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하다,
제가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오늘은 이 ‘근사하다’란 말에 대해 나눠볼까 합니다.
1.
적절한 기능과 규모의 배분, 이를 뒷바침하는 합리적인 테크놀로지, 그리고 이들을 싸 안는 표정이 그 건축의 성립 목적을 정당히 수행할 때, 이를 합목적적 건축이라고 하며 이것은 인간의 구체적 삶에 근거를 둔다.
우리 인간의 삶은 심층적인 사회적 갈등들과 역사의 진실된 내용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건축이 문화로써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보장하려고 하는 한 그 삶이 지향하는 목적에 적극적으로 부합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위장된 세트로서 우리의 삶을 기만하기 쉽다.
집은 집답게, 학교는 학교답게, 교회는 교회답게 서 있을 때 그 건축이 담는 삶은 보다 윤리적이 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합목적성에의 추구가 가장 바람직한 건축적 가치로 인식되던 때도 있었다.
『빈자의 미학』, 승효상 지음, 느린걸음, 中에서,
2.
몇 년 전부터 SNS에 일상의 자랑질을 하며 마치 일기를 쓰듯 글을 쓰는 것이 습관처럼 돼버렸습니다. 의무감에서 또는 강박적으로 글을 쓰지는 않지만, 그러다 보니 글을 쓰지 않을 때 가끔 허전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는 방학 말미에 한두 달치 일기를 몰아 쓰느라 부모님께 꾸중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습관을 가져보니 몇 가지 좋은 점도 있습니다. 주변 관계와 일상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고 듣고 대화하려는 애씀이 생겼습니다. 라디오를 듣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책을 읽고 가까운 분들과 자주 만남을 갖고 하는 것들 말입니다.
자랑질을 하려 해도 밑천이 있어야 하니까요. (ㅋㅋ)
3.
“근사하다”
이 말도 출근길에 라디오 방송에서 듣고 귀가 번쩍해서 그 날 방송분을 다시 들으며 차곡차곡 옮겨 적었습니다. 아래 글 4.입니다. “근사해”란 말씀을 하신 승효상 건축가의 인터뷰 전문도 찾아보았습니다.
4.
살갗을 접촉하기보다는 기계를 접촉하기를 원하고, 직접 보기보다는 스크린을 두고 보기를 원하고, 직접 듣기보다는 구멍을 통해 듣기를 원하는, 그러한 편안한 모습에서 삶은 왜 자꾸 왜소해지고 자폐적이 되어가는가? 우리는 이제 기능적이라는 말을 다시 검증해야 한다. 더구나 주거에서 기능적이라는 단어는 우리 삶의 본질마저 위협할 수 있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걸을 수 밖에 없게 된 그런 집이 더욱 건강한 집이며, 소위 기능적 건축보다는 오히려 반기능적 건축이 우리로 하여금 결국은 더 기능적이게 할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이 쓴 <빈자의 미학>에 나오는 글이었습니다.
그가 빈자의 미학을 평생의 화두로 갖게 된 계기는 달동네였다고 하죠. 높은 산비탈에 있어 달이 가까이 보이는 동네라 생긴 말이라고도 하고, 달세를 내는 방이 많아 생긴 말이라고도 하는 달동네, 그는 오래 전 서울의 달동네를 돌아보고 이런 소감을 남겼습니다. “남루하고 초라해서 그렇지 가난하여 가진 게 적은 그들은 많은 부분을 나누면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정말 근사해. 선함과 진실함과 아름다움을 매 순간 발견할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쓴 ‘근사하다’는 말이 정말 근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근사하다’는 말은 알고 보면 참 재미있는 말입니다. 흔히 멋있다 훌륭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본래 뜻은 ‘가까울 근(近)’, ‘닮을 사(似,)’, “거의 같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근사(近似)하다고 말할 때는 이미 우리 마음 속에 멋있고 훌륭한 기준이 있고 거기에 가깝고 닮았다고 느껴졌을 때 절로 나오는 감탄사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 기준이란 무엇일까요? 앞서 글에 이미 다 나와있는 것 같습니다. 선함과 진실함과 아름다움, 근사(近似)하다.
5.
제 주변에는 ‘선함’과 ‘진실함’과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그 분들을 가까이 하며 닮아가려는 노력을 참 많이 합니다. 이런 제 자신이 참 “근사(近似)해” 보입니다.
고성은/건국대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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