완된다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할 것이다.

 

4. 소셜 네트워킹과 아이덴티티 혁명

-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의 형태

① 자아 중심형 : 페이스북과 같이 개인 소개와 개개인들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인기 있는 사이트. 아이덴티티 구성을 위한 가상 플랫폼이기도 한데, 다중 자아 생성 및 관리와 연관된다.

② 커뮤니티 기반형 : 국적, 인종, 종교, 계급, 성적 성향 등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공유하는 회원들을 불러 모은다. 현실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커뮤니티를 모방하며 회원들이 사이트에 깊은 소속감을 느낀다.

③ 기회 추구형 : 기회를 찾기 위해 회원들이 가입하는 사이트.

- 링크드인 : 비즈니스 인맥 등 합리적 이유에서 가입

- 플락소 : 주소록과 전화번호부를 온라인에서 관리해 준다.

④ 열정 중심형 : 관심사와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모은다.

⑤ 미디어 공유형 : 회원이 아닌 콘텐츠로 정의된다. 대표적인 사례인 유튜브는 동영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 세스 고딘 : 뉴미디어 논평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와 같은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주장.

- 국가 기관이나 기업과 같이 고도로 구조화된 조직에서는 이 같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들을 기존의 질서에 도전 하며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위협으로 간주한다.

 

(1) 다중자아의 등장

* 프레이저 & 두타 :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서는 개인의 정체성과 정보가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성되거나 삭제될 수 있음은 지적한다. “우리는 이를 전혀 통제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와 같은 뉴미디어가 개개인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는가를 되돌아보거나 새롭게 하는 계기를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다.

- 페이스북과 가상세계인 세컨드라이프에서는 다양한 가상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 ‘단일’ 자아는 ‘다중’자아로 변모했다.

- 다중적 정체성은 다중인격증과 다르다고 말한다.

- 뉴미디어에서 나타나는 다중 정체성은 자아의 구성 요소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자신을 집합적 자아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셜 네트워킹 사이트 속에 존재하는 가상 정체성은 다면적·분절적·유동적이고 협상 가능한 것이다.

 

(2) 사회적 자본으로서 소셜 네트워크

* 세스 고딘 : 소셜 네트워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자본을 잘 활용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바라는 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 사회적 자본 : 화폐와 같은 경제적 자본은 아니지만, 학연·지연과 같은 인맥, 지식, 신분 등에서 오는 영향력.

직·간접적으로 경제적 자본을 축적하는 데 도움이 된다.

* 프레이저 & 두타 : 오늘날 사회적 자본의 형성, 소유 및 축적이 온라인세계로 이동하였으며 이는 지위의 민주화 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즉 뉴미디어에서는 ‘전문지식’, ‘능률’, ‘유효성’ 등 실적과 관련된 ‘사실’에 따라 지위가 부여되기 때문에 지위보상이 과점 가치에서 민주 가치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 가상과 실제 간의 상호작용과 이 두 영역을 포괄하는 현실을 균형적인 관점에서 보는 능력이 중요하다.

 

5. 나가며

- 뉴미디어라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두 가지 의미 :

하나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또 하나는 의사소통 기술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문화적 실천이다.

- 뉴미디어와 관련된 문화현상들은 진행 중인 과정이며, 사용자 또는 인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하고, 다시 인간과 문화에 변화를 잔다고 봐야 할 것이다.

- 뉴미디어 연구의 목적 : 뉴미디어를 시대적·개념적으로 선을 그으며 규정, 예컨대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 무엇이 온라인/가상이고 오프라인/현실인지에 대해 구분하거나 기술적 측면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① 실천적 차원에서 인간이 뉴미디어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 나가는지

② 인간과 뉴미디어의 관계는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제12장 서양의료, 삶에 개입하는 어떤 관점 그리고 기술

 

1. 들어가며

- 형이상학적 개념의 ‘나’와 형이하학적 개념의 ‘나’,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존재인가?

- 지금의 시대에 의료 이슈는 또한 한국사회만의 이슈가 아니라 다른 사회문화와 직접 닿아 있는 세계화의 이슈다.

* ADHD :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 의료인류학 : 문화인류학, 문화의 관점에서 사회의 여러 부문(정치·경제·종교·의료)을 연구.

 

2. 서양의료는 무엇인가?

- 서양의료를 다른 의료와 대비시키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해부학적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본다는 것.

그 관점 위에 수술이라는 서양의료의 대표 치료기술이 발달하였다.

의료보험제도는 서양의료의 진료가 진행되도록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 해부학적 관점이 없는 한의학은 인간 몸을 총체적으로 연결하는 관계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한의학의 사암침 기술은 온몸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한의학의 관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저비용의 방식이다.

 

(1) 관점

〈서양의료의 관점〉..........미셀 푸코 : 『임상의학의 탄생』

· 근대이후 유럽에 등장한, 몸에 대한 어떤 관점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 공간화와 언어화의 관점 위에서 진행된 일련의 표준화·단순화 작업을 통해 탄생되었다.

- 인간이 앓는 질환을 몸이라는 공간 속에 위치시키고(공간화),

- 그 질환을 인식의 공간에 위치시키는 고정화 작업(언어화)을 통하여 표준화·단순화는 완성되는 것이다.

- 근대 서양의학이 구축한 표준화는 그 범위가 눈에 띄게 좁은 것이 특징이다.

· 이중 대상화(공간화와 언어화)의 동시성에서 잘 드러난다.

· 대상화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배제 - 공간화·언어화되지 않는 질병현상은 도외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 서양의료라는 체계는 근대 서구의 역사적·철학적 환경 속에서 도출된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특이한 관점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특이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기술

- ‘서양의료과학기술’의 발전 속에 면면히 유지되고 있는 공간화·언어화의 단순화 기조.

