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세비야의 이발사
오늘은 18세기, 스페인, 세비야로 떠나 봅니다.
◈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Il barbiere di Siviglia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등장 인물 중, ‘피가로(Figaro, 바리톤)’의 직업이 ‘이발사’입니다. 아래 설명을 드리겠지만, ‘몸을 돌보는 행위와 영혼을 돌보는 행위를 분리시킨 중요한 사건’인 1215년 라테란 공의회 후, 그동안 수도사들이 해오던 일들이 이제 가위와 칼을 잘 다루는 이발사들에게 맡겨졌습니다. 이발사 겸 의사가 유럽 전역에서 늘어났습니다. 빨강, 파랑, 흰색이 돌아가는 이발소 간판은 동맥, 정맥, 하얀 붕대를 뜻하는 이발사 겸 의사의 상징이었습니다. 16세기까지도 유럽에서는 외과학이라는 의학 분야가 없었고, 1603년 파리 의회에서는 이발사들에게 수술이 가능한 이발사 자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분리된 것은 영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18세기 중엽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이발사들은 왕족, 귀족, 왕실의 여인들을 가장 근거리에서 아무 때나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로 최고의 권세를 누렸습니다. 물론 18세기부터는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왕족과 귀족 사이를 자유자재로 누비고 다녔습니다. 간단한 상처 치료에서 머리 손질과 연애 편지 전달자로 왕족과 귀족들을 손 안에 넣고 주물렀습니다. 오페라에서 피가로가 등장할 때에 부르던 노래에 당시 이발사들의 존재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일이 끝나면 아가씨들과 기사님들의 아주 즐거운 상대자이죠.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머리를 빗어 달라고, 이발도 좀 빨리, 연지도 살짝, 사랑의 편지도 부탁하니, 바빠서 정말 미칠 것 같아요. 차례차례로 한 사람 한 사람씩 부탁하시오.” 그러니 귀족 사회를 풍자하고 귀족들을 골탕 먹이는 작품에서 이발사는 최적의 직업이었습니다. (KBS클래식FM, 노래의 날개 위에)
◈ 헤어(hair), 꼿꼿하고 당당한 털의 역사, 커트 스텐 지음, 하인애 옮김, MID 中에서
1215년 제10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로마가톨릭 지도자들은 수사나 성직자가 수술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성직자는 교회 고위직에 공식적으로 임명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공의회는 400년 전 신성로마제국 샤를 마뉴 대제가 모든 수도회와 성당은 성직자가 근무하는 부속 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공표한 성명서를 폐기했다. 수백 년 동안 수도사는 피를 뽑고, 피를 뽑은 자리에 거머리를 바르고(이 치료 행위는 요즘도 유효합니다*), 고름을 짜고, 관장제를 처방하고, 이를 뽑았을 뿐 아니라, 머리와 수염을 자르고 단장해주었다. 이제 수도사들은 가위와 칼을 잘 다루는 지역 이발사에게 조직 절개와 이발을 맡겨야 했다. 공의회의 새로운 교리는 ‘몸을 돌보는 행위를 영혼을 돌보는 행위에서 분리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라테란 공의회 판결 후, 이발사 겸 의사가 유럽 전역에서 장인으로 인정받으며 수가 늘어났다. 1462년 영국 에드워드 4세는 이발사 겸 의사의 중요성을 인정해 이들을 위한 첫 길드를 수립하고, 다른 길드와 마찬가지로 런던 시에서 이발과 수술 행위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했다.
~고성은 건국대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