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균비누로 깨끗이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어 구강청정제로 입안을 말끔히 가셔낸다. 혀로 느껴지는 매끈한 이와 보송보송한 피부가 더없이 깔끔하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청결해진 내 몸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살까. 수천, 수만 마리?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수치는 까무러칠 정도로 크다. 100조 마리이다. 우리 몸의 세포가 10조 개이니 그보다 10배나 많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따위의 미생물이 우리 몸에 터 잡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무게를 다 합치면 1~2킬로그램에 이른다. 체중에 신경을 쓰는 사람에게는 조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체중계의 눈금이 가리키는 것은 실제 내 몸무게와 수많은 작은 벌레들의 무게를 합친 것이니까. 물론 위안은커녕 갑자기 몸이 근질거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은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은 과학상식의 차원을 넘어선다. 인간 몸에 사는 미생물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인간을 지금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건강의 개념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은 2007년부터 ‘인체 미생물군집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에 착수했다. 세계 80개 연구소의 연구자 200명이 참가해 5년 동안 약 1억 7,000만 달러(약 2,000억 원)를 들여 사람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자는 것이다.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해독한 인체 게놈 프로젝트에 이은 또 하나의 거대 프로젝트이다. 2013년 사업 완료를 앞두고 지금까지의 연구결과가 〈네이처(Nature)〉 등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되고 있다. 확인된 미생물만 1만 종에 이르며 이들의 유전자를 모두 합치면 사람의 유전자보다 360배 많은 800만 개에 이른다. 생물다양성을 연구하기 위해 아마존의 열대우림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보초(Great Barrier Reef)에 갈 것이 아니라 우리 몸속을 탐험해야 할 판이다.
연구결과를 보면, 사람의 몸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사는 곳은 배설물이 모이는 큰창자로 무려 4,000종의 세균이 살고 있었다. 이어 음식물을 씹는 이에 1,300종, 코 속 피부에 900종, 볼 안쪽 피부에 800종, 여성의 질에서 300종의 미생물이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입속에만 적어도 5,000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체는 수많은 미생물이 사는 생태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마치 숲이 서로 다른 생물종으로 구성된 작은 생태계가 모자이크처럼 모여 이뤄지듯이, 인체도 서로 다른 미생물들이 생태계를 구성한 조각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물론 미생물의 종류에는 개인차가 있다. 한 사람의 몸에서도 팔꿈치와 입속 등 부위마다 분포하는 미생물의 종류가 다르고, 섭취하는 음식과 나이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런 미생물은 사람에게 도대체 어떤 영향을 끼칠까.
미국 베일러 의대 연구진의 연구결과를 보자. 연구진은 임신한 여성의 질에 사는 미생물 집단이 임신 전에 비해 현저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롭게 주도권을 쥐는 미생물은 위장에서 젖을 소화하는 효소를 분비하는 박테리아였다. 출산 과정에서 아기는 이 박테리아의 세례를 받을 것이 분명한데, 덕분에 모유를 소화할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 예는 새끼에게 자신의 배설물부터 먹이는 토끼를 떠올리게 한다. 토끼의 똥 속에는 식물의 섬유질을 분해하는 유용한 세균이 잔뜩 들어 있어 어미 토끼는 이것을 새끼에게 먹임으로써 소화기능을 전달한다.
또한 피부에 사는 어떤 세균은 보습 효과를 낸다. 이 세균은 피부 세포가 분비하는 왁스질의 분비물을 먹고 사는데, 수분층을 만들어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시킨다. 미래의 화장품 가운데는 이런 미생물이 잘 살아가도록 이들을 위한 영양분을 첨가한 제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비만과 장내 세균의 관계도 흥미로운 연구과제이다. 쥐 실험에서 비만 쥐의 장내 세균을 날씬한 쥐에게 옮겼더니 체중이 늘어났다. 이 세균은 몸에 신호를 보내 세포가 당분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어 결국 체내에 여분의 지방을 축적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람에게 이런 ‘비만 세균’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미생물이 우리가 몰랐던 유익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인체 미생물군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학 생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등장했다. 이 분야 연구자들은 세균을 퇴치의 대상으로 삼던 이제까지의 의학자들과 달리, 인체 미생물과의 공존을 지향한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몸속에는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미생물과 유익한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의 미묘한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긴다. 무차별적으로 세균을 죽이는 방식은 자칫 이런 균형을 깨고 수많은 유익한 기능을 하는 ‘좋은 미생물’까지 모조리 없앨지 모른다. 마치 제초제와 살충제가 목표로 하던 잡초와 해충뿐 아니라 수많은 이로운 생물과 생태계 자체를 위협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생물과의 공존을 막는 대표적인 생활방식은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거나,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깨끗한 생활방식을 고집해 미생물과의 접촉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다. 어릴 때 흙이나 먼지처럼 미생물이 많은 지저분한 곳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은 면역체계가 발달하지 않아 나중에 알레르기나 당뇨 등에 잘 걸린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른바 ‘위생 가설’인데, 아직 과학적으로 확립된 이론은 아니다. 중요한 건 아무 세균에나 노출된다고 좋은 게 아니라 좋은 세균에 노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체의 미생물 생태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제 그 첫 걸음을 떼었다.
우리 창자 속의 세균은 쥐 창자 속의 세균과 다르다. 그 세균은 우연히 우리 몸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인간은 미생물과 함께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세균이 없다면 우리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입속의 세균을 깡그리 없애준다는 구강청정제를 쏟아붓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수천 종류의 미생물 수억 마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를 내가 망가뜨리는 건 아닌가. 어차피 우리 몸은 나와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커다란 또 하나의 유기체 아닌가.
참고문헌
Asher Mullard, “Microbiology: The inside story”, Nature, vol. 453(2008), pp. 578~580. DOI: 10.1038/453578a
K. Aagaard & K. Riehle & J. Ma & N. Segata & T-A. Mistretta et al., “A metagenomic approach to characterization of the vaginal microbiome signature in pregnancy”, PLoS ONE, vol. 7, no. 6(2012). DOI: 10.1371/journal.pone.0036466.
Denise Grady, “Bacteria in the intestines may help tip the bathroom scale, studies show”, New York Times (27 March,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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