- 공간화·언어화의 철두철미한 대상화(단순화) 체계 : 확실한 질병현상만을 의료적 처치의 대상으로 하려는 방향성. 확인할 수 있는 물질적인 대상만을 의학적 대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낳았다.

- 진단기계들이 들여다보는 것은 결국 인간의 물질적인 측면인 것이다.

- 약물제재들 또한 인간의 물질적인 측면(혈액 속을 콜레스테롤, 뇌 속의 세로토닌 등)을 처치 대상으로 삼는다.

- 정서적·사회적·문화적 이슈들을 양산하고 있다.

 

3. 서양의료, 삶에 개입하는 어떤 관점, 그리고 기술

- 의료화 : 의료와 삶이 연관되어지는 방식에 대한 개념이다.

의료 영역의 팽창, 기존의 의료영역 밖에 있는 삶의 영역에 영향력 확장하는 방식과 현상에 대한 개념.

- 서양의료 : 특이한 관점과 그 관점을 바탕으로 한 기술로 구성되어 있다.

- 질병의 수치화 현상 : 심화된 형태의 언어화. 서양의료의 환의주의 당뇨병의 다양한 질병현상이 126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표준화·단순화된다.

- 설명모델 : 의료행위와 관련된 여러 입장의 사람들(의사, 간호사, 환자, 환자 가족)이 어떤 질병에 대하여 요해하는 각각의 방식(모델)을 의미한다. 환자의 설명모델은 의사의 모델과 일치하지 않는다.

- 의사와 환자의 설명모델 사이의 간극에는 물질적인 대상을 의료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관점과 그 물질적 대상에대한 수치화가 자리 잡고 있다.

* 아류르베다 : 인도의 전승의학. 아유르는 ‘장수’, 베다는 ‘지식’이라는 뜻으로, 생명(건강)과학을 의미한다.

* 동종요법 : 인체에 질병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유발시켜 치료하는 대체의학의 일종.

* 랩 : 미국의 의료인류학자. 초음파는 태아의 현재 상태를 가시화시킴으로써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기여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검사기술들이 던지는 사회·문화·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도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태아의 상태에 대한 전문지식이 산모로부터 기기 오퍼레이터로 옮겨갔다고 주장한다.

즉, 태아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권위가 태아의 어머니로부터 기기를 다루는 사람에게로 옮겨간 것이다.

 

〈나와 나의 몸 사이에 개입하는 관점-기술〉

· 내가 느끼는 내 몸의 증상만으로는 자신 몸에[ 대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 몸의 증상은 수치화·이미지화하는 진단기계가 권위적으로 파악한다.

· 서양의료과학기술이 내 자신과 내 몸의 관계에 개입하여 간극을 만들어 내고 틈입하는 상황.

 

〈의료기술의 전파와 각 문화에서의 반향〉

· 초음파기기의 전파와 인도에서의 반향 : 성감별과 여아 태아에 대한 선별 낙태의 도구로 사용

· 극심한 소비차이 초래.

〈세계화를 통한 의료기술의 전 지구적 전파〉

· 문화적·사회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전 세계에 보급된다.

· 미국 내 청소년 정신과 환자의 급증 - ADHD와 청소년 조울증. 상업주의가 의료화 확산의 중요한 추동력.

· 당대 서양의료가 누리는 권위는 권위가 아니라 권력이라고 칭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서양의료의 권위가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논의를 억누르는 권력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생애의 변화〉

· 사회적·문화적 함의를 수반한다.

· 당대의 의료화는 변화의 길목에서 의료의 도움을 받으라고, 아니 의료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 성장 클리닉, 갱년기 클리닉 등은 생애의 변화에 개입하는 의료화의 담론을 예시한다.

· 수능 후 ‘성형’도 통과의례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 안티-에이징 : 노화에 대한 대표적 의료화 담론이다. 노화의 의료화는 그 자연스러운 변화를 병적인 상태로 규정.

‘에이징’에 붙어 있는 ‘안티’라는 접두어는 마치 노화를 피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하는인식론적 효과를 충분히 얻어 내고 있다.

 

4. 나가며

- 서양의료는 표준·단순화된 관점으로, 과학기술과의 결합으로, 과학주의의 권위로, 또한 시장의 논리와의 결합을 통해 삶과 의료를 연계하면서 우리의 삶에 전대미문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 서양의료의 삶에 대한 개입은 총체적이라고 할 만하다.

- 의료와 삶의 철저한 연관만큼 한국사회의 서양의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제13장 현대의 공공미술

 

1. 들어가며

* 공공미술 : 공공성, 공익성, 사회적인 관계를 중요시한다. 일종의 메시지이다.

* 장소특수성 : 장소와 불가분의 관계. 장소와의 사회적 연관성

 

2. 일반적인 미술과 공공미술의 (개념적)차이

* 존 월렛 : 1967년 영국의 미술행정가.『도시 속의 미술』에서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

- 공공미술은 환경미술, 환경조경, 도시디자인, 미술장식품, 스트리트 퍼니처, 대지미술, 기념조형물 등의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현대미술이 파생한 대규모 프로젝트에 속한다.

- 공공미술은 지역, 역사, 인간, 환경 등 세부적인 측면에서 다른 장르의 미술과는 구별된다.

목적으로 하는 장소와 관객의 설정에서 차이를 보여 준다.

- 공공미술이란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작품을 지칭한다.

- 공공미술은 도시디자인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가로의 포장, 길가의 벤치 등

- 현대의 공공미술 : 단순히 도시 미화를 위한 부수적인 수단으로서의 미술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와 그 장소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의한 그리고 그들을 향한 사회적 개입이며,

사회적 메시지의 형성이다.

 

〈현대 공공미술의 개념〉

첫째, 미술가를 위한 공공사업으로서 공공미술이다.

최초의 사례 : 미국에서 1930년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펼친 벽화사업이다. 오늘날도 국가나 지자체에서 추진.

둘째, 건축 속의 미술이라는 개념이다.

공공미술이 법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라고 보는 경우이다. 건축법에서 1%법의 존재.

셋째, 공공장소 속의 미술이라는 의미의 공공미술이다. 공익을 위한 장소에 공유되는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도시개선을 위한 미술이다. 셋째 개념을 도시로 확대한 것.

삶의 환경으로서 도시를 미화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며, 편익을 강조하는 것.

다섯째, 새 장르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으로서 최근에 나왔다. 예술가의 참여적 활동이나 대중들의 적극적인 대응을 포함하는 공공미술의 소프트웨어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3. 공공미술과 공익미술

- 공공미술이란 공공의 영역에서 행해지는 미술이다.

협동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익명의 다수에 의해 수용되는 미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사회성이 강조되는 형태의 미술이다. 공공미술의 본연적인 사회성은 바로 사회참여에 있다.

- 작품으로서의 “공공미술” :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작품을 지칭한다.

* 장소일반성 : 장소특수성의 반대개념. 공공미술은 중립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 공공미술의 활동영역은 공공장소이다. 실용, 편익, 환경 등 공익적인 측면이 더욱 강조되는 곳이다.

* 엘리자베스 윌슨 : 공공미술은 “도시계획의 개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 수지 개블릭 : “사회적·생태학적 치유와 관련해 참여미술”이라고 주장하였다.

 

〈미술과 사회적 공리의 투쟁〉

(1) 리처드 세라의 분노

* 리처드 세라 : 현대 미니멀리즘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 대지예술가 크리스토와 더불어 대규모의 미술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예술가이다. 작품「기울어진 호」는 교통 장애물로 철거되었다.

창작의 자율성과 지역주민이 요구하는 공익성이 대립하면서 공공미술은 분쟁거리가 되었다.

미술에 대한 인식의 부족 문제, 그리고 전위적인 현대미술이 갖는 한계도 드러낸 사건이라 하겠다.

(2) 프랭크 스텔라의 슬픔

* 스텔라 : 서울 삼성도 소재 포스코 앞에 설치된 작품「아마벨」(꽃이 피는 구조물)의 작가.

아마벨은 스테일리스 스틸과 유리를 주요 건축 소재로 사용한 포스코센터의 세련된 이미지를 배경으로 설치되었으며, 17억 원 이상을 들여 구입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꽃보다는 오히려 고철덩어리로 비추어졌다.

- 공공미술의 수용자인 대중도 공공미술의 전체 맥락에서 중요한 발의자로서 위치를 점한다.

 

4. 공공미술 프로젝트 체험하기

(1)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 개념 : “신개념의 도시환경 개선 전략으로 공공시설 및 공간에 대하여 가능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패러다임을 적용함으로써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도시 예술화 사업”이다.

또한 “공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공미술 행위를 비롯하여 건축, 조형, 디자인, 조경 등이 혼합된 예술작업을 통해 매력적인 도시환경을 창출하는 프로젝트”이다.

- 비판 :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가격이 비상식적으로 비싸고, 다수 주민에게 남겨진 작품들이 그만한 예산와 노력의 결과로서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

 

(2) 런던 도클랜드 개발과 공공미술

* 도클랜드 : 1960년대까지 런던의 관문 역할을 하던 항구도시. 도크가 폐쇄되고 산업유휴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1973년 민간투자로 재개발 되어 경관, 도시환경 및 디자인 그리고 공공미술 등을 아우르는 거대한

규모로 탈바꿈하게 된다.

- 비판 :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업문화가 주도한 것이며, 공공미술도 이러한 틀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 문제.

장소의 진정한 역사성(유적지 문화)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기업의 배타적인 이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그들만의 특권적인 지역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는 의미.

 

(3) 마야 린의 베트남 참전 기념비

- “이 작업은 전쟁과 관련한 문제, 즉 전쟁 때 일부는 전쟁을 벌이고 일부는 그 전쟁에 반대해야 하며,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참전용사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을 또 하나의 전쟁으로 언급하고 있다.”

- 매끈한 검은 돌판 위에는 1959년부터 1975년까지 참전하여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 5만8000여 명의 이름이 시간 순으로(계급이 아닌!) 새겨졌다.

-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그 기억을 회상하고 치유하고 현재화(=열린 시간)하도록 하였다.

 

(4) 나치 반기념조형물

- 독일 하부르크에 세워진‘반(反)파시즘 추모비’. 요헨 게르트와 샬레브 게르츠의 작품.

- 처음에 높이 세워진 이 기둥은 정해진 주기에 따라 점차 기둥 밑의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게 설계되었다.

- 과거 독일 나치정권의 역사를 아프게 기억하자는 의미로 세워졌다.

5. 현대사회에서의 공공미술의 현상

- 현대사회에서의 공공미술은 공공장소뿐만 아니라, 공공(public)을 위한 예술로서 이해되고 있으며, 새로운 형식을 실험함으로써 점차 그 지평을 넓혀 가고 있다.

 

(1) 기념조형물

- 현대의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은 유·무형을 아우르는 시민 참여의 적극적인 개입으로서 예술을 의미하게 되었다.

* 허버트 마르쿠제 : 부르주아 사회는 문화를 특정한 목적으로 떼어 내어 질서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반적인 특징을 보인다. 즉 조형물은 그것이 기념조형물이든 아니면 건축이든 간에 사회의 지배세력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대리하는 상징적인 기호로소 작용한다는 뜻이다.

- 새로운 공공미술은 국민, 시민 혹은 지역주민들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고 지역공동체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확립하 며, 더 나아가 예술에 대항 공공적인 향유를 목적으로 한다. 반전, 해방, 환경의 주제로 세워진다.

 

(2) 장소특수성에서 장소일반성

* 「철인」: 앤서니 곰리가 1987년 데리에 설치한 작품. 특정한 장소라는 기존의 개념을 깨뜨렸다.

장소가 가지는 역사적 혹은 사회적 관계는 작품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히려 작품이 개입됨으로써 장소가 특별해지는 역행된 의미전개를 불러왔다.

* 매커베라 : “곰리의 작품은 장소 위주가 아니라 장소일반형이다. 개념 자체가 모호해서 어느 공간에서나 거의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3) 참여로서의 공공미술

- 공공미술의 창작주체는 집단이다. 이 집단은 단순히 예술창작자들만이 아니라, 공공미술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대중들이기도 하다.

- 공공미술은 단순히 물리적인 형태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미 다양한 행사들이 공공미술이라는 특 속에서 실험되고 실행되었다.

 

6. 공공미술의 미래를 지향하며

- 공공미술은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인간의 심미성과 더불어 공간에 대한 심리적 정서를 개선해 줄 뿐만 아니라, 문화적 향유의 장소로서 공공미술의 역할은 확대되고 있다.

- 공공미술은 일종의 공공재로서 혹은 문화적 인프라로서 수용자와 사회 그리고 시대라는

보편적이며 공리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공공미술이 줄 수 있는 사회적 효과〉

첫째, 지속적인 가치에 대한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주는 일이다.

둘째, 개인과 사회에 대한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지원을 하는 일.

셋째, 공공미술의 결과물(작품)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개발하거나 표출하는 것이다. 예) 지역 예술 프로젝트

- 공공미술의 본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회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현하고 이를 통해 창작과 수용의 차원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 카스퍼 쾨니히 : 2008년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총감독.

“공공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참여이며,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작품의 질”이라고 했다.

- 공공미술은 예술의 민주화와 대중화를 이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또한 예술(문화) 복지의 한 측면에서도 중대한 사안을 지닌다.

- 공공미술은 여러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기존의 가치들과는 다르게 평가되어야 하며, 이것이 공공미술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제14장 예술의 대중화 :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의 합작품

 

1. 미술과 대중

- 미술사에 기록된 미술은 현대미술을 포함해서 한 사회의 상위계층이 향유했던 소유물이자 장식물이었다.

- 미술은 자유로운 창작이며, 외부의 경제적인 환경이나 구조에 무관한 것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미술에 와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 미술의 생산은 전적으로 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도층의 취향에 주로 호소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도층쯤으로 생각한다.

- 예술에 대한 취향은 지식과 더불어 철저하게 계급화되어 있다.

- 고급문화의 향유는 교육과 관계있으며 또 이 기회는 절대로 균등하지 않다.

* 팝아트 : 대략 1960년대에 지적 소비물로서의 미술에 대한 대항의 움직임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회화와 19세기 말 인상주의에 이어서 현실을 미술의 대상과 주제로 삼은 미술 즉, 팝아트가 등장한다.

모더니즘의 이상주의를 극복하고 보다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미술을 추구했던 팝아트는 오늘날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글로벌리즘과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그 이념을 주도하는 계층의 취미를 대변하는 미술로 전락하고 말았다.

 

2. 팝아트 : 좌파적 팝과 자유주의적 팝아트

- 팝아트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1950년대 말 영국의 로렌스 알로웨이에 의해서 였다.

* 로렌스 알로웨이 : 영국의 미술비평가. 리처드 해밀턴의 콜라주 작품에 들어간 P.O.P라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팝아트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 콜라주 : 리처드 해밀턴의 작법. ‘Pop’이라는 단어는 popular의 약자로서, 그림이 표현하는 대중적인 내용과 소재을 표현한다. 이 그림은 우선 그리기보다는 사진들을 오려 붙여 조합한 것이다. 이런 작업이 콜라주이다.

- 해밀턴의 그림은 영국의 미국에 대한 이상향을 조금은 희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미국식의 가치가 전통적인 유럽의 생활 속으로 유입되는 모습을 연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바로 소비적이지 만 편안하고 폼 나는 미국식 생활방식의 단면이다. 그러나 해밀턴은 그것에 대해 사뭇 조롱하는 태도를 취했다.

- 영국에서 생겨난 아방가르드이자 비판적인 태도로서의 팝아트는 미국에서는 다른 면모를 띠게 되었다.

- 대중에게 익숙한 상품, 광고 그리고 미디어 스타들을 예술품을 통해 다시 만나게 해 준 팝아트는 이제 자본주의 의 최고상품으로서 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3. 팝아트의 대명사들

- 영국에서는 대중문화에 대해 수동적이며 비판적이었던 미술의 태도가 미국에서는 적극적이고 수용적인 양태를 띠었다. 팝아트는 그런 식으로 미국의 전형적이고 독창적인 미술로 인식되었다.

- 미국의 팝아트는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그리고 클래스 올덴버그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새로운 형식과 조형의식으로 발전하면서, 주류미술로서 위상을 굳혔다.

 

(1) 앤디 워홀

-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예술가. 일반적인 대중문화의 주역들처럼 ‘스타’가 된 예술가이다.

- 작품의 특징 : 현대의 상업주의가 생산해 낸 여러 가지 기호를 차용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캠벨 수프나 코카콜라, 브릴로와 같은 상품들의 포장을 그대로 전사한 작품들.

하나 혹은 다수로 화면을 채우는 이런 상표들은 현대의 대중적 기호들이다.

그것은 어떤 설명 없이도 누구나 다 이해할 만한 것들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한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 예술적 복수성은 여러 다른 다양성의 종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로이 리히텐슈타인

- 만화의 독특한 형상방식을 그대로 큰 화면에 옮겨 놓는 것이 특징으로, 팝아트의 대중적 이미지를 표현한 작가.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차용한다는 점에서 ‘워홀’만큼 급진적이다.

그러나 어떤 컷을 차용할 것인지는 작가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었다.

- 작품 「M-Maybe」란 그림은 만화의 한 부분을 사방 1.5m 정도의 큰 화면에 전사한 것.

- 아마도 리히텐슈타인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다른 차원에서 보게끔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 미국의 팝 미술이 지니는 전형적인 가치중립적이고, 비사회적인 태도를 보인다.

-「꽝(WHAMM!)」: 넓이 4m가 넘는 기념비적인 크기로 역시 만화의 한 컷을 빌려와 크게 확대한 형상이다.

이 그림은 전형적인 미국사회의 국가이데올로기를 태연하게 보여준다.

마치 미국의 승리가 정의의 승리 혹은 자유의 승리라고 믿는 미국의 국가주의는 대중매체에

의한 조작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가는 그런 대중매체의 내용을 거리낌 없이,단지 그것이 형상적으로 인상적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그렸다.

이런 상황에서 매체는 진실을 은폐시킨다.

 

(3) 클래스 올덴버그

- 청계천에 세워진 조형물 「스프링」의 작가. 스웨덴 출신이지만, 일찍이 미국에서 자라나서 활동한 지성적인 작가

- 일상의 사물을 차용하면서, 그 사물들에 대한 상식적인 생각을 뒤엎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주로 조각이나 공공조형물에 천착했다.

- 1961년 설치 전시로 열려진 ‘The Store'에서 간이매점에서 볼 수 있는 음식물들을 조악한 형태이지만 매우 즉물적으로 재현해 놓았다. 즉물적이란 ‘사물을 생생하다고 할 정도로 재현해서 마치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

같다‘라는 의미이다.

- 팝아트의 속성 중의 하나인 가벼움과 속물주의를 보여준다.

- 20세기 초반 등장한 다다이즘 작가 ‘뒤샹’의 경우는 실제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인 변기를 그대로 미술관에 가져와 기성품에 대한 예술적 (사고)전환, 즉 레디메이드(ready made)를 실현하였지만

- 올덴버그는 기성품을 사용하는 대신 모든 팝 예술가가 그랬던 것처럼 기성품을 모방하였다.

그렇지만 그 모방과정에서 사물의 질료적 성격을 바꾸는 것으로 자신의 예술을 완성시킨 것이다.

 

4. 신자유주의와 미술 : 비정치적인 그러나 상업적인 미술의 탄생

* 네오 팝아트 :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 나타난 미술의 주류적인 경향.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네오팝은 팝아트의 형식을 적지 않게 계승하고 있지만 각자의 본질은 상이하다고 하겠다.

네오팝은 글로벌리즘이나 신자유주의와 같은 새로운 경제와 사회이념 속에서 나타난 미술현상이다.

- 과거 팝아트가 같은 시대의 철학적이고 때로는 현학적이기까지 한 추상미술에 반발하여 현실에 관심을 돌렸던 것에 비하면, 네오팝은 팝아트의 현실성을 상품성으로 전환하였다.

- 팝아트의 미술이 처음에는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다가 미술시장을 지배하는 상류계층의 취미에 적절하게 합의를이루었다면, 네오팝은 더 나아가 그들의 취향 그 자체로서 물신화하였다.

- 미술은 스스로 상품화를 선언했고, 화폐가치를 예술적 가치 위에 두었다.

 

* 키스 헤링 & 롤랑 바스키아 : 1980년대 신표현주의가 미국의 화단을 지배하고 있을 때, 게릴라적인 미술행위로 등단한 신예들로서 주로 낙서와 같은 벽화를 그렸다.

‘저급한’ 미술이 새로운 관심을 받고 미술계에 진입한 것이다.

* 제프 쿤스 : 미국의 네오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술가.

현대미술이 주요 개념으로 발전시킨 ‘키치(kitsch)'를 자신의 모토로 삼았다.

원래 사이비나 가짜 혹은 싸구려를 의미하는 키치를 통해 그는 과거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와 고급 예술적인 경향에 대응하는 미술을 창조해 낼 수 있었다.

키치라는 명목 아래 그가 차용하는 것은 현실사회가 지니고 있는 저급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욕망이 었다. 쿤스는 이 욕망을 유치한 물품으로서 상징화하였다.

- 네오팝은 과거 다른 미술에 비해 매우 신속하게 국제화되었다.

글로벌리즘의 동시성에 가까운 확산은 여기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 나라 요시토모 & 다카시 무라카미 : 일본의 네오팝을 대표하는 예술가.

일본 대중문화를 의미하는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형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 요시코모 - 귀여운 아이들이나 앙징맞고 의인화된 동물들을 동화의 삽화처럼 그려낸다.

일본사회가 처한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인다.

· 무라카미 - 인형이나 만화주인공의 캐릭터를 사용하지만, 그의 입장은 친상업주의로 향한다.

루이비통과 연계하여 순수미술과 디자인 그리고 명품브랜드를 형성하는 보다 적극적인

미술의 상업화를 보여 주었다.

* 웨민쥔 : 항상 웃는 얼굴의 희화된 인물이 등장한다. 약간은 초현실적인 모습이나 약간은 우의적인 상황들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상황의식을 보여 준다.

거대한 국가와 체제 그리고 경제적인 구조 속에 하나의 표정으로 통일된 ‘소외된’ 개인을 희비극의 모습으로 재현했다.

* 왕광이 : 과거 앤디 워홀의 팝아트 형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소재는 문화혁명 시대의 중국인들의 모습이다. 붉은 깃발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표어처럼 나타나는 것을 정작 글로벌리즘의 대표적인 브랜드의 로고들이다.

- 중국의 네오팝 작가들은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겹치면서 모순된 현실과 중국인의 정신적인 쇼크를 냉소적인 사실주의라는 도구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5. 글로벌리즘과 미술 : 국제적 스타로 부상한 예술가와 작품들

* yBa : 1980년대 후반 영국의 대처리즘의 강력한 정치제도하에 있던 시기에 등장한 젊은 예술가 그룹이다. 1990년대에 일약 세계적인 미술가로 발전하면서 런던을 미술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골드스미스 대학이 이들의 아지트였다. 스스로 대안공간을 찾아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려는 기획을 했다. 과거 런던의 공업지역이었던 도크랜드에서 창고를 빌어 전시공간을 삼았다. 첫 전시 제목은 ‘프리즈’였다. 전시는 성공적이었고, 몇몇은 주요 상업 화랑과 계약을 맺어 미술계에 등단하였다. 그들에게 작업장은 바로 전시장이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변호할 이론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기 때문에 특별한 평론가가 필요 없었고, 비평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관심을 모았다.

- yBa들의 작품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것은 yBa의 예술적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전략은 아니다.

그들의 주제는 대체로 죽음, 섹스, 트라우마와 같은 병적이고 극단적인 것들이다.

 

* 데미언 허스트 : 죽은 실제 상어나 소 따위를 포르말린 관에 넣어 보여 주었고, 자신의 피를 차갑게 응고시켜 자신의 초상조각을 만든 「마크 퀸」또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최근작인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은 죽음을 가리는 허영과 사치라는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에 의존한 의미를 부각시키면서도 죽음 또한 상품화되는 것을 보여 준다.

 

〈1997년 센세이션전과 찰스 사치〉

* 찰스 사치 : 영국의 주요 컬렉터이자 딜러인 ‘사치광고회사’의 소유주.

소유했던 영국, 미국, 유럽의 블루칩 작품들을 팔아 버리고 yBa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사치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yBa의 작품을 사들였다.

사치는 사진이 구입한 작품을 꾸준히 전시함으로써 yBa의 지명도를 끌어올렸다.

1998년 자신이 소장한 yBa의 전 작품을 런던의 국립미술학교인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센세이션’전에 보냈다. 전시 제목과 같이 전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언론은 들끓었다.

- 크리스 오필리의 작품 「동정녀 마리아」는 코끼리 똥을 캔버스 스탠드로 사용하고, 포르노 잡지에서 오려 낸 여자들의 엉덩이로 나비를 만들고, 여자의 음모를 붙여서 동정녀 마리아를 표현했다.

- 하비는 영국에서 유아살해로 악명 높은 여자 죄수 ‘힌들리’의 거대한 초사와를 다섯 살짜리 어린이의 손바닥으로 그려냄으로써 염문을 뿌렸다.

이 작품은 전시관 중앙을 차지하였고, 이로 인해 전시회는 사회·윤리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 그러나 이 전시회는 전례가 없던 호황을 누렸으며, 영국 미술계의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6. 국경 없는 미술시장의 탄생

- 팝아트와 네오팝 그리고 yBa가 국제적인 미술이 되어 미술시장을 점령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들이 전개했던 쇼와 같은 각종 전시회였지만, 결정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국제적인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와 같은 제도적인 장소를 통해서였다.

- 비엔날레는 그 탄생부터 개최국의 예술적 위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다.

- 아트페어는 미술시장을 이슈ㅘ하고 작품들의 국제적인 거래를 활성화하는 점에서 경제적인 목적을 지닌다.

- 세계미술시장의 3대 아트페어 : 스위스 바젤, 미국의 시카고 그리고 프랑스 피악에서 열리는 아트페어.

최근 중국 상하이, 한국의 키아프(KIAF) 등

* 옥션 : 미술시장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런던에 기반을 둔 크리스티와 뉴욕에 본점을 두고 있는 소더비옥션

국제적이며 아울러 공식적인 미술경매와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 김동유나 최소영 그리고 홍경택 등은 이러한 옥션의 이변을 통해 국제미술계에 등장했다.

- 겉으로 보이는 미술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예술적으로 조형화한 것이지만, 이제 미술품들은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명품으로서 자본의 흐름 속에서 제작되고 유통되는 실정이다.

- 총성 없는 무역 전쟁이 시시각각 벌어지는 현재에 있어서 미술품도 여느 다른 상품과 재화처럼 마케팅 대상이 되었으며, 첨단의 전략에 의해 창출되고 홍보되고 있다.

 

7. 나가며

- 현대미술은 자신을 자본주의 상품으로 흔쾌히 변화시켰다. 그것도 고가의 상품이 되었다.

- 미술은 더 이상 순수한 예술의 정신적 도피처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시장이 되었다.

- 현대의 친자본주의적인 사회구조는 인간의 전통적인 윤리와 성찰의 여유를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예술 소통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다. 미술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상품으로 변화해 갔다.

- 미술의 대중화는 미술의 대중문화화를 의미하는 것처럼 전개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물론 신자유주의의 경제체제와 이것을 동력으로 추진된 글로벌리즘에 의해서 촉진되었다.

- 미술의 상품화는 대중화 시대에 미술이 미술계 내에서, 그리고 외부적으로도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 되었다.

- 팝아트가 정신조차 상품화되는 사회로 향하는 입구에서 비판적인 태도와 실험적인 정신으로 현대사회의 물신주의 를 보고 있었다면, 이후 네오팝은 스스로 물신이 되었다.(관료의 청탁을 위한 대가로 전락)

 

제15장 카메라의 눈으로 소설 쓰기, 그리고 다시 소설에서 영화로

 

1. 들어가며 : 인간의 눈과 카메라의 렌즈

- 카메라 렌즈의 시각은 과학성과 객관성을 근거로 삼고 있으며, 과학성과 객관성이라는 특성은 일반적으로 서양문화의 주된 관심 영역이라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영상문화를 서양문화와 동일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 영상과 이미지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식론적 혁명은 르네상스기 초기인 15세기경에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원근법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 초창기의 회화는 다분히 평면적이었고, 회화의 목적 또한 특정한 의미전달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 하지만 원근법이 회화에 이용되기 시작하자 회화는 이제 인간의 눈을 통해 보이는 그대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 원근법이란 인간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세상, 즉 3차원적인 현실을 2차원적인 평면 위에 묘사하는 표현기법을 지칭하는 것으로, 단 하나의 시점에서 본 세계상을 그려 내는 기하학적 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기술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맞닿아 있는 것이었고, 이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카메라 렌즈, 카메라의 시선이라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 실제로 원근법 발명 이후 16세기에는 관찰자 시점과 소실점을 기점으로 논리정연하게 펼쳐진 원근법의 공간을 기계적으로 옮겨 놓은 기술적인 발명품인 카메라 옵스큐라가 만들어졌고, 이후 수세기에 걸친 인간의 실험정신으로 인해 오늘날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사진과 영화라는 매체가 탄생하게 된다.

* 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프로베르의 소설. 19세기 중후반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던 테크놀로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 숏-리버스 숏, 패닝, 장면전환 등 영화적 기법들을 문자로 표현한 소설.

도덕적·윤리적 판단의 문제를 벗어나 인간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 소설과 영화

(1) 소설과 영화에서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 문학 및 예술 운동에서 유래한 것.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 자연주의는 일반적으로 사실주의의 연장이고,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인간 본성이 자연현상이나 자연적인 환경에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의 사실주의 개념〉

* 로버트 스탬 : 영화학자.

첫째, 기존의 문학적·영화적 방식에 대한 교정이라는 의미

둘째, 핍진성 혹은 디제시스, 즉 허구적 현실의 생산과정과 관련을 맺고 있는 의미

셋째, 관객의 믿음에 관한 문제

넷째, 관습의 집합, 즉 언어 혹은 기호의 구성방식과 그 규칙에 관한 문제 등의 다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개념이다.

* 수잔 헤이워드 :

· 영화의 본질적인 속성 중 하나인 ‘환영’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 즉 편집이라는 인위적인 과정을 관객이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영화 스타일이라는 측면과

· 카메라의 비조작적 사용을 통한 현실의 다층적 해독 가능성 제공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루고 있고

· 나아가 자연주의 개념을 동일시와 관음증에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 달리 말해, 영화에서의 자연주의를 특정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 앤드루 : 영화에서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개념은 복잡다단한 측면,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 불리기에는 다소 비정형화된 측면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주류 할리우드 영화에서와 같이 핍진성, 디제시스 혹은 자연화 과정에 기대고 있는 사실주의 개념

- 프랑스 누벨바그에서처럼 영화 형식의 의도적 착취를 통한 스타일적인 사실주의 개념

-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진정성을 반추하는 데 주력하는 정치적 사실주의 개념

- 스타일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사실주의의 결합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시네마 노보운동의 경우에 발견해 낼 수 있는 복합적사실주의 개념

- 영화 분야에 있어서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개념은 그 표현양식의 복잡다단함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으로 인해서, 오늘날 대중문화의 대표적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호 텍스트성과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2) 소설의 영화화와 상호 텍스트성

- 상호 텍스트성 : 서로 인용하거나 참조하는 방식으로 관련을 맺는 둘 이상의 텍스트 간의 관계를 의미

* 줄리아 크리스테바 : 어떠한 텍스트라도 그것의 의미는 다른 텍스트와의 관련 속에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 롤랑 바르트 : 상호 텍스트성에서 수용자의 역할을 강조.

- 상호 텍스트성의 세 가지 요소 : 생산자수용자, 텍스트

- 영화에서 상호 텍스트성의 사례 : 기존 작품의 리메이크소설의 영화화 그리고 다른 매체 간의 상호 교류이다.

- 리메이크와 소설의 영화화의 방식 :

첫째, 충실한 각색. 원작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옮기려고 하는 시도

둘째, 다원적 각색. 원작의 기본적이고 전체적인 틀만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려는 시도

셋째, 변형적 각색. 원작의 형식을 충실히 이용하되 몇몇 주요한 요소를 대체 첨가, 혹은 삭제함으로써

새로운 내용과 주제의식을 표현하려는 시도

- 상호 텍스트성은 원본과 복사물의 구분이 점점 더 모호해지거나 무의미해지는 상황, 사적 영역에서의 유희라는오늘날의 대중영화의 속성, 그리고 계몽적·교훈적 매체에 대한 강박감 탈피라는 특징을 적절하게 드러내 주는

방식이다.

 

3. 소설 『보바리 부인』과 영화화된 「보바리 부인」들

(1) 영화적 기법으로 소설 쓰기

-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사회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박탈된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견뎌 내야 만 하는 삶의 조건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주의적 전통에 닿아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플로베르는 ‘구상화 형식으로서의 서사’를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현대적 의미의 사실주의적 묘사를 달성했 다는 평가를 받는다.

* 앨런 스피겔 : 영화평론가. 구상화 형식이라는 것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행동을 옮겨서 제시해 주는 것이며, 작가의 공공연한 중개성을 떨어져 나와 독자에게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교차편집 : 독자는 플로베르의 작품 속에서 각 장면 안에 있는 각 대상을 ‘교대로’ 보게 된다.

‘교대로’ 본다는 것은 영화적 기법으로서의 시점 숏과 교차편집의 소설적 대응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인물의 시점으로 특정 사물들을 순서대로 바라보고, 컷과 컷을 통해 다른 방향에 위치한 각 대상 을 일일이 잡아낸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또한 독자는 대상을 ‘이어서’ 볼뿐만 아니라 ‘나란히’ 보게 되기도 한다.

대상을 ‘이어서’ 혹은 ‘나란히’ 본다는 것은 카메라의 움직임을 소설적으로 표현하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

앞의 시점 숏과 어우러져, 특정 사물을 좌우로, 위아래로 이어서 본다는 것은 카메라 패닝, 틸팅과 맞닿아 있고, 앞뒤로 나란히 본다는 것은 트래킹과 줌인, 줌아웃과 닮아 있다.

(2) 소설을 영화화하는 몇 가지 방식

1) 장 르누아르

- 사회적 사실주의의 대표주자.

- 사회적 사실주의는 한 사회의 소외받는 특정 집단, 즉 노동계급이나 중산층 등이 처해 있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환경 모사에 주력하는 것이었다.

- 디프 포커스의 형식으로 펼쳐지는 ‘깊이 있는 무대’, 즉 화면의 깊이를 살릴 수 있도록 설계된 무대.

- 르누아르의 「보바리 부인」은 플로베르 소설에 대한 가장 충실한 각색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

- 르누아르는 야외촬영에서 자연광 사용, 비전문 배우 기용 등의 방식으로 영화 촬영 공간의 세팅을 자연스럽 게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영화의 영상을 거칠게 보이도록 했고, 이와 같은 특성이 바로 ‘영화적 자연주의’에 대비되는 사회적 사실주의를 확립했다.

 

* 영화적 자연주의 : 영화 촬영 현장에서의 인위적인 세팅과 비례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조명, 무대 장치 등 영화 촬영 현장에서의 세팅이 인위적일수록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영화 텍스트가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된다는 점에 기반을 둔 개념.

 

2) 빈센트 미넬리

-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

- 영화적 자연주의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대 장르영화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화려한 편집기법과 배경음악의 적절한 사용, 그리고 극적인 이야기 구성을 관객으로 하여금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몰입과 동일시의 효과를 자아내고, 영화작품을 하나의 완성된 문화상품으로 변모시켰다.

- 플래시백 : 회상의 형식으로써의 영상 표현.

- 빠른 편집과 장면전환, 교차편집의 빈번한 사용과 현란한 카메라 이동, 그리고 장르적 관습의 적나라한 차용 등을 통해서 할리우드 멜로드라마 한 편을 극적으로 구성해 냈다.

- 형식적인 차원에서 가장 충실히 소설의 기법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러한 형식을 빌려 완성된 결과물은 전혀 다른 내용적 수준을 보여준다.

- 미넬리가 환성해 낸 것은 바로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서의 영화적 자연주의이다.

 

3) 클로드 샤브롤과 팀 파이웰

* 클로드 샤브롤 : 친밀한 시선과 객관적인 카메라의 거리를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자신만의 심미적 사실주의의특성을 표현했다. 「보바리 부인」의 내면적 상태를 사실적으로 포착해 내는 데에 주력했다.

-「보바리 부인」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원작소설의 영화적 표현방식에 가장 근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확연히 다른 느낌과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팀 파이웰 : 텔레비전 영역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

- 「노마 진 & 마릴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전기영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다.

- 「보바리 부인」: 내적 심리가 어떻게 겉으로 드러나는가에 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표정연기가 주를 이루었던 샤브롤의 작품에 비해서, 파이웰 작품 속의 배우들은 자신들 육체의 몸짓을 적극활용하고 있다.

- 샤브롤의 작품 속 인물들은 과장되지 않은 몸짓과 표정을 통한 내면 심리의 표현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파이웰의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의 육체를 통한 감정의 적극적 표출에 주력한다.

- 샤브롤이 작품과 파이웰의 작품은 플로베르의 원작소설을 가장 충실하게 화면으로 옮겨 놓았다.

 

- 빈센트 미넬리의 작품은 원작소설을 단지 원료로만 이용하여 전혀 새로운 결과물은 낳는 것으로 귀결된 ‘변형적 각색’이라고 할 수 있다.

- 클로드 샤브롤의 작품과 팀 파이웰의 작품은 ‘충실한 각색’과 ‘다원적 각색’의 중간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을 평가할 수 있다.

 

4. 나가며

-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 마셜 매플루언의 주장. 형식적인 차원의 변화가 결국 내용적인 차원의 변화로까지 이를 수 있다는 명제는, 뉴미디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훨씬 더 유용한 듯하다.

- 3D영상이나 나아가 4D영상은 사각의 프레임이라는 제한된 영역에 갇힌 채 활동하던 우리 인간의 눈이나 카메라 렌즈를 해방시켜 ‘시점’이나 ‘시선’의 문제를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 뉴미디어 시대의 영상언어는 지금까지의 문자언어나 영상언어와는 현저하게 다른 방식으로 구축될 것이다.

- 이를 단순한 명제나 진리가 아닌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문화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고할 수 있겠다.



현대의 서양문화 요약.hwp



현대의_서양문화_요약.hwp
0.31MB
현대의 서양문화 요약.hwp
0.31MB

'KNOU(Chinese Language) > 현대의 서양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0) 2016.09.27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0) 2016.09.27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0) 2016.09.26
아모르파티(amor fati)  (0) 2016.09.22
권력과 지식  (0) 201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